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문학기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베를린은 펠리체 바우어와의 약혼과 파혼이 이루어진 도시이자 도라 디아만트와 짧은 동거생활을 가졌던 도시다. 도라와는 1923년 발트해 연안의 휴양지 뮈리츠에서 만나는데 그녀의 도움으로 카프카는 오랜 숙원인 프라하 탈출을 결행하게 된다. 이주를 결심하는 것이다. 도라가 먼저 베를린에서 터를 잡고 카프카가 뒤를 따르는데 두 사람이 처음 같이 사는 곳은 베를린-슈테글리츠의 미겔슈트라세 8번지다(주소는 전집판 <밀레나에게 쓴 편지>의 연보에 따른다. ‘연보‘라고 적는다).
3년 전에 그곳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끝내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한 기억이 있다(카프카가 살았었다는 표식을 못 찾은 것). 생각해보면 두 달도 살지 않았던 집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카프카와 도라는 11월 15일에 같은 구역의 그루네발트슈트라세 13번지로 이사한다. 어제 우리가 찾은 곳이다. 이 집에는 현판이 벽에 걸려 있어서 카프카의 흔적에 값한다. 11월 15일부터 이듬해 1924년 2월 1일까지 살았던 곳이다.
그러고는 카프카와 도라는 한번 더 이사하는데(‘연보‘와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에 주소가 나온다) 베를린 첼렌도르프의 하이데슈트라세 25-26번지다. 이 세번째 주소지에서 카프카는 건강이 악화돼 막스 브로트와 함께 3월 17일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기까지 거주한다. 역시 두달이 안 되는 기간이다. 3년전에는 이 세번째 주소는 알지 못해서 찾아가지 않았다. 그루네발트슈트라세를 찾았을 때 2월초까지 살았다고 해서 프라하로 돌아가기까지 한달 반의 공백이 궁금했는데 세번째 주소지가 있었던 것.
하지만 우리의 문학기행은 그루네발트슈트라세 13번지에서 마무리했다. 그나마 두달 보름 정도 살았고 그곳에서 ‘작은 여인‘(‘조그만 여인‘)과 ‘굴‘ 같은 작품이 쓰인 걸로 추정되어서다(‘작은 여인‘은 도라를 염두에 작품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카프카의 베를린 체류 기간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3월에 프라하로 되돌아간 카프카는 4월에 요양원과 병원 두어 곳을 거쳐서 최종적으론 키얼링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고 그곳에서 6월 3일 세상을 떠난다(이미 다른 페이퍼에서 적은 대로다). 장례식은 11일에 프라하의 유대인묘지에서 치러졌다.
카프카가 살았던 두번째 집에서 우리는 여정을 마무리지었는데 베를린의 카프카는 프라하로 되돌아갔지만 우리는 이제 한국으로 떠난다.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될 터이지만 여기서 작별을 고한다. ‘안녕, 카프카. 카프카여, 안녕!‘ 사진은 어제 우리가 걸었던 산책로이다(집앞에서 단체사진만 찍고 정작 나는 사진을 빼먹었다)...
PS. 룸메가 보내준 사진을 추가한다. 카프카가 살았던 집 현판이다. 글자들이 너무 흐릿한 게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