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국역본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을 해설한 책이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여섯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책이 나온 건 지난주이고, 나는 몇 가지 이미지들을 챙겨놓았었지만, 외부 리뷰들을 참조할 수 없었던지라(더불어 옮겨올 수도 없는지라)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알라딘의 소개를 참고로 해서 몇 개의 이미지 정도만을 띄우도록 한다. 저자는 이미 아나키즘 관련 문헌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하승우씨이다.

"러시아의 사상가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쓴 아나키즘의 고전 <상호부조론>은 당시 유행하던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나온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 사회발전의 원리라는 사회진화론적인 논리에 대항하면서 아나키즘의 당위성을 세운 저서로,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아나키즘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다." 일제하 한국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러시아의 귀족 출신인 크로포트킨은 역사, 과학 등에 박식한 지식인이기도 했지만 귀족의 작위를 버리고 인민들에 대한 애정을 보인 혁명가의 면모를 가진 아나키스트이기도 했다. 그런 크로포트킨이 사회진화론의 논리에 맞서 내놓는 개념은 '상호부조'이다.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부조'가 인간사회의 이끌어온 힘이었으며, 그 힘은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동물학, 역사학, 인류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증명한다." 아래는 러시아에서 출간된 크로포트킨 선집이다. 제목이 <아나르히야>로 돼 있다. '아나르히야(αναρχία)'는 '아나키(anarchy)'의 그리스 어원이다 



"책은 크로포트킨의 삶과 <상호부조론>으로 촉발된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 전반을 짚으면서, 그의 사상이 한국 아나키즘운동과 맺는 관계에도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강한 엘리트가 살아남아 약자를 지배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상호부조론>은 당시 식민 상태에 있던 한국인들에게 식민지 침략을 반대하는 근거로서 굉장한 매력을 지닌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해방 전후의 아나키즘 운동의 맥락을 새로이 복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아나키즘에 관해서는 이전에 관련서들을 훑어본 바 있어서 따로 다루지 않는다. 아나키즘 또한 여러 이론과 운동의 분파를 거느리고 있는데, 최근에 강세를 보이는 건 생태주의와 결합된 아나키즘인 듯하다. "상호부조의 전통에서 아나키즘의 정당성과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는 한편, 비폭력적인 투쟁을 지지하는 크로포트킨의 사상에서 테러리스트로 지목받곤 하는 아나키즘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풀기도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 등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아나키즘의 그림자를 만나볼 수도 있다." 아래는 크로포트킨의 저명한 자서전(재작년 모스크바대학 구내 헌책방에서 구한 책이다). 러시아어 제목은 <한 혁명가의 수기>이다.

매트 리들리가 쓴 <이타적 유전자(원제: 미덕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01)에 보면 프롤로그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게 이 크로포트킨 공작의 탈출기이다. 1876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차르의 감옥에서 탈출한 사건이야말로 크로포트킨의 살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는데 리들리는 이렇게 덧붙인다.



"오랜, 아주 오랜 세월 뒤에도 탈옥수는 자신의 자유가 손목시계를 넣어준 여자와 바이올린을 연주한 여자, 마차를 몬 동료와 마차 뒤에 앉아 있던 의사, 그리고 마차가 도주하는 동안 길이 막히지 않게 도와준 여러 친구들의 용기 덕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의 탈옥은 동지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기억은 그의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오랜 세월 후에 인간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점화시키도록 예정되어 있었다."(11쪽) 그 '인간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란 게 바로 '상호부조론'이었던 것(그러니 '상호부조론의 기원'이라 할 만하다). 아래는 리들리가 참조한 <크로포트킨 평전>(1950)과 영역본 <상호부조론>.



요컨대, 우리가 서로 돕는 존재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빵'에 가봐야 하고 또 거기서 '탈옥'해 봐야 하는 것. 물론 빠삐용처럼 탈출하면 안되고 반드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탈옥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광복절 특사' 같은 걸로 나오는 것도 곤란하다. 아나키스트가 되는 대신에 내셔널리스트가 되지 않겠는가?..

06. 08. 27.

P.S. 성공한 탈옥을 다룬 영화로 기억에 남는 건 베아트리스 달이 주연한 영화 <샹떼>(1992)이다. 영화에서 베아트리스 달이 수감돼 있는 남편을 탈출시키기 위해 마차를 몬 게 아니라 헬기를 몰았다는 게 크로포트킨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고나 할까(아니면 이건 그냥 '부부부조론'의 사례에 불과한 걸까?)...



P.S.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의 저자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9. 09) “아나키즘은 무정부 아닌 공동체”

-'아나키즘(anarchism)’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 어원(語源)인 그리스어 ‘아나르코스(anarchos)’는 ‘지도자가 없는’ ‘선장이 없는 배의 선원들’을 뜻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나키즘 하면 ‘무질서’ ‘혼란’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



“아나키즘은 결코 질서 없는 사회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크로포트킨을 봐도 무정부가 아니라 코뮨(공동체)과의 연대를 말했고, 분별 없는 테러리즘을 비판했어요.”

-하승우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36)는 최근 펴낸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그린비)을 통해 아나키즘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낸다. 아나키즘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한 표토르 크로포트킨과 그의 저서 ‘상호부조론’을 중심으로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를 되짚고, 그 현재적 의미를 살폈다.

-<상호부조론>은 인간사회를 이끌어온 힘이 적자생존이나 생존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부조라고 주장한다. ‘사회진화론’이 갈등과 경쟁만을 강조함으로써 강자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반대했다. 하교수는 “당시 사회주의조차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에 주목하고, 사회진화론을 극복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힘을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무정부주의’와 ‘테러리스트’라는 오해와 비난 속에 역사에서 점점 사라졌다. 서구에선 지배층의 탄압과 볼셰비키의 성장으로 세력을 잃어갔다. 사정은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분단, 한국전쟁,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쇠퇴했다.

-아나키즘은 최근 들어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가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사회가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면 할수록 ‘푸른 초원을 힘차게 질주하는 야생마의 자유로움’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마음 한 구석에 몰래 남겨뒀던 사람냄새 나는 공동체’를 소환한다. “우리 사회가 ‘20대 80의 사회’로 간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같은 사회를 꿈꾸지는 않을 겁니다. 모두들 냉혹한 생존경쟁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대안을 찾고 있는 겁니다.”

-현실화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은 단순한 이상이 아닐까. 그는 “아직 큰 물줄기를 이루지 못했을 뿐이지 아나키즘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 신자유주의반대운동, 대안공동체운동, 생태주의운동 등은 아나키즘의 명칭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그 근본정신은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아나키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사회운동세력은 위에서 아래로의 조직화 노선을 걸어오면서 자기체계를 갖춰갔지만 권위적, 관료적 노선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나키즘은 그 같은 방식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아나키즘은 또 기존 사회 흐름의 반대 방향에서 그 대안을 고민토록 하고 있습니다. 아나키즘이 현대사회의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진지한 화두는 던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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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8-28 15:19   좋아요 0 | URL
혹시 <크로포트킨스캬> 역시, 저 양반의 이름을 딴 건가요?

로쟈 2006-08-28 16:20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