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와 신문학사 관련 자료들을 읽다가, 그리고 이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 하다가 엉뚱하게 '이주의 발견'으로 피코 아이어의 <여행하지 않을 자유>(문학동네, 2017)를 고른다. TED 강연 시리즈인 '테드북스'의 여섯 번째 책이다. 강연도 그렇지만 흥미로운 타이틀이 많은데,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도 손에 들었다가 다른 책들에 떠밀려 읽지 못한 기억이 난다(어디에 둔 걸까?).
<여행하지 않을 자유>의 부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찾아서'다.
"평생 전 세계를 종횡무진해온 여행자, 피코 아이어. 이스터 섬에서 에티오피아로, 쿠바에서 카트만두로 세계를 누비며 여행자로 살아온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왜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그는 사방을 여행하며 만족을 찾는 자신의 행위 자체가 아무리 여행을 다녀도 결국 삶의 공허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느꼈고, 그러던 중 일본 교토의 작은 단칸방에서 1년간 살며 이 여행이라는 화두를 풀어보기로 결심한다. 저자는 '아무데도 가지 않을 것'을 권한다. 조급함을 달래고 일단 멈춰 스스로를 살피고, 고요가 선사하는 단순함을 응시하면서 삶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혹은 비울 것인가 성찰하기를 권한다."
저자의 경우도 그렇지만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 대한 깨달음의 전제는 전 세계 여행이다. 여행의 공허감을 느낄 정도로 많이 다녀봐야 여행의 의미가 화두로 등장하는 것.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올해 여러 여행이 계획돼 있기 때문이다. 짧은 일본여행에 이어서 9월에는 카프카문학 기행을 떠날 예정이고, 내년 1월에는 러시아문학 기행을 또 떠나게 될지 모른다. '가이드' 입장으로 떠나는 것이라 참가자들에게 좋은 여행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아마도 몇년 진행하다 보면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나도 한 마디 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다녀봐야 할까 싶다.
절판된 책이긴 한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푸른숲, 1999)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아직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여행 여정을 되짚어보는 것도 나중에는 실행해보고 싶다(가령 드레스덴 미술관과 바젤미술관에 들러야 한다). 지난번 러시아 문학기행 때 참고한 책이기도 한데, 이병훈 교수의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한길사, 2007)과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한길사, 2009)도 지금은 절판된 상태. 세계문학 기행을 위해서라면 이런 종류의 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가령 카프카 문학기행을 위해선 크라우스 바겐바흐의 <카프카의 프라하>(열린책들, 2004) 같은 책이 유용한데, 역시나 절판된 지 오래 되었다. 조성관의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열대림, 2009) 같은 책이 아쉬운 대로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책. 그래,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 도달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17. 03.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