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지방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서, 그것도 35분이나 연착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오늘은 여느 날부터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밤늦은 시간이 되고 보니 정신이 말짱하다. 망중한인 셈치고 오늘 배송받은 책들을(주문한 책들이 한꺼번에 도착해서 거의 스무 권에 이른다) 이것저것 펼쳐본다.

이달 ‘월간시인동네‘는 성윤석 시인 특집인데, 특집보다는 서평란에서 눈길이 멎었다. 김언의 <한 문장>(문학과지성사)에 대한 서평에 인용된 시들을 다시 보니, 분명 읽은 기억이 난다(알라딘 구매내역에 없어서 긴가민가했는데 서점에서 구입한 모양이다. 그런데 시집은 어딨지?). <한 문장>은 올 1월에 나왔으니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문학동네)과는 두 달 터울이다. 이 정도면 동시에 출간됐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두 시집이 연속적일 것임은 자명한 일. 아직 다 읽은 건 아니지만 기분에는 <한 문장>이 더 나은 것 같다. ‘시집 속의 시 한편‘으로 수록된 ‘지금‘을 보아서도 그렇다.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변하면서 말하고 변한 다음에도 말하라.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나가기 전에 말하라. 한순간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이미 그의 시가 ‘트레이닝의 시‘라고 적은 바 있는데 이 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는 말에서 파낼 수 있는, 퍼낼 수 있는 의미를 모두 파내고 퍼내기, 그게 이 시인의 전략이다. 언제든 말장난에 그칠 수 있지만 적당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그의 시는 말의 좋은 탄력을 보여준다. 다만 나로선 트레이닝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고 믿는 쪽이어서 그의 시의 향방이 궁금하다. 시로써 무엇을 할 것인가가.

하워드 진의 <역사의 정치학>(마인드큐브)으로 손길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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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3 2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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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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