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뮌헨공항에 안착해서 하룻밤을 보냈다. 왕실양조장이었다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저녁식사를 한 것이 첫 일정이라면 일정이었다(나치의 첫 집회가 열렸던 곳이라고도 한다. 히틀러가 연설하기도 했던 연단 아래 무대에서는 식사 시간 내내 관악밴드의 행진곡이 울려펴졌다. 독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뮌헨과의 상견례 같은. 맥주는 맛이 있었지만 기내 석식까지 먹고 한국시간으로 밤 1시가 넘어 기름진 닭고기, 돼지고기를 먹으려니까 힘이 들긴 했다. 게다가 여느 유럽 음식처럼 우리 입맛에는 매우 짰다.

오늘 오후일정을 마치면 슈투트가르트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을 예정이라 뮌헨과의 인연은 만 하루밖에 되지 않는다. 릴케와 토마스 만 등 여러 작가, 예술가와 연고가 있는 뮌헨대학과 주변 슈바빙거리를 둘러볼 참이고 뮌헨이 자랑하는 영국정원도 들르게 된다. 1916년 카프카가 ‘유형지에서‘를 낭독했던 서점은 현재 남아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그 자리에는 가보려고 하고, 토마스 만에 관한 전시관도 일정에 추가해서 들를 예정이다.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에 등장하는 뮌헨은 셸링거리다. 크뢰거의 친구인 화가 리자베타의 아틀리에가 자리했다고 나오는 거리다.

여행을 떠나겠다는 크뢰거에게 리자베타는 이탈리아로 가느냐고 묻는데, 크뢰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북쪽으로 갈 거라고 말한다. 그의 목적지는 덴마크 해변인데, 도중에 그는 (지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고향 뤼벡에 들른다. 이번 뮌헨에서 뤼벡을 향하는 독일문학기행의 여정은 토니오 크뢰거의 뒤를 따르는 여정이다. 다만 중간에 괴테의 바이마르와 헤세의 칼브를 방문하는 등 옆으로 자주 샐 예정이지만.

뮌헨의 아침이 환하게 밝았고 이제 목표한 일정을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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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i 2018-10-18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유익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로쟈 2018-10-19 12:13   좋아요 0 | URL
감사.~
 

인천공항에서 뮌헨까지 10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앞두고 기내에서 적는 페이퍼다. 아침에 부랴부랴 책짐을 쌌는데, 평전과 작품이 우선 순위였다. 릴케와 헤세도 포함되어 있지만 작가와 도시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독일문학기행의 핵심은 괴테와 토마스 만이다. 보헤미아 출신의 릴케와 마찬가지로 헤세도 보헤미안적 삶을 살았다. 말년에 스위스에 안착했더라도 그의 정신의 고향을 특정하긴 어려울 것이다(동양에 대한 그의 관심을 고려해보더라도).

반면 프랑크프루트 출신의 괴테의 삶은 성장기를 보낸 프랑크푸르트와 공직자로 오래 봉직했던 바이마르와 분리되지 않는다. 거기에 이탈리아(<이탈리아여행>)와 베츨라(<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더할 수 있겠다. 북부 항구도시 뤼벡 출신의 토마스 만에게도 성장기를 보낸 뤼벡과 작가생활을 시작하는 도시 뮌헨은 핵심적인 장소다(<토니오 크뢰거>는 뮌헨에서 뤼벡으로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제 그 흔적을 따라보려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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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에 도착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한숨 돌린다. 지난겨울에는 시간표를 잘못 알아 리무진을 놓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확실히 여행 성수기는 아닌 듯해서 리무진 탑승객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다. 차가 좀 막히더라도 예정시각까지는 공항에 도착하겠다.

문득 독일도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덩달아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독일의 가을>(1978)이 떠올랐다. 순전히 제목 탓이다. 1970년대 서독의 음울한 사회상을 담은 다큐 스타일의 영화. 기억에는 지난 2004년에 모스크바에서 보았다. 사전 정보도 없이 ‘독일의 가을‘이란 제목에 끌려 선택했다가 두 시간 동안 심문을 받는 듯했다. 붉은여단의 테러리스트들을 다룬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건 동료감독이기도 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무슨 말을 한 건지 기억에 없지만(이 독일 영화를 러시아어 더빙으로 봤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파스빈더는 이 영화에 나오는 파스빈더다.

