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넘게 방정리를 해도 찾는 책이 보이지 않아 어이없어 하면서(하지만 익숙한 어이없음이다) 이런 것도 자기분석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 카렌 호나이의 <나는 내가 분석한다>(부글북스, 2015)가 출간됐는데(원제는 <자기분석>), 대표작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도 올해 <내가 나를 치유한다>(연암서가, 2015)란 제목으로 나왔기에 호나이는 이제 비로소 독서 목록에 오르게 된 정신분석가다.  

 

 

이전에도 책이 좀 나오긴 했지만 나는 <내가 나를 치유한다> 덕분에 카레 호나이란 이름을 알게 됐다. '프로이트를 잇는 정신분석학의 대가'라고 소개되는 여성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올해 독서계를 뜨겁게 했던 알프레드 아들러와 더불어 신 프로이트 학파를 형성한 걸로 돼 있다. 주로 다루는 분야는 신경증. 그런데 현대인의 대다수가 신경증자인 걸 고려하면(라캉 정신분석에서 보면 신경증은 '정상적인' 인격구조다) 그만큼 적용 범위가 넓은 분석과 치유법을 제안한다고 할까. <나는 내가 분석한다>의 소개도 이런 식이다.

신경증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사례 중심으로 세세하게 소개된다. 타인에 대한 의존이 병적일 만큼 심한 사람, 무대 공포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 불안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 등이 자신을 분석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설명된다. 따라서 그 동안 정신분석 이론서를 통해 정신분석의 세계를 어렴풋이 본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정신분석의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저작인 <내가 나를 치유한다: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역시도 신경증을 다루는데, 발병 원인과 유형, 그리고 극복 방법에 대해 자세히 밝힌다. 책소개에는 그녀의 관점이 이렇게 요약돼 있다.

모든 신경증은 불리한 조건에 놓인 개인이 좋은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진실한 나를 망각한 채,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상에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집착하는 데서 발병한다. 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은 살면서 겪는 갈등과 불안에서 오는 압박과 긴장을 덜려고 선택한 해결책에 따라 확장 지배 유형, 자기 말소 의존 유형, 체념 독립 유형으로 분류된다. 세 유형이 선택한 신경증 해결책은 가짜 해결책으로 압박감을 일시적으로 덜어 줄 따름이다. 신경증에 걸린 사람은 자기를 분석하고 진실한 나도 찾아, 현실에 직면하고 스스로 책임지며 살 때 신경증을 극복할 수 있다. 현대인이 대부분 앓는 신경증을 극복해야 건강하고 인간답게 성장할 가능성도 열린다.

 

그밖에 호나이의 책은 오래 전에 나온 <현대인의 이상성격>(배영사, 1991)을 제외하면 모두 입문서 내지 소개서다. 두 권의 주저를 읽어본 다음에 더 궁금하다면 참고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자기심리학'의 하인즈 코헛과 같이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다...

 

15.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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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멋진 표지와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리베카 솔닛(그간에 '레베카 솔닛'으로 표기됐다)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 나로선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의 저자로 기억되는데(그 외에도 두 권이 더 번역돼 있다) 영어권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저자라 한다. 어떤 책인가.

 

생태, 환경, 역사,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재치 넘치는 글쓰기를 선보여 우리 독자에게도 환영받아온 리베카 솔닛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전세계에서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의 발단이 된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해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힘을 고찰한 9편의 산문을 묶었다. 잘난 척하며 가르치기를 일삼는 일부 남성들의 우스꽝스런 일화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별(남녀), 경제(남북), 인종(흑백), 권력(식민-피식민)으로 양분된 세계의 모습을 단숨에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이 양분된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저자에게 공감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여성)독자가 꽤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그런 성구분을 넘어서 '좋은 에세이'라는 면에서 기대를 표하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당장 책을 읽어보고 싶지만 알라딘에서는 바로 주문해도 다음 주 중반에야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아쉽지만 리베카와의 만남은 다음 주말에나 가능할 것 같다...

 

15.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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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휴일이라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한달쯤 전에 나온 책이라 '발견'이라고 하기엔 멋쩍지만 오늘에서야 눈에 띄었으니 발견은 발견이다.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하다>(글담, 2015). 원제가 '집의 의미'다.

 

건축가이자 건축평론가인 에드윈 헤스코트가 집의 역사와 공간의 의미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유명한 건축물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부엌, 거실, 침실, 서재 등의 공간뿐 아니라 창문, 문 손잡이, 책, 옷장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와 의미를 살핀다.

유명한 건축물이 아닌 평범한 집, 일상적 공간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는 것이 강점. 친근하게 읽어봄직하다.

