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이 권하는 레닌에 관한 책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에 관한 몇 마디 글을 준비하면서 레닌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해보다가 지난봄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를 읽게 되었다. 크레믈린에 안치된 레닌 묘 이장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옮겨놓는다. 필자인 최광은 기자는 러시아국립사범대학의 교환학생이라고 한다.

오마이뉴스(06. 05. 05) '죽은' 레닌 '산' 러시아를 괴롭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들어서면 붉은색 화강암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레닌 묘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고 마치 조그만 무대처럼 느껴지는 레닌 묘. 실제로 구소련 시절 붉은 광장에서 무슨 기념일 퍼레이드를 펼치거나 큰 환영행사가 있을 때 그의 묘는 단상으로 이용되었다.

최근 이 레닌묘의 존폐 문제를 놓고 다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해묵은 이 논쟁이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주목된다. 이번 논란 재개의 발단은 외형적으로 대통령도 정치권도 아닌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한 보고서로부터 시작되었다. '반공산주의 당 선언'으로도 불릴 수 있는 <역사의 선고> 보고서의 한 대목을 우선 보자.

"주권국 러시아는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적색테러와 사회주의 혁명 수출의 상징과 같은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과 결별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 역사학자들의 결론에 따르면, 레닌과 스탈린은 인류에 반하여 시효가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법률적으로는 유족들의 뜻에 반하여 유골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레닌 묘를 철거하는 데 법률적 걸림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인용했다.

"레닌 형제자매와 부인의 뜻은 심지어 임시 묘소의 건립도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문서상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레닌의 사후 시신의 보존 방안에 관해 논란이 있을 때 단지 간접적인 증언으로 등장했던 내용이다. 그리고 레닌 묘 건립 이후에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다. 정작 레닌 자신은 사후에 샹트페테르부르크 볼코비 수도원 묘지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 무덤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레닌의 유언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어디에도 없으며, 그의 생전에 공식적으로 천명된 바도 없다. 현재 그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딸 올가 드미트리예브나 울랴노바는 단호하게 레닌묘의 이장을 반대하고 있다.

한편 <역사의 선고>는 "정부는 납세자들의 돈을 공산주의 당 지도자 시신의 유지, 검사, 복구에 지출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적인 이유까지 들어 레닌 묘의 제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레닌 묘 보존지역 자선사회단체' 의장인 알렉세이 아브라모프의 말에 따르면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공산주의 당 지도자의 시신 보존과 관리를 위한 비용을 정부가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은 지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모든 비용은 우리의 기금과 다른 몇몇 조직들이 지불한다."(<이또기(결산)>, 2006년 4월 17일자)

결론적으로 <역사의 선고>는 다음과 같은 방안의 실행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 붉은 광장의 레닌 묘지를 완전히 제거하고, 19세기 말의 모습처럼 '비정치화된 외관'을 광장에 돌려준다. 둘째, 레닌, 스탈린을 비롯한 '대중 억압의 책임이 있는 다른 인물들’의 유해를 친지 혹은 그 계승자들에게 돌려준다. 셋째, 도시, 거리, 지하철역 등의 명칭에서 레닌, 스탈린과 그의 동료들의 이름을 제거한다. 넷째, 그들의 동상을 박물관으로 옮긴다. 다섯째, 크레믈린 망루에 있는 루비색의 별 장식을 황금 독수리로 대체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작성과정에도 여러 가지 의혹이 일고 있다. 우선 이 보고서의 최종 서명이 연구소장인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아닌 부소장 블라디미르 라브로비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 의문을 낳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보고서를 하필 왜 연구소장이 휴가 갔을 때 부소장이 결재했을까 하는 점이다.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언론들의 추궁에 <역사의 선고>는 "연구소의 견해"라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회피했다.

이러한 의혹은 레닌묘의 보존을 지지하는 측뿐만 아니라 정작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부원장 발레리 꼬즈로프는 지난 달 17일 <이또기>와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직접적인 정치적 계략"이라는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또한 "아카데미 연구소들은 공공기관으로서의 공신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여기에 어떤 분명한 주문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알렉세이 아브라모프는 이러한 묘지 제거 캠페인의 선동자와 주문의 실체가 행정부의 고위 관리 중 하나가 아니겠냐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은 현재 신중하게 이 문제를 보류하고 있다"(<이또기(결산)>, 2006년 4월 17일자)고 여지를 남겼다.

