지방강의차 내려가는 길에 원고를 써서 보내고 잠시 눈을 붙였더니 정오가 지났다. 오후 강의가 남아있지만 개강 첫주를 ‘선방‘했다는 느낌이다(하지만 내주에는 더 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뉴스가 폭주한 한주이기도 했는데 크게 나누면 미투와 남북회담 관련이다. 이번봄에는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북미간 회담(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도 성사될 모양이다. 뉴스거리가 차고 넘치지 않을까(출판계로서는 좀 염려스럽겠다).

남북대화에 관한 책을 검색해보았다. 김연철의 <70년의 대화>(창비)가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춘 책. 남북관계 전문가라는 저자가 지난 70년의 역사를 복기한다.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는 휴전협정부터 북핵문제에 이르는 남북관계의 지난날을 수동이 아닌 능동의 지혜로, 좁은 눈이 아닌 넓은 눈으로, 단절이 아닌 역사의 지속으로 조망한다. 남북관계는 국제정치 질서와 국내정치 상황에 따라 대결과 악화, 접촉과 협력을 반복하면서, ‘전쟁을 일시 중단’하는 정전(停戰) 이후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종전(終戰)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저자 김연철은,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흔히 북한의 대남정책을 중시하던 데서 눈을 돌려, 종전과 평화정착 과정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대북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강진웅의 <주체의 나라 북한>(오월의봄)은 ‘북한의 국가 권력과 주민들의 삶‘이 부제다. 북한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게 취지다. ˝저자 강진웅은 북한이라는 국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일상과 그 사회의 내면을 탐색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시점에서 북한 사회와 국가 권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 진술을 들었고, 다른 출판물에 나오는 탈북자들의 수기와 진술도 참고했다.˝

그리고 트럼프.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받게 하자는 제안도 들리는데 그의 ‘화염과 분노‘가 북미회담에서 돌발적인 결과를 낳게 할지도 모르겠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가 어쩌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될지도 모르잖은가. 그렇게 유도하는 게 남한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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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노골적인 제목이어서 일단 작가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 자격이 있다! 학과는 다르지만 교내 서클이었던 ‘연세문학회‘에서 같이 활동했고(어깨동무하고 보냈고) 그런 인연으로 지난해 개관한 기형도문학관의 유품 수집 총책을 맡았었다니 말이다. 장편소설이라고는 돼 있지만 ‘내가 아는 기형도 이야기‘라고 저자는 밝힌다. 그게 나로서도 책을 구한 이유다(마침 내일이 29세에 요절한 시인의 29주기이고).

˝기형도와 대학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소설가 김태연이 29년간 품어왔던 기형도와의 추억을 풀어낸 소설이다. 저자 김태연은 기형도와 주고받은 편지나 스스로의 기록 등을 토대로 소설 형식을 빌어 이 소설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이번 봄에도 기형도 시에 관한 강의를 한두 차례 진행할 예정이라 겸사겸사 참고하려 한다. 30주기가 되는 내년 이맘때에는 관련한 책이 더 나오지 않을까 싶다. 흠, 그렇게 30년이 흘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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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듀오그라피가 출간되었다(교차전기?). <말로와 드골>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의 <나폴레옹과 샤토브리앙>(연암서가)이다. ‘최초의 현대적 정치인과 정치 작가‘가 부제.

˝나폴레옹이 영광과 위대함을 세운 건축가라면, 샤토브리앙은 선구자다. 두 사람은 정치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브뤼메르 18일을 통해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정치와 문학을 연결했다. 분노와 공포 속에 프랑스 혁명이 모든 것을 휩쓸어낸 후, 샤토브리앙과 나폴레옹은 프랑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썼다.˝

이런 소개만으로는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떡 족적을 남겼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폴레옹의 생애야 소개된 책이 많지만 샤토브리앙에 대해서는 <르네>의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다. 국내에 소개된 책이 거의 없는 걸로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의 회고록이 발췌번역돼 있다. 신용우의 <샤토브리앙>(책과나무)이 그것이다.

<무덤 너머의 회상록>의 발췌본인데 그래도 668쪽이고 완역으로는 2000쪽이 넘는다 한다. 역자가 불문학 전공자가 아니다 의학자(피부과)라는 점이 이채로운데, 아무려나 희귀한 책을 소개한 노고를 평가할 만하다. 때마침 나온 <나폴레옹과 샤토브리앙>과 겹쳐 읽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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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머리칼 2018-10-0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토브리앙..저도 잘 읽고 있는 중입니다

로쟈 2018-10-09 16:39   좋아요 0 | URL
하하. 저는 아직 만져보기만..
 