 

 

곁들여 읽어볼 만한 책이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의 신작 <철학이 있는 식탁>(이마, 2015)이다. '먹고 마시고 사는 법에 대한 음식철학'이 부제.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가장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관계와 윤리,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유기농, 친환경, 동물 복지, 지역 생산 재료 등 음식을 둘러싼 논의를 근원부터 들추어 꼼꼼히 살펴보고, 개인이 좋은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품성과 습관을 먹는다는 측면에서 논하고 그것을 어떻게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먹고 마시는 일, 곧 '다반사'는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상 하는 일이다. 가장 익숙한 일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 집과 식사, 가장 익숙한 공간과 가장 익숙한 일에 대한 성찰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한 것인지 가늠해보는 것도 독서의 재미겠다...

 

15.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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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을 맞아 밀린 일들을 해치우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밀린 피로를 푸는 하루가 되었다. 하긴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터이니, 좋은 휴식도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서재 일도 꽤 밀려 있지만 그냥 느긋하게 '이주의 발견'에 대해서만 적기로 한다(아직 연휴에 여유가 있다는 게 비빌 언덕이다).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다른, 2015).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가 부제다. 하버드대보다는 예일대의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그렇게 붙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 2002)를 염두에 둔 제목이겠다.

 

 

원저의 부제는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과 의미 있는 삶의 길'이다. <똑똑한 양떼>가 원제.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저자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아성찰과 고독, 정신적인 삶의 가치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반문했단다. "우리가 그저 '똑똑한 양떼'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책의 제목은 그 질문에서 가져온 듯한데, 저자의 과녁은 공부 잘하는 우수한 학생들을 결국은 '똑똑한 양떼'로 만드는 데 그치는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다. 학생에서 교수까지 아이비리그에서 24년을 보낸 저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엘리트 교육 시스템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투지가 넘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소심하고 길을 잃고 지적 호기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목표의식이 부족한 학생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특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만,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엘리트 교육의 허점'이란 평론을 저자는 2008년에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공부의 배신>은 이를 더 자세하게 다룬 책이다. 찾아보니 뉴욕타임스와 뉴요커에 장문의 서평이 실렸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미국의 대학사회에 여론 주도층에 꽤 어필한 책으로 보이는데, 미국의 '좋은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이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대학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들 아닌가). 추천사를 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 '후진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사교육 기관의 '불안 마케팅'에 마음 졸이는 부모들도 한번쯤 펼쳐봐야 한다. '좋은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도대체 '좋은 대학'이 왜 한국사회에 필요한지 고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시험을 치르고 며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한번 일독해봄직하다(학생들이 시간이 없다면 학부모라도).

 

 

한편 저자는 제인 오스틴 전문가이고 <제인 오스틴의 교육>(2011)이란 책을 갖고 있다. <제인 오스틴에게 배우는 사랑과 우정과 인생>(재승출판, 2011)이라고 번역된 책이다(저자가 '윌리엄 데리지위츠'로 표기돼 있다). 학술서로는 <제인 오스틴과 낭만주의 시인들>(2005)이 있다. 오스틴에 대해서는 종종 강의를 하게 되기에 관심이 가는 책들이다...

 

15. 05. 01.

 

 

P.S. 참고로, 미국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다룬 책은 몇 권 나와 있다. 다시 언급하자면, 소스타인 베블런의 <미국의 고등교육>(길, 2014), 앤드류 해커 등의 <비싼 대학>(지식의날개, 2013), 프랭크 도너휴의 <최후의 교수들>(일월서각, 2014) 등이다.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면도 있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럴 만한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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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식전이어서 그런지 '먹는 책'이 눈에 띄었다. 데버러 럽턴의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한울, 2015). 저자는 초면인가 했더니 <의료문화의 사회학>(한울, 2009)이란 책으로 먼저 소개된 바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저작을 펴내고 있는 호주의 사회학자다.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의 원제는 번역본이 부제이기도 한 <음식, 몸, 자아>(1996)다. 어떤 책인가.   

음식이 몸과 자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연구 과정에서 음식 먹기의 사회학과 감정 사회학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1996년에 출간되어 오래된 책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2011년과 2012년에도 재판을 거듭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먹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 현상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다만 교양서라기보다는 학술서에 해당한다는 점(책을 낸 출판사나 책값만 보아도 책의 난이도를 어림할 수 있다). 정말로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인지는 미지수다. 대신 '음식사회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안내하는 입문서 정도로 읽을 수 있겠다. 찾아보니 같은 분야의 책으론 앨런 비어즈워스 등의 <메뉴의 사회학>(한울, 2010)이 번역돼 있다.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과 역자가 같다. 어떤 경로로 번역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역자가 옮긴 책으론 밥 애슬리 등이 쓴 <음식의 문화학>(한울, 2014)이 더 있다. 최근에 나온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어크로스, 2015), 그리고 몇년 전에 나온 주영하의 <음식인문학>(휴머니스트, 2011) 등과 같이 묶어서 읽어봐도 좋겠다(입맛을 좀 잃긴 했지만 책에 대한 입맛은 여전한 모양이다). 점심 먹어야겠다...

 

15.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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