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현암사, 2017)는 나보코프에 관한 장으로 끝나지만, 나보코프는 망명작가이기에 따로 마지막 장에 배치한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솔제니친이 마지막 작가다. 그래서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부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까지가 20세기 러시아문학이라고 적기도 했다. 솔제니친이 러시아, 즉 구소련에서 추방당한 게 1974년이고 소련이 해체된 건 1991년의 일이다. 그 사이에 러시아문학이 부재했던 건 물론 아니다. 책에서는 친기스 아이트마토프 같은 작가가 숄로호프 이후에 소련의 간판 작가로 활동했다고 했지만 두 명을 더 꼽자면 발렌틴 라스푸틴과 유리 트리포노프가 있다(통상적으로 20세기 러시아문학사 강의는 이들 작가까지 다루고, 소수민족 출신 작가로 아나톨리 김을 추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강의에서 다룰 번역본이 없다는 점인데, 설사 출간된 책이라 하더라도 절판된 게 많았다. 이번에 도시문학 혹은 일상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트리포토프(1925-1981)의 <노인>(을유문화사, 2017)의 출간이 반가운 이유다. 트리포노프의 작품은 예전 소련동구문학전집(중앙일보사)에 수록된 <긴 이별><또 다른 삶> 외 <교환>(경희대출판부, 2005)이 번역된 게 전부였다. 모두 절판된 형편이라 한국어판으로는 이름만 존재하는 작가였다. <노인>의 출간으로, 이제 읽을 수 있는 작가가 된 것.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81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될 만큼,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유리 트리포노프의 유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작가 트리포노프는 혁명, 이념, 역사의 재평가와 같은 무겁고도 본질적인 주제들을 건드리지만,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세련된 예술로 승화시켜 독자가 거부감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소설은 개인의 일상적 삶을 통해 일상과 이념, 역사와 인간, 정의와 윤리 등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인간의 섬세한 심리를 드러내는 미학적 문체가 절정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리포노프와 많이 비교되는 작가는 1970년대 러시아 농촌문학의 대표작가 라스푸틴(1937-2015)이다. 한때 대표작들이 국내에 여럿 소개됐었지만 역시나 지금은 이름만 남은 작가가 되어 버렸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문학을 대표하기도 하는데, <마초라와의 이별>, <화재> 등 주요 작품이 다시 나오거나 새로 번역되면 좋겠다.
라스푸틴의 작품이 모두 절판된 상황이라 트리포노프와 함께 다룰 수 있는 작가는 아이트마토프 정도다. 대표작 <백년보다 긴 하루> 정도를 읽으면 되고, 여유가 있다면 <카산드라의 낙인>까지. <하얀배><자밀라> 등의 대표작도 절판된 상태다.
내가 배운, 그리고 내가 아는 한도에서 이들 작가들이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문학을 대표한다. 물론 나중에 재평가받는 비공식문학 작가들은 70년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포스트소비에트 문학의 대표 작가들과 같이 묶이는 듯싶다.
한편 1980년대로 넘어와서, 고르바초프가 주창한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대표 작가는 아나톨리 리바코프였다. 대표작 <아르바트의 아이들>은 국내에서도 번역돼 화제가 됐었는데, 어느새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격세지감이 느껴질 밖에.
한국어판은 세 권짜리였다(열린책들 홍지웅 대표가 공역자이기도 했군).
트리포노프의 <노인> 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간단히 적으려다 얘기가 1980년대 러시아문학으로까지 번졌다. 아무려나 20세기 러시아문학이 궁금한 독자라면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포함해서 서상범 교수의 <러시아 현대문학 강의>(부산외대출판부, 2002), 에드워드 브라운의 <현대 러시아문학사>(충북대출판부, 2012) 등을 참고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의 러시아문학 내지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보그다노바의 <현대 러시아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아카넷,2014)과 엡슈테인의 <미래 이후의 미래>(한울, 2009)가 상세한 소개와 평가를 제공한다. 여기부터는 전공서적으로 분류되겠지만, 문학 전공자라면 필히 소장해둘 만하다...
17. 0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