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른가 하며 눈을 비비니
이미 환한 아침
모텔 창문을 열고서야 알았다 아침
햇살은 진작 창문을 두드렸지만
흑막에 싸인 모텔 창문은 방음도 완벽하여라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자고 일어나면 그레고르 잠자
잠자는 자기방에서 벌레가 되고
나는 객지에서 유충이 된다

늦지 않았어도 서두르며
여긴 호텔이 아니야 중얼거리며
하지만 호텔에서도 나는 잠자가 아니었던가
가족이 곁에 있어도 잠자는
벌레가 아니었던가
(여기에 비명을 넣어주시오)
그레고르는 투덜거렸지 매일같은
출장, 기차, 사람들, 불규칙한 식사 너무
고달픈 직업이라고 투덜댔지
어느 날 아침은
그런 때 찾아온다 마치
주문한 것처럼

그레고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
완벽한 각본처럼
벌레를 연기했지 벌레가 되고 투덜대고
가족을 놀라게 했지 지배인을
까무라치게 할 뻔
했지 브라보!
하지만 자기방을 떠나지 않았다네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네
아버지가 문짝을 닫아도
등짝에 사과를 맞아도
그레고르는 가족을 사랑했다네
그래 잠자 가족이지

기차를 기다리며 나는
잠자에 대한 시를 쓰지
아무도 그런 줄 모르게 그레고르의
아침을 떠올리지 잠자의 아침도
세상의 모든 아침이었을 테니
벌레가 되기에 충분한 아침
투덜거리기에도 충분하고
가족을 사랑하기에도
충분한

그렇지만 그레고르는 써야 했지
고달프지만 써야 했지
벌레가 되어서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벌레인 거야
벌레 같은 자식
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네
사랑하는 아버지
라고 그레고르가 말했다네
그렇게 된 일이었지

잠자는 자기방에서 벌레가 되고
벌레로 죽었다네
탄식처럼 마지막 숨이 새어 나왔다네
기차가 오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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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4-2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딩때 <변신> 읽고 충격 받았던...
대학때 프랑스문화원에서 흑백영화
<성>을 보고 낯설었던...
지금도 어려운 카프카는 수년전
서간집에서 성실하고 가족과 연인에 대한 지순한 사랑에 조금은 안타깝고도 친밀해진, 그러나
조심스러운 존재입니다, 제겐.

로쟈 2018-04-28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강의하면서 친숙해지려고 애쓰는중.~
 

어제 <마르크스에 관한 모든 것>(살림)을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읽어보면 좋겠다고 적었는데 그보다 더한 강적을 빠뜨렸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아르테)다. ‘위대함과 환상 사이‘가 부제. 번역본상으로 무려 1000쪽이 넘어가는 대작 평전이다(책값도 7만원이 넘어간다). 가히 올해 나올 책 가운데 일찌감치 종결자가 등장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은 2016년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가디언‘ 등 유력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2016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출간하자마자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모습과 사상을 19세기 풍경을 통해서 ˝풍부하고 섬세하게˝ 다룬 새로운 평전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이자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도전적인 서평을 받는 등 마르크스의 이론적 계보를 잇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저작이 되었다.˝

캘리니코스의 도전적인 서평이 나왔다는 것은 비판을 받았다는 것으로 읽힌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관과는 충돌한다는 얘기 같다. 캘리니코스나 ‘맑스 재장전‘파와 전선을 형성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역자 홍기빈 박사의 해제를 참고해봐야겠다. 원서도 구입하려니 책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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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남 운중동 명태집에서
속초산 명태집에서
명태조림으로 저녁을 먹으며 왜
어떤 건 명태조림이고 어떤 건 코다리조림인가
잠시 궁금해하다가 같은 건가 싶다가
건조건 반건조건 어차피 명태인데
코다리조림도 실상은 명태조림 아니냐
그런 걸 물어보는 건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나름
나도 지식인인데 분자도 지식분자인데
알 건 알고 모르는 건 대충 알고
그런 것인데