지난주에 개강한 강의도 있기는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봄학기다. 봄기운이 완연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곧 앞다투어 봄꽃들이 피리라. 새봄에 읽을 만한 책들을 고르기로 한다. 날수로는 특별하지 않지만, 뭔가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하긴 2월보다는 날수가 많다).



1. 문학예술


먼저 문학쪽으로는 새로 시작된 시집 시리즈를 고른다. '현대문학 판 시리즈 시인선'의 첫 여섯 권이 한꺼번에 나왔기에. 박상순의 <밤이, 밤이, 밤이>부터 양안다의 <작은 미래의 책>까지다. 박상순, 이장욱처럼 구면의 시인부터 유계영, 양안다처럼 초면의 시인까지 망라돼 있다. 1955년에 창간된 잡지 '현대문학'이 펴내는 최초의 시인선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끄는데, 얼마나 이어질지가 성패를 말해줄 것이다. 



소설로는 <운명과 분노>(문학동네, 2017)의 작가 로런 그로프의 또다른 대표작 <아르카디아>(문학동네, 2018)과 이미 다룬 바 있는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의 <언어의 7번째 기능>(영림카디널, 2018)을 고른다. 분량이 좀 되는군.



2. 인문학  


역사 쪽으로는 루스 디프리스의 <문명과 식량>(눌와, 2018), 조엘 모키르의 <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 2018)를 고른다.<성장의 문화>는 '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이 부제인데, "서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서유럽과 아시아(특히 중국)의 경제가 17~18세기 이후 어떻게 그렇게 크게 벌어졌을까 하는 물음에 답하는 또 하나의 연구서"다. 뤼차오의 <동방제국의 수도>(글항아리, 2018)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서양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해석되어왔는지 살펴본 책이다. 



더불어,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와 관련한 책들도 고른다. 한상원의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에디투스, 2018)이 나온 게 계기인데,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이 부제다. 지난봄에 나온 브루노 아르파이아의 <역사의 천사>(오월의봄, 2017), 미카엘 뢰비의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난장, 2013) 두 권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3. 사회과학  


한겨레신문 정의길 기자의 <지정학의 포로들>(한겨레출판, 2018)은 "국내 저서로는 최초로 '지정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큰 흐름을 담대하게 조망한다." 국내 저서로는 처음이라는데, 그간에 번역서는 지정학 관련서가 드물지 않게 나왔었다. 최근에 나온 다카하시 요이치의 <전쟁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지정학>(시그마북스,2018)도 그런 부류의 책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2012년작 <지리의 복수>(미지북스, 2017)도 "지리는 세계 각국에 어떤 운명을 부여하는가?"가 부제인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의 신작 <유엔을 말하다>(갈라파고스, 2018)는 무기려한 유엔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 책이고, 인도 출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의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다>(21세기북스, 2018)는 대표 에세이 모음이다(제목은 역시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떠올리게 한다). 우석훈의 신작 <국가의 사기>(김영사, 2018)는 제목 그대로다. "광고, 주식, 다단계, 신용등급, 공무원, 이념과 클랜, 모피아, 토건족, 물 브라더스, 원전 마피아, 박사들의 클랜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자원외교, 4대강, 분양제, 버스 준공영제, 도시재생… 국가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친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먼저 이론 쪽의 책으로 스티븐 이얼리의 <과학학이란 무엇인가>(그린비, 2018)를 고른다. "저자는 사회의 온갖 부문을 타깃으로 삼는 사회학이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기술에 응당 돌아가야 할 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과학을 사회학의 주요 주제로 적극 도입하고자 한다." 의도를 고려하면 '과학사회학 입문'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겨우 존재하는 것들'로서 입자와 원소 이야기. 캐빈 헤스케스의 <입자 동물원>(반니, 2017)과 에릭 셰리의 <일곱 원소 이야기>(궁리, 2018)가 업데이트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따로 흥미를 끄는 주제로 지식과 알고리즘의 문제를 다룬 책들. 스티븐 슬로먼 등의 <지식의 착각>(세종서적, 2018)은 가령 이런 주장을 펼친다. "저자들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뇌의 독립적인 작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뇌는 몸과 세계가 연결되어 지적인 활동을 할 때 함께 움직이는 인지 체계의 일부일 뿐이다. 한마디로 마음은 뇌에 없다. 마음은 뇌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동원해서 정보를 처리한다. 마음은 몸의 도움을 받고, 사회에 깃든 지식에 의지하며, 주변 사람들이 가진 정보에 기대어 우리를 행동으로 이끈다." 


영국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부편집장 톰 스탠디지의 <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바다출판사, 2018)은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짧고 굵은 글로벌 이슈를 다뤘다." '세상의 온갖 (연결된) 지식'이라고 해야 할까. 브라이언 크리스천과 톱 그리피스의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청림출판, 2018)는 ‘컴퓨터과학의 알고리즘’을 우리의 선택 문제에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제시한다. '일상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생각의 혁명'이 부제다.

