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미루어두었던 연재를 마저 해치우기로 한다(자꾸 미뤄지는 걸 보면 이것도 확실히 '일'인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아닌 아르바이트?). 이번에도 고른 책들은 일단 최근에 나온 책들 다섯 권이다. 개인적인 관심범위 안에 놓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책들을 꼽아보자는 게 이 연재를 끌고가는 나의 '원칙'이다(비록 모든 책에 적용되기는 힘들더라도). 단순하게 나열하는 건 재미가 덜하기에 내러티브를 부여하자면 '멸종의 역사에서 철학까지'이다. 내일 지구에 멸망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무의미한...

 

 

 

 

제일 먼저 꼽을 책은 <멸종의 역사>(아고라, 2006)이다.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들의 삶과 죽음'이 부제니까 제목의 '멸종'은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멸종'이다. 멸종을 다루고 있는 책들은 리처드 리키의 <제6의 멸종>(세종서적, 1996) 이후에 드물지 않게 출간되었다. 멸종의 역사가 10년내 사뭇 달라졌을 리는 없는 만큼 초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용상의 대차는 없을 거라고 본다.

No Turning Back: The Life and Death of Animal Species Cover

이번에 출간된 책도 "지구가 탄생하고 30억 년 전에 생물체가 살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생명의 역사를 다룬다. 책은 지구에 살았던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멸종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임을 밝힌다. 지구에 처음 생물이 나타났을 때 있었던 종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종은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종이 나타난 지 1,000만 년 안에 멸종했다. 이 수치는 지구에 나타났던 생물 중 99퍼센트가 멸종했음을 뜻한다." 문학이론가 프랑코 모레티가 쓴 비유이지만, 진화사는 달리 '도살장의 역사'이다.

책의 저자는 리처드 엘리스인데, 동물학자이자(보다 정확히는 '해양생물학자') 미국 최고의 자연사 작가라고 한다. "리처드 엘리스는 놀라운 상상력과 뛰어난 글솜씨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에 대해 이야기한다."라고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하고 있으니까 신뢰할 만한 책이기도 하고. 그가 어떤 책을 쓰냐면 아래와 같은 책들을 쓴다. 말 그대로 '해룡'인가, 아님 '어룡'?

 

다시 <멸종>으로 돌아오면 "책은 현재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에 일어났던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에 이은 제6의 대량 멸종이라고 말한다. 특히 제6의 대량 멸종은 진화와 멸종의 개념을 아는 유일한 종인 인간이 자연의 균형을 철저하게 뒤집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죽음의 기록'이기도 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풀어내면서 생명체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동시에 인류의 종말을 경고한다." 네들 다 끝났어!

 

 

 

 

사실 저 우주공간에서 빛나는 '항성'들 또한 '역사'를 갖는 것이니 이런 멸종의 위협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서지 않을 수도 있겠다(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좀더 '노골적인' 경고를 기대한다면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좋은생각, 2006)을 펼쳐들어야 하는지도(최근에 영화도 개봉된 듯하다). 너무 불편하다면, 몇년 전 출간되어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 2003)와 맞대결시켜보면서 읽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이겠다. 그 길로 더 나가면 생태학적 위협(니콜라스 루만)과 위험사회(울리히 벡)를 경고하는 사회학자들의 책까지 (다시) 챙겨볼 수도 있겠다. 오버인가?

 

 

 

 

두번째 책은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까치, 2006). 저자는 예일대 교수라고 하고(<전쟁과 인간>이 이미 국역돼 있다) 국내 그리스/로마사 권위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오전에 구내서점에 가보니까 '명품서적' 30% 할인판매장에 이미 책이 나와 있었지만, 형편상 페이지를 들춰보는 것에 만족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면 여러 전쟁사들은 놔두고서라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범음사) 정도는 같이 읽어줘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여유를 내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여 출간소식을 승전소식처럼 전하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그리스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흐름을 뒤엎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대의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를 뛰어넘어 2,400년 전의 전쟁을 오늘날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마저 인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대제국의 흥망, 매우 이질적인 두 사회와 삶의 방식 사이의 충돌, 인간사에서 지성과 우연의 상호 작용, 리더십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려준다. 이미 학자를 대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지은이는 일반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로운 서술로 사라져버린 세계를 풍성하고 자세하게 그려낸다." 인간과 국가의 흥망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 전쟁사인 만큼 흥미롭게 읽을 법하다. 무슨 '배틀'들에 몰입하시는 분들이 이런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어떠실지?   

저자인 케이건 교수는 1932년 리투아니아 태생의 원로 역사학자이다. 1958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9년부터 예일대에 봉직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2003년에 출간된 그의 최신작이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그가 2002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권 메달'을 수상한 걸로 돼 있는데, 그가 받은 건 'National Humanities Medal'(국가 인문학 메달)이니까 인권과는 무관하다.

