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마지막 걸작이자 유작 <하지 무라트>(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대학 강의에서 읽고는 오랫동안 다룰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는 강의에서 마음놓고 다룰 수 있게 되어 반갑다.

˝러시아의 캅카스 전쟁 시기 북캅카스의 체첸 일대에서 용맹을 떨친 아바르인 전사 하지 무라트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톨스토이가 칠십대에 시작해 팔 년간 집필하고 사망 후 유작으로 출간된 이 소설은 톨스토이 연구가들에게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 ‘소우주의 <전쟁과 평화>‘로,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이야기이자, 산문소설의 시금석 같은 작품‘이라 상찬했다.˝

흔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후기 톨스토이의 대표작으로 간주되지만 나는 생전에 출간되지 못한 <하지 무라트>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가 중편소설에서 거둘 수 있는 성취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문이 불여일독이니 한번 읽어보시라고 할 밖에. 번역본은 이번에 나온 문학동네판 외에 지만지판이 있고 <톨스토이 중단편선4>(작가정신)에도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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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받은 임유경의 연구서 <불온의 시대>(소명출판)의 부제가 ‘1960년대 한국의 문학과 정치‘다. 이달에 ‘4.19와 한국시‘를 주제로 한 (비공개)강의도 진행할 예정이어서 겸사겸사 1960년대 문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짚어보기 위해 주문한 책이다. 저자는 창비에서 나온 <한국현대 생활문화사:1960년대>에도 필진으로 참여했는데 관심을 갖게 된 김에 같이 보려 한다.

지난해에 한국 현대문학을 강의하면서 주요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한 차례 훑어본 바 있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초벌칠은 한 셈. 좀더 두텁게 칠하면서 명암도 넣고 하는 일이 남았다(잘 진행된다면 단행본으로도 펴낼 생각이다.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나대로의 관견을 제시하려 한다). 일단 이달에는 1960년대를 다시 보는 걸로.

물론 시간제약상 작품을 두루 읽지는 못하고 몇권의 문학사와 연구서를 일독해보는 게 목적인데, <불온의 시대>와 함께 골라놓은 책은 복도훈의 <자폭하는 속물>(도서출판b)로 ‘혁명과 쿠데타 이후의 문학과 젊음‘이 부제다. 1960년대 교양소설에 관한 연구서.

˝‘젊음’이 의미 있는 상징으로 출현한 1960년대 한국의 교양소설을 다룬 책으로, 당시 젊은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하면서 이들 ‘청년 서사’에 나타나고 있는 정치사회적 현실의 의미를 반추하고 있다.˝

마침 이달에 헤세의 작품 네 편을 강의하게 되는데 독일교양소설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고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도 상당한 만큼 한국교양소설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음주에는 <데미안>도 다시 들여다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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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지방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서, 그것도 35분이나 연착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오늘은 여느 날부터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밤늦은 시간이 되고 보니 정신이 말짱하다. 망중한인 셈치고 오늘 배송받은 책들을(주문한 책들이 한꺼번에 도착해서 거의 스무 권에 이른다) 이것저것 펼쳐본다.

이달 ‘월간시인동네‘는 성윤석 시인 특집인데, 특집보다는 서평란에서 눈길이 멎었다. 김언의 <한 문장>(문학과지성사)에 대한 서평에 인용된 시들을 다시 보니, 분명 읽은 기억이 난다(알라딘 구매내역에 없어서 긴가민가했는데 서점에서 구입한 모양이다. 그런데 시집은 어딨지?). <한 문장>은 올 1월에 나왔으니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문학동네)과는 두 달 터울이다. 이 정도면 동시에 출간됐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두 시집이 연속적일 것임은 자명한 일. 아직 다 읽은 건 아니지만 기분에는 <한 문장>이 더 나은 것 같다. ‘시집 속의 시 한편‘으로 수록된 ‘지금‘을 보아서도 그렇다.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변하면서 말하고 변한 다음에도 말하라.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나가기 전에 말하라. 한순간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이미 그의 시가 ‘트레이닝의 시‘라고 적은 바 있는데 이 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는 말에서 파낼 수 있는, 퍼낼 수 있는 의미를 모두 파내고 퍼내기, 그게 이 시인의 전략이다. 언제든 말장난에 그칠 수 있지만 적당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그의 시는 말의 좋은 탄력을 보여준다. 다만 나로선 트레이닝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고 믿는 쪽이어서 그의 시의 향방이 궁금하다. 시로써 무엇을 할 것인가가.

하워드 진의 <역사의 정치학>(마인드큐브)으로 손길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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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3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목으로 내용을 어림할 수 있지만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은 책이다. ‘이주의 과학서‘로 점찍은 게르트 레온하르트의 <신이 되려는 기술>(틔움출판)이다. 원제는 ‘기술 vs. 인간‘. 번역본 부제가 ‘위기의 휴머니티‘다.

˝저자는 기계적인 알고리즘으로 쉽게 규정하거나, 파악하거나, 복제할 수 없는 인간적 특성을 안드로니즘(andronism)이라 말한다. 창의성과 연민, 상호성과 책임성, 공감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특성은 기계의 놀라운 능력에 비하면 느리고, 허약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여 자칫 무가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라 주장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으로 마크 오도넬의 <트랜스휴머니즘>(문학동네)도 책상에 오래 놓여 있다(원서도 구입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김영사)까지 가 닿는다. 안 그래도 여름에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강의할 일이 있는데 그 전에 <신이 되려는 기술>과 <트랜스휴머니즘>을 일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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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엘리엇의 ‘황무지‘(1922)를 아주 오랜만에 강의에서 읽게 책을 다시 주문했다. 현재 번역본으로는 민음사판과 이담북스판이 있는데, 확인해보니 이담북스판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절판된 상태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 오히려 연구서들이 절판되지 않고 남아있다. 이 역시도 수요가 없어서인 듯 보이지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엘리엇 자신은 개인적인 경험을 리듬에 실어서 노래했다지만 ‘황무지‘는 불모의 20세기를 상징적으로 다룬 대표작으로 읽혀 왔다. 무엇이 세계문학인가란 물음에 답하는 사례가 된 셈.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그러한 상징성을 갖게 된 것과 견줄 만하다.

‘황무지‘의 원서로는 펭귄판을 주문했다. 온라인에 원문이 다 떠 있지만 종이책이 휴대와 독서에 더 간편해서다(펭귄판은 가벼운 종이를 쓴다). 강의를 핑계로 그동안 나왔던 연구서와 연구논문도 훑어볼 참이다. 언제 또 읽어보겠느냐는 생각으로. 목련과 벚꽃이 한창인 이 봄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곁에 있을 때만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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