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문하고 오늘 밤에 받은 책 중에도 시집도 몇 권 들어 있다(주중에는 시 연구서와 비평집도 여러 권 구입했다. 시집도 많지만 시 연구서도 대체로 많다. 우리에겐). 그 가운데 하나가 김언의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문학동네)이다.

<소설을 쓰자>(민음사)로 기억하는 시인인데, 시집을 손에 든 기억은 있지만 알라딘 구매내역에는 뜨지 않아서 구입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서점에서 구입했을 수도). 확실하지 않으니 아는 시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알다가도 모르는 시인이 아니라 아는지도 모르는 시인. 마음은커녕 얼굴도 모르고(검색해볼 수는 있겠으나) 심지어 성별도 모른다. 1998년에 등단했으니 20년차 중견이건만.

해설을 쓴 조재룡 교수에 따르면 김언 시의 키워드는 ‘실험‘이다. 실험적인 시를 쓰거나 시를 실험하는 시인? ‘시인의 말‘에서 ˝대부분은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썼다˝고 적었다.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집으로 묶어냈으니 의도에 반하여 시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원래 시가 아닌 걸(비시) 시로 쓴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실험‘이 트레이드마크라면 이번 시집에만 해당하는 발언도 아니겠다.

김언의 실험성에 대한 해명은 김언 시의 이력을 꿰뚫고 있는 해설자에게 맡기고, 몇 편 읽어본 느낌만 적자면 이번 시집은 ‘트레이닝‘ 같다. 그리고 짐작에 이 시인은 여전히 트레이닝중인 것 같다. 무엇이 시일까, 어디까지 시일까, 이래도 시일까를 끊임없이 테스트하면서 시쓰기를 트레이닝하기(트레이닝은 김춘수의 용어이고 트레이닝 시인들은 자동으로 ‘김춘수과‘로 분류된다. 나의 분류법으로는). 무엇이 트레이닝인가.

˝둘은 일관된 앙숙이었다. 둘이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제삼자가 나섰다. 제삼의 인물은 어느 편도 들 생각이 없었지만, 이쪽을 만나면 이쪽에서 저쪽을 만나면 저쪽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쪽은 이쪽대로 옳은 말이고 저쪽은 저쪽대로 사정이 있었으니 둘 다의 말을 종합하면 어느 쪽도 만족할 만한 말을 들려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말이 너는 누구 편이냐? 둘 중 하나만 택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는 일관되게 제삼자였다. 소주 한 병에 오징어 두 마리면 충분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문장만 지운다면 ‘갑론을박‘이란 제목이 붙을 수도 있었겠다. 아니 그 경우엔 시도 안 되었을 것이다. 김언은 요즘 시인으로는 드물게도 마침표(.)를 꼭 찍기에 이 시에서 특별히 시다운 표지를 읽어내기 어렵다. 이 시를 시로 만들어주는 건 마지막 문장과 호응하는 제목 ‘갑오징어 을오징어‘다(말장난은 트레이닝의 주요 종목이다). ˝소주 한 병에 오징어 두 마리˝라고 할 때 그 두 마리가 갑오징어와 을오징어인 것. 동시에 술자리에서의 갑론을박하는 풍경에 대한 은유도 된다.

‘갑오징어 을오징어‘란 제목으로 뭔가를 쓰기는 어럽다. 이건 ‘마이크 테스트‘ 같은 테스트이고 트레이닝이다. 전작들을 참고하지 않고 넘겨짚자면 김언은 20년간 트레이닝을 해온 것이 아닌지. 그의 본게임은 언제부터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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