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나고 귀가길에 속이 메슥거려서 집에 들어오자 마자 동네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었다. 생각해보면 유지방이 속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 거 같지 않는데, 실제로 그랬다. 아무래도 낮에 아이스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듯하다. 아무려나 불편한 느낌으로 시사 팟캐스트를 듣다가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최진석의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그린비, 2017)이다. 제목보다는 부제가 책의 내용을 가늠하게 해주는데,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가 부제다. 곧 오랜만에 나온 바흐친 연구서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다듬고 보완한 책이다.  



러시아문학 전공자의 바흐친 연구서로는 이강은의 <미하일 바흐친과 폴리포니아>(역락, 2011)와 이득재의 <바흐찐 읽기>(문화과학사, 2004) 등이 있었다(기타 영문학 전공자의 책들이 좀 있다). 이게 얼마나 오랜만에 나온 것인지 알 수 있다. 1990년대 영미는 물론 한국 인문학계도 강타했던 '바흐친 르네상스'를 회고해보건대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가령 바흐친의 주저에 해당하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민중문화>(아카넷, 2001)와 <말의 미학>(길, 2006),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의 제문제>(중앙대출판부, 2011) 등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또 바흐친의 주요한 소설론을 모은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비, 1998)까지도 절판된 지 오래 됐다. 이런 현황이 놀라워서 무슨 '담합'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을 정도다. 


이번에 나온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은 바흐친 사상의 여러 쟁점에 대해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는 묵직한 저작이다. 바흐친뿐 아니라 바흐친 사상의 안팎을 폭녋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때문에 연구서는 그 자체로 일독해볼 만하지만, 바라건대는 바흐친의 문학론과 소설론도 재출간돼 연구서만 읽게 되는 무안함을 덜어주었으면 싶다.  



참고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그린비, 2009), 그렉 램버트의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자음과모음, 2013)을 옮겼고, <러시아 문화사 강의>(그린비, 2011)를 공역했다...


17.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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