그러다
바라본 대형사진의 속초항 속초바다
절반의 고향이건만 못 보던 항구인가 싶어
못 가본 지 오래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실향민 아바이마을도 저만치
있구나 싶었다 속초는 38선 이북이니
속초산 명태는 원래 이북에서 넘어온 자들
한류를 타고 내려온 자들
명태조림을 먹었다고 또 검색해보니
명태가 12년만에 동해로 돌아왔단다
동해 연안에서 자취를 감춘 명태가 돌아올 조짐
그러고는 오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고
짜맞춘 것 아니냐 싶게 만나고
이건 실화냐

남북 정상회담은 11년만이라
잃어버린 11년이라 하고
명태는 12년만이라 잃어버린 12년
때 맞춰 명태가 돌아오고
때 맞춰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
때 맞춰 나는 어제 명태조림을 먹었구나
명태잡이배 타던 옆집 명수네 아버지도 생각나고
그건 어느덧 38년도 더 전
세월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그게 역사로 보인다
흔하디 흔하다 싶던 명태도
때로는 역사적 명태로 등극하느니
그건 모르는 자들 빼고는
다 아는 일
한갓 명태조림 먹은 일로 시를 썼다고
불평하는 자들만 모르는 일
먹여줘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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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류의 책을 좋아하는데 특히 작가나 사상가의 평전이라면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다(정치가 평전은 망설일 때가 있다). ‘이주의 평전‘을 고른다면 단연 <발터 벤야민 평전>(글항아리)다. 원저는 진작 구했었고 번역본이 나오길(번역되지 않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기다리던 책이다. 공저자는 영어판 벤야민 선집을 번역한 벤야민 전문가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벤야민의 삶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동시에 연민·이해의 잣대이며, 다른 한편 한 개인의 삶을 철저히 학술과 비평의 관점에서 꿰어내는 점이다. 즉 단락 하나하나, 페이지 한 쪽 한 쪽이 그의 논문과 에세이들을 인용·압축하고 그에 대한 비평적 서술을 곁들여 삶에 대한 평전이면서 텍스트에 대한 서평이나 비평에세이의 성격을 갖는다.˝

몇년 전에 나온 듀오그라피 <벤야민과 브레히트>(문학동네)도 얼마전에 원서를 구하고 독서 준비를 마쳤는데 이번에 <발터 벤야민 평전>이 추가되어 의욕은 충만하다. 기력이 받쳐주느냐가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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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강의차 KTX에 몸을 실었다. 오늘 강의는 <안나 카레니나>. 아침에 워밍업 삼아 안나를 소재로 시도 한편 썼다. 지난 월요일부터 매일 한편씩 쓰는 중이다. 페이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막아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20년만에 쓰는 기분도 나쁘지 않기에.

두달 정도 강의를 하면 한주쯤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5월 첫주 강의를 최소로 잡았지만 그 사이 특강들이 채워져서 예상했던 휴식은 취하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후반기에 다룰 책들 가운데 처음 강의에서 읽는 작가와 작품이 여러 편이라 준비도 필요하다. 마크 트웨인과 헨리 제임스를 읽을 예정이고 울프의 <올랜도>도 강의에서 처음 다룬다.

분기별 혹은 작가별 강의가 끝날 때마다 물개 조련사들이 정어리를 던져주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포상을 내린다. 이번주에 종강한 일본근대문학 강의와 관련해서는 ‘일본현대문학사 시리즈‘를 중고로 구입했다. 동국대출판부에서 나온 시리즈로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라 ‘사라진 책들‘에 속한다. <일본 메이지문학사><일본 다이쇼문학사><일본 쇼와문학사>로 구성돼 있고 저자는 모두 다르다. 다만 역자가 공통이어서 역자의 기획으로 보이는 시리즈다.

가라티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가토 슈이치의 <일본문학사서설>(전2권) 등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문학사인데(영어책으로는 로널드 킨의 <일본문학사>도 갖고 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일본현대문학사 시리즈‘가 보강됨으로써 제법 든든해졌다. 다음에 또 일본근현대문학 강의를 진행한다면 내용을 좀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겠다. 아마도 한두번 정도 더 다룰 수 있지 않을까. 강의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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