그가 푸틴 대통령의 의중에 대해 이 같은 생각을 품는 것은 사실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푸틴 대통령은 수차례 레닌 묘의 철거를 시도했으나 매번 잇따른 정치적 위기로 성공시키지 못한 전 옐친 대통령과 분명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레닌 묘 처리 문제와 관련, 가타부타 언급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다만 올해 2월 스페인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레닌 묘의 운명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을 뿐이다. "나는 국민들 다수를 계속 짓눌러온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곳 정치평론가들의 상당수는 현재 문제해결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역사연구소 보고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마 부의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통합러시아당의 주요 인사들, 기타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문제가 그리 간단히,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와 보존의 문제를 떠나 러시아 정치의 중심으로 파고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 대통령 선거라는 커다란 정치 일정을 앞둔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은 이 문제의 해법과 그 실행을 제약하는 큰 변수이다. 레닌묘를 비롯하여 크레믈린 성벽 아래 있는 400여 개에 달하는 무덤(유리 가가린, 막심 고리끼의 것도 이들 중에 있다)의 제거를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공산주의자와 반공산주의자의 대립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들도 다양한 입장을 갖고 있다. 한 칼럼니스트는 "문서상으로 공산주의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쉽다. 그러나 실제로 무덤을 파내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것이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원장 유리 오시포프 역시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불사르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만일 각 세대들이 이전 세대의 결과물들을 제거한다면, 그로부터 아무런 훌륭한 것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이또기(결산)>, 2006년 4월 17일자)

만일 레닌 묘를 둘러싼 해법이 2008년 대선 이전에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그 실행은 대선 이후에나 가능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러시아의 탈소비에트화 프로그램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상징의 제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상징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일 필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징을 고집하는 쪽도 상징의 제거를 고집하는 쪽 어느 곳에도 찬동하기 어렵다. 그냥 있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새롭게 길을 가면 어때서. 그러나 붉은 광장을 지나칠 때면 항상 이런저런 생각이 뒤죽박죽되곤 한다. 붉은 광장 입구에는 레닌을 꼭 빼닮은 사람이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자신과의 기념촬영을 대가로 그는 돈을 번다. 그 사람을 볼 때면 그 곳에서 차라리 죽은 레닌이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뒤흔든 한 혁명가의 모습이 그런 초라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는 느낌은 유쾌하지 않다.

매주 토요일 점심 무렵에는 일군의 공산주의자들이 레닌 묘를 단체로 참배한다. 그들은 현재 러시아연방공산당을 부르주아지 정당에 가깝다며 비판하는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레닌 묘 앞에서 약식 집회를 하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차례차례 레닌을 알현한다.

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전히 레닌그라드라고 부르길 고집한다. 그들 앞에서 페테르부르크라고 부르다가 야단을 맞은 기억이 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신실한 레닌주의자들을 떠올리면 '레닌을 그냥 그대로 그 곳에 두지'하는 생각도 든다.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레닌, 아무튼 그는 모진 운명을 타고 난 것이 분명하다. 무덤에 잠든 뒤에도 좌우될 운명이 남았으니 말이다. 내가 붉은 광장의 레닌 묘를 보며 할 수 있는 일은 주문을 외는 일밖에는 없다. "레닌에게 영원한 안식을!"(최광호 기자)

06.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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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11-0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공간입니다. 역사가 빠르게 흐르니 어제의 영웅이 오늘은 골치아픔에 되는군요. 한 세대가 과거를 부수려고 하면 모든 왕가의 묘를 파헤쳐야 하나요?

로쟈 2006-11-0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11.07)은 10월 혁명 8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레닌과 레닌주의의 운명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됩니다...

Nabi 2006-11-0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광은씨는 최근 귀국해서 다시 사회당의 정책실장으로 복귀했답니다...

로쟈 2006-11-0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레닌과 무관하지 않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