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두 작가의 작품을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데이비드 밴의 연작소설 <자살의 전설>(아르테, 2014)과 캐런 톰슨 워커의 장편소설 <기적의 세기>(민음사, 2014).

 

 

먼저 1966년생인 데이비드 밴은 알래스카의 알류샨열도 태생. 늦깎이 데뷔작 <자살의 전설>(2008)은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충격을 소설화한 것인데, 열아홉부터 스물아홉까지 무려 10년간 쓰고, 12년간은 출판사를 전전했던 작품이다. 겨우 한 문학상에 응모하여 당선된 이후로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얻은 작품('작가의 전설'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아래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데이비드 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오롯이 담긴 <자살의 전설>은 2007년 그레이스 팔리상 수상을 시작으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비롯해 전 세계 12개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에 40회 선정됐다. 프랑스에서만 25만 부가 판매되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미국 전역에서 팔린 것보다 더 많이 팔리는 등, 특히 유럽에서 아낌없는 지지를 받았다. 하나의 중편(수콴 섬)과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0여 년에 걸쳐 이를 아프게 반추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는 마침내 여섯 개의 문을 통해 아버지와의 상상 만남을 시도한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죽음(어류학), 두 번째는 아버지의 사랑(로다), 세 번째는 아버지의 부재(선인의 전설), 네 번째는 아버지와의 휴가(수콴 섬), 다섯 번째는 아버지의 여인(케치칸),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아버지와의 화해(높고 푸르게)이다.

특히 작가 지망생들이 눈여겨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는데(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이 소설은 특별하다'고 평했다) 밴 스스로는 코맥 매카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로드>와 비교되지만 '그보다 훨씬 훌륭한 소설 <핏빛 자오선>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한편 <기적의 세기>도 캐런 톰슨 워커의 데뷔작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지진을 모티프로 쓴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호평을 받았다"고 소개된다. UCLA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컬럼비아대학에선 미술학 석사를 받은 이력을 갖고 있다. 출판 편집자 경력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고 쓴 소설 같다.

 

톰슨 워커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후 출판사 사이먼앤슈스터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출근하기 전이나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이 작품을 완성했다그녀는 어린 시절 지진이 일어나 거실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던 일을 모티프로 삼았으며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일어나는 현상과 그에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일들을 때로는 현실적으로 때로는 환상적으로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인공인 십 대 소녀가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가 송두리째 변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그 안에서 자기만의 ‘기적을 찾는다는 이 소설은 모두가 경험하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자자기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데뷔작이기 때문에 특히 그렇지만, 데이비드 밴과 마찬가지로 톰슨 워커의 소설도 작가 지망생들에게 좋은 공부거리가 될 듯싶다. '전설'과 '기적'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지 않을까...

 

14.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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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들이 연휴에 던질 수 있는 질문 가운데 순위를 매기자면 스물한 번째쯤에서 혹 "폴 오스터는 왜 글을 쓰는가?"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느닷없는 건 아니다. 최근에 나온 인터뷰집 <글쓰기를 말하다>(인간사랑, 2014)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오스터의 인터뷰는 '파리 리뷰'지 인터뷰 모음집 <작가란 무엇인가>(다른, 2014)에도 포함돼 있다).

 

 

일차적으론 폴 오스터의 독자들이 반가워 할 책이지만, 글쓰기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누구나 눈길을 줄 만하다. 이 25년 동안의 인터뷰 모음집에서 폴 오스터가 줄곧 던지는 질문이 바로 '왜 글을 쓰는가?'이기 때문.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글쓰기가 직업, 그것도 천직니까. 그에게는 삶이 글쓰기이고 글쓰기가 삶이니까. 약간 맥이 풀릴 수도 있지만 그의 대답은 이렇다.

"왜 쓰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답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글쓰기를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합니다."

작가라면 글쓰기란 무엇인가란 문제에 천착할 것 같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며 또 그 문제를 오스터만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흔하진 않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작가지망생들에겐 유익한 교본이 될 만한 인터뷰들이다. 오스터의 책을 책상 한쪽에 열권은 쌓아놓은 다음, 한 계절 정도 천천히 읽어나간다면 '폴 오스터 글쓰기' 코스를 완주할 수 있겠다.