 


5. 페미니즘


이달에는 책읽기/글쓰기 카테고리 대신에 페미니즘 관련서를 고른다(워낙 많이 나오고 있어서다. 어쩌면 매달 고정 카테고리로 삼아야 할는지도).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오월의봄, 2018)는 "강간의 역사와 우리 시대의 강간 문화를 대서특필하며 출간 직후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페미니즘 고전"이다. 캐롤 페이트먼의 <여자들의 무질서>(도서출판b, 2018)는 반어적인 제목을 통해서 정치이론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검토한다.여성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의 저자 록산 게이의 <헝거>(사이행성, 2018)는 자전적 에세이다."어린 시절 겪은 끔찍한 폭력과, 그로 인해 몸에 새겨진 상처의 기록들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18. 03.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고른다. 현재는 민음사판 선집이 이 가장 많이 읽히는 듯한데, 소설전집이었던 <우울과 몽상>(하늘연못)은 절판된 상태다. 강의차 전집을 구하려 하니(비록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우울과 몽상>은 갖고 있는 책이어서 다시 구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코너스톤판(전5권)이 유일한 듯싶다. 물론 포 전집을 구성하려면 시전집과 비평에세이전집이 추가되어야 할 테지만. 


 

포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다 보니, 전집을 읽기에는 부담스럽고 선집만 읽기에는 뭔가 찜찜한 면이 있다(영어판도 선집과 전집을 따로 구한 까닭이다). 고딕 전통과의 관계가 이번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인데, 이달에는 포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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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주말마다 반복하는 일은 필요한 책을 찾다가 포기하는 것이다(가끔 찾을 때도 있다). 내주 강의할 모리 오가이의 책을 찾다가(<아베 일족>도 방에서 못 찾아서 어제 다시 구입했건만 다른 책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손이 가서 들고온 책이 박정대의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문학동네)다. 재작년 가을에 나왔군.

잠시 펼쳐보았다가 덮어둔 기억이 있는데, 다시 펼쳐보아도 마찬가지다. 이 시인의 시집은 <단편들>(세계사)이 가장 좋았다. 1997년에 펴낸 첫 시집. 1990년에 등단했으니 첫 시집이 더디 나온 셈이었다. 32살 때의 첫 시집이면 많이 늦은 건 아니지만. 첫 시집에 대한 긍정적 인상 때문에 이후에 나온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아무르 기타> 등의 시집도 구해본 기억이 있다. 아마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한 건 음악에 대한 취향 때문인 듯.

프로필에서 시인은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중˝이라고 적는다. 그럼 많은 게 이해가 된다. 이 시집의 온갖 자기도취적 말들이. 횡설수설이. 흥얼거림이. ‘전직 천사‘라는 자기소개가. 그리고 이런 고백이.

˝사실 나는 시를 쓸 때 어떤 구절을 쓰는지 신경쓰지 않을 때가 많다, 계속 음악만 듣는다, 가령 내가 좋은 시인이라면 분명히 괜찮은 구절들을 제대로 써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시를 그 음악에 매치시키는 데 더 집중한다.˝

인용한 대목을 포함한 50여 쪽의 기분기술(‘자동기술‘에 견주어)에 ‘의기양양‘이란 제목을 붙인 건 정확해 보인다. 그의 시는(시라고 한다면) 의기양양한 자기도취의 시이다(해설도 자신이 쓴다).

개인적인 유감은 젊은 시절의 빛나는 시들을 다시 읽을 수 없다는 점. ˝시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씌어졌고 그것도 영원히 씌어졌으며 나는 그저 시를 발견할 뿐이다˝라는 진술에 기대면 나는 그가 ‘물질적 황홀‘들(<단편들>)을 발견하던 때가 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황홀 말이다(시집을 지금 갖고 있지 않아서 정확한 인용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간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 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시선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위장처럼 나부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만이 죽음을 피해갔다, 음습한
관에서 부활하듯 나는 외출한다, 가로수들이 읽고 있는 거리
거리는 간판들의 무표정과 행인들의 그림자를 안고
도시의 페이지 속에 서표처럼 꽂혀 있다,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봄볕에 불탄다, 유곽과 성당을 지나온 나의 긴 그림자
나는 읽혀지지 않는 한 권의 책과 싸우듯
그렇게 걸으며, 이 거리가 나에게 전해주는 불임의 페이지를
피가 마르듯 그렇게 외로운 가슴의 강들을 스쳐지나며
씨팔, 모든 강들 흘러가 아우성치며 만날
바다를 생각하였다 죽음보다도 깊을
바다의 사랑을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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