1960년대가 프랑스 누벨바그의 연대였다면 1970년대는 뉴저먼시네마의 연대였다. 클루게와 파스빈더가 그 대표자들. 영화사에 좀더 관심이 있었다면 이들의 영화와 책을 더 많이 보았을 터인데 내가 본 건 파스빈더의 몇몇 영화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한나래) 같은 책이다. 클루게의 단편선 <이력서들>(을유문화사)과 러시아에서 나온 영화론집 <알렉산더 클루게> 등도 갖고 있지만 언제 읽을지는 기약이 없다. 1970년대 독일의 문학과 사회에 꽂히지 않는다면 손에 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같은 독일의 가을이지만 1978년의 가을은 40년 전의 가을이다. 아, 1978년이면 한국도 아직 유신시대였다! 음울하기로 치자면 우리도 못지 않았겠다. 그 이듬해 가을과 겨울, 권력자의 암살과 군부의 반란으로 남한 사회는 격랑에 빠져들 터이다. 다시 되돌리기 꺼려지는 역사다. <독일의 가을>도 그냥 묻어두어야겠다.

아침부터 이런 페이퍼를 적는 걸 보니 여행이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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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마지막날에 대부분 느끼는 침울함과 함께 동네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가방에는 내일 강의할 책들을 넣어 왔다. 즐거운 연휴가 끝나서 침울한 게 아니라 늘 그렇듯이 해야 할 일들을 끝마치지 못해서 침울한데, 매번 연휴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니 이 또한 습관이다. 휴일이 아닌데 휴일로 시간을 보낸 데 대한 습관적 괴로움이라니.

연휴에 무얼 했던가. 박상영의 소설집을 읽고(나는 그가 3인칭 소설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혹은 홍상수 영화가 그렇듯이 술먹고 섹스하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쓸 수 있을지도), 하라리의 책을 절반 정도 읽고(하라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안도감이다. 이걸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독자가 읽는다는 안도감. 그럼에도 역부족인 것인지 궁금하다. 하라리는 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늠해보는 척도다. 혹은 대중독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그의 예측대로 ‘대중‘의 시대도 이제 서서히 힘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잠시 들춰본 여러 권의 책.

연휴에는 책주문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이번 연휴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외서는 일단 (개인적인) 주문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가 내달 독일여행을 앞두고 이래저래 챙겨볼 책들이 생겨서다. 여행서가 대표적인데, 론리 플래닛 베스트 시리즈 몇권을 주문한데 이어서 이다혜의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나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등의 책이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는 물론 보들레르의 인용일 텐데, 오늘처럼 흐린 날 침울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더욱 절감하게 된다. 언젠가 적은 대로 시는 인식이 아니라 기분의 권력에 봉사한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그 권력의 순종하는 신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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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강의준비를 하다가(내일 아침 마감인 원고도 써야 한다) 막간에 책장 한칸을 사진으로 찍었다. 식탁이 도서관 책상으로 변신하면서 평소보다 더 자주 이용하게 될 듯싶다.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에 강의나 원고와 관련된 책들을 그때그때 꽂아두려고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조금 정돈은 했지만(옷을 추스리는 것처럼) 아직 정리가 끝난 건 아니고 이 칸에서도 절반의 책은 다른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교유서가)는 서명으로 넣은 것이고 <똑똑함의 숭배>(갈라파고스)와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은 최근에 서평을 쓴 책들이다. 언제 예고한 대로 <이데올로기 청부업자들>(레디앙)에 대해서도(원서를 어렵사리 구했다. 주문하고 배송까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돼 ‘어렵사리‘ 구한 것처럼 느껴진다) 읽는 대로 서평을 쓰게 될 것이다(늦어도 다음달까지는?).

가운데 꽂은 책은 독일의 젊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간 <나는 뇌가 아니다>(열린책들)이다. ‘21세기를 위한 정신철학‘을 표방한 책. 가브리엘은 1980년생으로 유발 하라리보다 네 살 어리며 나와는 띠동갑이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나보다 어린 저자의 책을 읽을 일은 드물었는데 앞으로는 점점 빈번해질지 모르겠다(즐거운 일일까, 씁쓸한 일일까).

가브리엘의 다른 책들도 다 갖고 있는데 눈에 띄는 대로 옮겨올 예정이다.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열린책들)와 지젝과의 공저 <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인간사랑) 등이다. 독일문학기행을 앞두고 읽어야 할 독일문학과 철학, 문화예술, 여행 관련서들이 잔뜩인데, 당장은 가브리엘을 읽기로. 그리고 아마도 제바스티안 하프너와 히틀러 관련서들을 읽으려고 한다. 그 책들이 결국 이 칸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정돈하게 되면 다시 한 컷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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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9-1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고딩아이를 위해 구매목록에
올렸으나 얘가 세계사 안한다고 해서
오리무중-.-
*책에 빠져 죽지않기 - 읽는 중.
한번 빠져죽자,고 먼저 1부 서론 보고
관심분야부터 읽는데 친절한 설명에
게다가 내용이 짧다^^

로쟈 2018-09-03 17:43   좋아요 1 | URL
서평은 짧아야 한다는게 소신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