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여행길에 나섰다. 짧은 여행이지만 오며가며 기차에서 수시간을 보내야 하는 터라 얇은 책 두 권과 두꺼운 책 한 권을 챙겼다. 상대적으로 두껍다는 것이지 보통 분량이다.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있는집, 2017).

원제는 <분노와 시간>(2006)으로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서 이미 자세하게 검토된 책이다. 영어본은 바로 구입했었는데 번역본이 예상보다 늦게 나왔다. 한데 잊고 있던 터라 마치 발견한 듯한 느낌도 든다.

슬로터다이크는 호머(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일리아스>)의 첫 단어가 ‘분노‘라는 점에 착안하여 서구문명사에서 분노가 어떻게 다루어져왔는가를 성찰한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가 시작이었다. 서구문학사는 분노와 함께 시작한 셈. 아쉽게도 한국어 번역본들은 그 점을 드러내주지 못한다. 첫 단어가 갖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유감스럽다.

슬로터다이크의 책은 몇권 소개되었지만 대표작 <냉소적 이성 비판>이 절반만 번역되고 마는 등 상태도 좋지 않고 그다지 임팩트도 없었다. 이번에 나온 <분노>가 반전의 계기가 될지 궁금하다. 최소한 흥미로운 읽을거리는 되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