 

 

알다시피 국내에서 오스터의 소설들을 전담하여 출간하고 있는 곳은 열린책들이다. 이번 책에는 <보이지 않는>(열린책들, 2011)까지 다룬 인터뷰가 실렸다. <선셋파크>(열린책들, 2013)를 막 끝낼 무렵까지의 오스터다. 그의 회고록 <겨울 일기>(열린책드, 2014)는, 생각해보니 아직 구입하지 않아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보이지 않는> 이후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훗날 또 다른 인터뷰집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런 인터뷰라면 언제라도 마다하지 않을 작가이니 만큼 기대는 시간이 충족시켜줄 것이다(비록 그가 앞으로도 25년을 더 살기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더 나올 만한 오스터의 책. <겨울 일기>의 속편 격인 <내면의 보고서>.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쿳시와 교환한 편지 모음집 <지금 여기> 등이다. 독특하고 괴팍한 작가 쿳시의 비평과 에세이들을 최근에 구입한지라 두 사람이 나눈 '대화'도 구미가 당긴다. 소프트카바로 주문을 넣어야겠다...

 

14. 0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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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중앙일보에 실린 '삶의 향기' 칼럼을 옮겨놓는다. 얼마 전에 다녀온 프라하 여행의 소감을 일부 적었다. 카프카의 프라하에 대해선 클라우스 바겐바하(바겐바흐)의 <카프카>(한길사, 2005)와 <카프카의 프라하>(열린책들, 2004)가 요긴한 참고가 된다. <카프카의 프라하>는 절판돼 아쉽다.

 

 

 

중앙일보(14. 08. 26) 카프카를 찾아서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다녀왔다. 직항 편을 타지 않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했는데, 루프트한자의 보잉 747 여객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할 때는 은근히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라도 흘러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세계 최대의 허브 공항 가운데 하나라지만 내가 아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서두에 등장하는 공항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중년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착륙 즈음에 ‘노르웨이의 숲’이 흘러나오자 옛 시절이 떠올라 격한 감정에 빠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스튜어디스가 안부를 묻자 괜찮다고 대답하는 게 소설의 서두다. 한때는 비틀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루프트한자 비행기에서는 “곧 착륙할 테니 좌석벨트를 단단히 매라”는 방송만 나왔다. 그리고 프라하행으로 환승하기까지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첫 유럽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특별히 프라하를 선택한 건 ‘카프카의 도시’여서다. 카프카의 동시대를 살았던 프라하의 시민들 가운데 누구도 그가 이 도시의 대표적 인물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평생을 프라하에서 살았고 이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꿈꿨지만 그는 프라하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적었다. ‘베를린은 프라하의 해독제’라고도 말했지만 그의 베를린 체류는 말년의 수개월로 그쳤다. 그는 빈 근교의 결핵요양원에서 숨졌고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생전에는 무명에 가까운 한 작가의 죽음이었지만, 사후에 그는 20세기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나 같은 이방의 독자도 그의 흔적을 찾아 프라하를 방문하게 만든 작가.

한밤중에 도착한 프라하 공항은 생각보다도 더 작았고, 안내판에 한글도 포함돼 있어서 놀라웠다. 짐을 찾아서는 거의 아무런 수속 없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로비로 들어서니까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택시기사가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 숙소까지 가면서 어둠에 잠긴 프라하에 대한 인상을 몇 마디 해보려고 했지만 기사는 영어에 서툴다면서 거의 입을 다물었다. 우리 가족이 어디서 왔느냐고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다. 예약손님이었으니까 이미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지만 숙소에 도착하는 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기사는 프라하 시내 지도와 함께 안내책자를 친절하게 건네주고 떠났다. 호텔 로비에서 수속을 마친 뒤 객실에 여장을 풀자 비로소 프라하에 안착한 느낌이었다. 낯설지만 생각만큼 낯설지는 않은 데서 느껴지는 특이한 편안함.

 

이 편안함에 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얹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침에 커다란 객실 창의 커튼을 걷어내자 바로 눈앞에 사진으로만 보던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멀리 프라하성을 본 게 아니라 창문 밖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거미들을 본 거였다. 카프카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카프카에스크’란 말은 이런 풍경에도 들어맞지 않을까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풍광과 창문의 거미들이 빚어내는 부조화.

