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가방에 넣고 온 책들이 있지만 눈이 피로하여 펴보지 않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어서 글감을 찾다가 어제 오랜만에 강의한 손창섭(1922-2010)을 떠올린다. 수년 전에 민음사판 선집 <잉여인간>을 교재로 하여 강의에서 다루었고 이번에는 문지판 <비 오는 날>을 교재로 썼다. ‘비 오는 날‘(1953)은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손창섭은 이를 표제로 한 단편집을 출간한다.
1959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잉여인간‘(1958)은 손창섭의 대표작이지만 초기작들과 달리 꽤 건실한 생활인(치과의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에 손창섭답지 않은 소설이기도 하다. 발표 당시에도 평가는 엇갈렸는데,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대단찮은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었고(일관된 손창섭!).
나로선 의미 있는 변화로 생각되고 작가가 장편소설의 문턱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손창섭은 기대에 부응하는 장편소설(당대 사회의 총체성을 그려내는 장편을 말한다)이 아니라 통속적인 장편소설의 길로 접어든다. 1962년부터의 일이다(마지막 작품을 발표한 1977년까지가 ‘장편소설기‘다).
1952년 데뷔 이후 단편에 주력해온 손창섭이 1962년부터 장편을 발표하게 됨으로 1961년까지 10년간을 ‘단편소설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때 경계에 놓이는 작품이 ‘신의 희작‘(1961)으로 ˝삼류작가 손창섭 씨˝ 자신을 모델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부제가 ‘자화상‘이다).
자전적 고백이라고 해서 100퍼센트 진실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관례상 독자는 이 자화상을 손창섭 자신의 이야기로 읽는다. 설사 많은 에피소드가 꾸며진 것이라 해도 그렇게 꾸며진 이야기조차 얼마간의 진실을 포함하며, 그 진실은 소량이라도 작가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요소가 된다.
‘신의 희작‘은 독자뿐 아니라 작가 자신을 속이려는 이야기이며 그러는 중에 내밀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주목을 요한다. 어제 강의에서는 그런 관점에서 ‘신의 희작‘의 핵심 에피소드를 짚고 ‘공휴일‘, ‘비 오는 날‘, ‘잉여인간‘ 세 작품을 읽었다.
손창섭 문학에 대해서는 나대로의 가설을 세워두고 있기에 실제 작품들을 통해 검증해보려고 어제는 <손창섭 단편전집>(전2권)을 주문했다. 또 한권 참고할 만한 책은 정철훈 기자의 <내가 만난 손창섭>(도서출판b)인데 이건 책장 어딘가에 있을 텐데 바로 찾지 못하겠다. 아무튼 이 두 종만 더 참고해서 손창섭론을 마음속으로라도 완결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주는 최인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