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제 읽은 시집. 한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예비식량처럼 한권 더 챙겨간 시집이 최지인의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민음사)다(두 권의 첫 시집을 읽었군). 임솔아의 시집처럼 내가 읽을 수 있는 시와 읽을 수 없는 시로 금세 나뉘었다.

요즘 시집들을 읽으며 느끼는 것인데 보통은 앞부분에 실린 시들이 괜찮고 뒤로 갈수록 좀 부실해진다. 첫 시집의 경우에는 습작기 작품들이 들어가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대표시는 대개 표제시인 경우가 많다. 시인이나 편집자도 내세울 만한 시가 뭔지는 아는 것이다.

최지인의 경우도 그런데(이름만으론 여자인 줄 알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란 제목은 ‘비정규‘란 제목에서 가져왔고 이 시집은 이 한 편으로 구제받은 느낌이다. 이 시를 시집에 실린 시들 가운데 나중에 쓴 것이라면 시인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고 먼저 쓴 것이라면 답보중이라는 뜻도 된다. 나머지 상당수의 시들은 ‘연습‘으로 읽힌다.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하셨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이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비정규‘의 전문이다. 다 적을 만하니까 다 적은 것이다. 비정규 청년(사실은 비정규직도 아닌 청년)의 일상과 속내가 이보다 선명하게, 그리고 압축적으로 드러난 시도 없을 것이다. 최지인의 시를 떠받치는 건 이 시에서 묘사된 경험과 정서다. 이 핵심이 얼만큼 들어가 있느냐는 배합비율에 따라서 시의 농도(질)가 결정된다. ‘비정규‘가 대표시인 것은 가장 높은 순도를 자랑하기 때문이고 다른 시들이 이에 못 미치는 것은 물을 많이 탔기 때문이다(비정규가 아니라 시인 흉내를 낼 때 그의 시는 묽어진다).

가령 궁색한 신혼살림을 묘사한 ‘개와 돼지의 시간‘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좁은 화장실에서 우리
깨끗이 목욕하고
밥을 먹고
밥을 먹고
잤다
아무도 구할 수 없었지만

아무도 구하지 뭇한, 아니 시로서 자기 건사도 하지 못한 시들이 시집에는 널려 있다. 가장의 열패감을 노래한 ‘언더독‘에서도 안쓰러운 장면은 반복된다.

내심 내가 사라졌으면 했다
우리 서로 아프게 하고

테이블에 남은 술과 얼음
옆방에선
누군가 스스로 목을

그런
삶들
피붙이들

이 정도면 시의 소실점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정서는 있지만 시는 그것이 ‘표현‘되어야 한다. ‘비정규‘에서 ‘잘 표현된 불행‘(황현산)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나는 다른 시들에서는 그러지 못했다(예컨대 ‘가양동 현장‘과 ‘오함마‘가 다른 시들에는 빠져있다). 내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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