 



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카프카를 찾아서 프라하에 왔지만 어쩌면 결코 카프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으로 이어졌다. 카프카의 『성』에서 측량기사 K가 전갈을 받고 성에 도착하지만 중심부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카프카의 문학은 그러한 실패의 반복적인 기록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카프카의 흔적에 대한 순례도 그러한 실패의 반복으로서만 의미를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다리 카를교를 건너서 프라하성을 둘러보고 그의 작업실이 있던 황금 소로의 계단 길을 내려와 버스 정류장마다 안내판이 붙어있던 카프카박물관에 들러 그의 유고와 유품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실패를 예감해서였을까. 프라하를 떠날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을 되새기자면, 거꾸로 나는 프라하에 들어가기도 전에 프라하를 떠나야 했다. 프라하를 떠나는 것만 내겐 허용됐다.

 

14.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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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올린다. 프라하에서 며칠 보내고(서재 바탕화면의 프라하 성을 며칠간 눈앞에서 보았다) 어제 오후 베를린에 도착해 하루 일정을 마쳤다. 한국은 15일 새벽 5시지만 7시간 시차가 있어서 이곳은 14일 밤 10시 좀 넘은 시각이다. 도중에 핸드폰이 방전돼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한국 소식은 노트북을 통해서만 확인하고 있었다. 포스팅이 늦어진 건 마우스가 고장났기 때문인데, 오늘은 저녁을 먹고 호텔 근처 전자제품 양판장에 가서 최저가 마우스를 하나 구입해 겨우 포스팅이 가능해졌다(긁어오기 기능이 필요해서). 지난 일요일 중앙선데이에 실린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오는 게 베를린에서의 안부 인사다. 몇주 순연된 연재라 쓰기는 꽤 오래 전에 쓴 글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를 비교하여 다뤘다. 가와바타의 작품에 대한 마르케스의 언급은 산문집 <꿈을 빌려드립니다>(하늘연못, 2014)에서 읽을 수 있는데, 몇 가지 번역상의 의문점은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중앙선데이(04. 08. 10) “아흔 살 되는 날, 뜨거운 밤을 내게 선사하고 싶었다”

 

올 봄 세상을 떠난 마르케스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마지막 작품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이다.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중편의 구상은 20여 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우연히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나란히 앉게 된다.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면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평생 본 여자 중에 가장 멋진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인이다.

어떤 인연이 이어졌을까? 대단하진 않다. 아름다운 여인은 승무원에게 물 한 잔 갖다 달라고 하더니 수면제 두 알을 먹고는 여덟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내내 잠만 잤기 때문이다. 등을 돌린 채 태아의 자세로 숨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평온하게 잠든 여인을 보면서 마르케스는 그녀의 마력에 빠진다. 그리고 대서양 2만 피트 상공에서 잠자는 미녀를 애타게 관찰하는 자신의 상황이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속 상황과 유사하다는 걸 발견한다. 가와바타가 1960년대에 쓴 말년작 『잠자는 미녀』(원제 『잠자는 미녀의 집』) 말이다.

마르케스는 1968년 가와바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일본 작가들과 교분을 갖게 되면서 일본 문학에 몰입, 가와바타는 물론 미시마 유키오, 엔도 슈사쿠, 오에 겐자부로, 다자이 오사무 등의 작품을 섭렵했다. 그러면서 일본 소설과 자신의 소설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걸 확인하지만, 마르케스가 진짜 쓰고자 했던 건 『잠자는 미녀』 같은 작품이었다.

“짓궂은 장난일랑 하지 말아 주세요. 잠들어 있는 아가씨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것도 안 돼요, 라고 여자는 에구치 노인에게 다짐을 받았다.” 『잠자는 미녀』의 서두다. 에구치 노인은 예순일곱이고 친구의 소개로 ‘잠자는 미녀의 집’에 처음 들러 여주인에게 주의사항을 듣는다. 바닷가에 있는 이 유곽에서는 남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을 상대로 알몸으로 잠든 앳된 처녀들과 하룻밤을 보내도록 해 준다. 여자들은 특수한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상태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가씨는 단지 돈이 필요해서 잠들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는 노인들에게 이런 아가씨 옆에 눕는 것은 이 세상에 더 없는 기쁨임에 틀림없다.”