 

 

 

 

세번째 책은 김시천 교수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 국가간의 이기주의는 간혹 전쟁을 낳기도 하지만, 리뷰들을 얼핏 보니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이기주의는 소소한 개인, 곧 소인들의 이기주의이다.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란 부제가 말해주는 바 그대로. 사실 공자왈 맹자왈의 대종은 군자/대인에 관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우리 인간의 대종은 아무래도 소인들이 아니겠는가. 책은 이 소인(배)들의 (정당한) 탐욕과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소개에 따르면, "동양의 이기주의란 씨실과 동양고전이란 날실을 엮어 동양적 이기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 동양 이기주의의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고, 대인의 큰 이기주의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그들의 역할을 명시했다... 책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 즉 사회적 이기주의를 보다 당당하게 누리자고 권장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국가권력에게 자신을 희생했던 소인들에게 ‘당신들은 대인이 아니라 소인이니 권리를 내세우며 오늘 하루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소인을 '작고 평범한 사람들'로 평범하게 정의한다. 예전에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도 스스로가 '보통사람'임을 내세워 난감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런 양반들의 자기변명서로 활용될까 걱정된다(하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행복한 이기주의'는 한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인간됨의 그릇이 작아 '소인'이라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얼만큼 겹쳐지면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해서도 합당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지라 책이 그런 내용까지 다 포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번째 책은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힐러리 퍼트넘/퍼트남의 <존재론 없는 윤리학>(철학과현실사, 2006). 국내엔 <이성-진리-역사> 이후에 그래도 몇 권 소개돼 있는 편인데, 퍼트넘은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엔젤레스)에서 H. 라이헨바흐에게 과학철학을 배우고 하버드 대학에서 W.V.O. 콰인에게 현대 논리학을 배운" 미국의 주류/정통파 철학자로서 1965년 이후 하버드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그러니까 존 롤즈와 넬슨 굿맨 등의 그의 과 동료들이다. 한편으로 또 다른 동료인 저명한 철학자 스탠리 카벨의 책들이 소개되지 않는 건 상당히 기이한 일이다).

사실 윤리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들은 피터 싱어의 책들이다(싱어의 책들은 열댓 권 가량이 출간됐다). 하지만, 눈길을 끈 건 퍼트넘의 책인데, '존재론 없는 윤리학'이란 제목부터가 뭔가 유혹적이지 않은가?  

 The Collapse o fht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물론 퍼트넘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 또한 상당히 '딱딱한' 책일 거라는 걸 미리 점쳐볼 수 있다. 그래도 고통을 좀 덜어주는 건 200쪽 분량의 아주 얇은 책이라는 것. 그의 전작 <사실/가치 이분법의 붕괴>와 합본을 해야 보통의 '철학서' 분량이 된다. 그 얄팍한 분량에 유혹되어 책을 사두긴 했는데, 언제나 정독하게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그래도 <수학의 철학> 같은 책에 비할 바가 아닌 건 분명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스페인의 국보급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6)이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라도 기억하게 되는 27세에 마드리드대학 철학부 정교수가 된 '천재'였다. 소개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로부터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책은 그의 대중 철학 강의를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버전의 철학입문서이다. "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오르테가가 철학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지를 친밀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철학이란 우리의 삶과 멀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서 철학이 생성되면서 나 역시 철학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게 이 책에 대한 나머지 소개이다.

작년봄에 <대중의 반역>이 다시 번역돼 나와서 한번 언급할 기회가 있었던 듯한데, 내가 갖고 있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미지는 대표적인 엘리트주의 혹은 귀족주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런 첫인상을 심어준 이는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 대한 서평을 썼던 문학평론가 이동하이다. 두번째 인상은 러시아 체류시 받은 것인데, 러시아어로는 대표작들이 문고본으로 출간되어 있어 그 지명도를 짐작케 했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정도를 읽는 건 '교양'에 해당한다는 것.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그 '교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겠다. 내가 더 기대하는 건 언젠가 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 출간되었던 <돈키호테의 성찰>이 세련된 장정으로 재출간되는 것이다(저자 자신이 멋쟁이이기도 했으니까).

마지막에 덧붙인 책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리더스북, 2006)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문체가 니체에 버금한다고 하여 떠올려본 것인데, 철학서는 아니고 어빈 얄롬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소설이다. 책이 친숙한 건 예전에 교보문고의 철학코너에서 뻔질나게 보던 책이어서이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서구 사상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 19세기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에 지적 상상력을 더해 집필한 팩션"으로서 "음울한 천재 철학자 니체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브로이어와 벌이는 화려한 지적 공방을 그린다.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듬해 '커먼웰스 베스트' 픽션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후 13년간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그러니까 니체와 프로이트에 관한 이야기들의 성찬일 텐데, 장기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철학책보다 철학자에 더 흥미를 갖는 독자에게라면 자신있게 권할 만하겠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그의 눈물이 비명이 되기 전에...

06.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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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6-09-19 17:47   좋아요 0 | URL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다가 생소한 지명이 나오는데 나오는 지도도 친절하지 않고 해서 포기했었는데 케이건 교수의 책은 상세한 지도가 새로운 지명이 나올때마 나와 읽어나가는데 헤메이지는 않더군요. 번역은 읽기는 무난한것 같은데 학자들이 번역한 뻑뻑한 느낌이 나고, 보자마자 눈에 띤 옥에 티는 책 앞날개에 donald kagan이 donal로 d가 빠졌더군요. 네오콘과 관계있다고 하는것 같은데 그리 강성인 책은 아닌것 같은데 끝가지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06-09-19 17:49   좋아요 0 | URL
부지런하시네요.^^ Donald를 Donal로 오타를 낸 건 알라딘도 마찬가지입니다(그걸 베껴서 그렇겠지만).

푸른괭이 2006-09-19 20:52   좋아요 0 | URL
이렇게 어려운 책들 일색이라니 -_- 나는 요즘 뜻밖에도(!) 김탁환의 [리심]이 눈에 들어오네요.

로쟈 2006-09-20 00:05   좋아요 0 | URL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그냥 취향의 문제입니다...

허심청 2008-01-01 04:23   좋아요 0 | URL
한참 때 늦게 "최근에 나온 책들"에 다는 댓글이라...

리투아니아 출신의 케이건Kagan 교수라 함은 러시아어로 까간 교수를 말함일 확률이^^...

로쟈 2008-01-01 11:12   좋아요 0 | URL
러시아어로는 그렇게 읽겠지만, (러시아계) 미국 학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