소설에서 에구치는 이 집을 다섯 차례 찾아 잠자는 미녀들과 밤을 보내며 지난 60여 년 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는 아직 남성으로서의 능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집을 찾아오는 다른 노인들의 진정한 슬픔이나 기쁨을 통절하게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에구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잠에 빠져 있는 아가씨와의 교제에서 ‘허무한 결핍’을 느낀다. “이 요부 같은 아가씨의 눈을 보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잠든 아가씨를 손으로 더듬기만 하는 유혹은 에구치에게 그리 강렬하지 않고 오히려 비참한 생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잠자는 미녀』의 에구치 노인이 삶의 허무를 절실하게 깨닫는다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노인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독신이며 학교 교사로서, 그리고 신문의 편집자와 칼럼니스트로서 일생을 보냈다. 평생 어떤 여자와 잠을 자든 돈을 주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십 줄에 들어설 때까지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한 번 이상 잠을 잔 여자는 총 514명이었다. 이제 아흔에 이르러 그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고 예감하고 ‘풋풋한 처녀’와의 뜨거운 밤을 자신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이십 년 만에 연락을 받은 단골집 포주 로사는 ‘나’의 요구를 어렵사리 들어준다. 생일날 밤늦게 찾아간 유곽에는 한 소녀가 자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알몸으로 누워 자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하룻밤을 보낸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날 밤 나는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고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이 경험이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게 해 주었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의 여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형식의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아흔 살에 비로소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으며 사랑의 고통에 신음했다. “오, 가련한 나, 이것이 사랑이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같은 시 구절을 비로소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뒤늦은 건 아닌가?

하지만 놀랍게도 마르케스의 인생관은 가와바타와 전혀 다르다. 아흔 번째 생일을 보낸 ‘나’는 인생이 그렇게 다 흘러가 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석쇠에서 몸을 뒤집어 앞으로 또 90년 동안 나머지 한쪽을 익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와바타 소설의 허무주의는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강력한 인생 예찬으로 변모한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받았던 것이다.” 자기 작품과 일본 소설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한 말은 마르케스의 농담인지도 모르겠다.

 

14.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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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아프리카 수단 출신 작가 타예브 살리흐(1929-2009)의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아시아, 2014)을 꼽는다. 1966년 아랍어로 처음 발표되었고 1969년에 영어로 번역된 소설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현대아랍문학을 빛낸 여섯 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 작품이라고. '아프리카문학'으로 분류돼 있는데, 언어로 보면 '아랍문학'이다. 정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세계문학의 자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소재 아랍학술원은 이 작품을 20세기 가장 중요한 아랍 소설로 선정하였고, 노르웨이 소재 노벨 연구소와 <북 클럽스>는 전 세계 50여 개국 출신 100명의 유명 작가의 설문을 통해 세계문학 100선을 선정했는데 이 작품이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지다>와 함께 유이(唯二)한 아프리카 지역 선정작이었다.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에 견줄 만하다는 것과 함께 여러 리뷰에서 언급되는 것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의 관계다. "<암흑의 핵심>의 기발한 반전"이라는 평이 대표적이다. 대략 이런 스토리라고 한다.

소설은 영국에서 7년간 시를 공부한 화자가 수단 나일강둑에 위치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리웠던 가족,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그는 낯선 중년 사내를 발견한다. 그는 무스타파 사이드. 수도 하트룸에서 이주해 왔다고 했다. 화자는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그는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무스타파는 취하게 술을 마셨고 영어로 시를 읊었다. 이에 화자는 큰 충격을 받는데 수단의 작은 마을에서 영어로 시를 읊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화자는 무스타파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져갔고 계속해서 그의 정체를 캐물은 끝에 무스타파는 화자에게 과거를 털어놓기에 이른다.

 분량도 얇은 편에 속하는 작품이어서 언제든 일독해봄 직하다...

 

14. 08. 02.

 

 

P.S. 한편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 외에도 여러 편이 번역돼 있다. 세계문학 강의에서 언젠가 아프리카문학에 대해서도 다루고픈 욕심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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