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띄길래 옮겨온다. 인도의 한 가정부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하게 됐다는 내용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한 印 가정부의 인생역전"이 기사의 타이틀이다. 조만간 번역/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프리뷰'로 분류해놓는다.

Baby Haldar

한국일보(06. 07. 15) 시골 출신의 가정부에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한 인도 여성의 고단했던 삶이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화제의 인물은 자전적 소설 <평범하지 않은 인생(A life less ordinary)>를 펴낸 바비 할더(32).

-프랑스 일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4일 못배운 인도 여성들이 전통이란 미명 하에 얼마나 억압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책이 그동안 소설가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소재를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며 자세히 소개했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인도 출신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이다. 가정부 또한 그녀가 말하는 '하위주체'가 아닌가?).

 

 

 

 

-4살때 어머니가 가출하고 12살때 강제로 결혼한 뒤 남편에게 온갖 구박을 박다가 결국 집을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할더는 책의 첫 부분을 이렇게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거의 바깥에서 살았고 가족 부양은 아예 신경쓰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는 시장에 간다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4살이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집에 쌀이 없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후 계속해서 다른 새엄마가 들어오는 가운데 할더는 가정불화와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러던 어느날 할더의 언니는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먹을 것이 없다는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때 할더는 어린 나이에 시집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몰랐다. 할더는 아버지가 자신보다 나이가 배가 많은 남편에게 시집가라고 했을 때에도 "결혼하면 모든게 좋을거야. 최소한 밥은 실컷 먹겠지"라고만 생각할 정도로 세상물정에 어두웠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지옥이란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혼 이듬해에 임신을 했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 하루하루가 악몽인 가운데서도 할더는 2명의 아이를 더 나았다. 그러던 어느날 할더는 남편이 던진 돌에 맞아 머리가 찢어졌다. 먼저 시집갔던 언니는 형부에게 맞아 죽었다는 말도 전해졌다.

-집을 나오기로 결정한 할더는 무작정 뉴델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가정부나 청소부의 일을 하면 되겠지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아들을 한 집에 하인으로 보내고 자신도 가정부로 일하면서 생활은 좀 나아졌지만 그녀가 만나는 집주인들은 인간도 아니었다. 어떤 집주인은 일을 많이 부려먹으려고 업무 시간에는 아이들을 다락에 가두라는 요구까지 했다. 그녀는 "한 집주인은 커미와 음료수, 과일 등 시키는 대로 갖다주고 나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마사지를 하라고 했다. 정말이지 잠시도 쉴새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13살때 엄마가 된 뒤 너무나도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바비의 어떤 과거를 보더라도 그녀가 인도 문학계에 혜성으로 떠오른 이유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사실 지독한 집주인들에게 시달리면서 혼자서 3명의 자식을 부양해야 했던 할더로서는 독서라든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그랬던 할더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그녀가 인류학 교수 출신의 브라둡 쿠마르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교수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서재를 청소하라고 시켰을 때 할더가 먼지를 털면서 슬쩍슬쩍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쿠마르는 할더가 작가로서의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연필과 노트를 주면서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25세였다. 할더의 글을 읽고 뭔가 특별하다는 판단을 했던 쿠마르는 계속 글을 써보라고 권했고 몇달 뒤 그는 할더와 마주 앉아 책을 낼 수 있도록 문법상의 오류와 중복된 부분을 뜯어 고친 뒤 이를 복사해 출판사에 있는 친구에게 보냈다.

"아주 좋아하더군요. 내 글이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연상하게 했던가 봐요. 그래서 매일 내가 겪은 삶을 써내려 갔죠. 그때만 해도 책으로 나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Light and Darkness

-할더의 글은 문단에서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인도에서 사용되는 몇가지 언어로 출판돼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올 초에는 영문판도 나왔다. 이 책에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나 어떠한 감상주의적 색채도 없다. 할더는 아버지나 남편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는다(2004년 9월의 BBC기사를 보니까 그녀의 첫번째 책은 <빛과 어둠(Aalo Aandhari)>(사진)이며, 이 작품은 영화화 제안까지 받아놓고 있다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은 그녀의 신작이면서 자전적인 대표작인 모양이다).

-하지만 할더는 그들에 관한 `팩트'만 갖고도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담한 수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델리 인근 구르가온에 있는 쿠마르씨의 하인숙소에 살고 있는 할더는 지금도 낮에는 가정부로 일하면서 밤에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비로소 글을 쓴다.

"글을 쓸 때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또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아버지와 남편에게 나름대로의 복수를 한 것 같아 마음도 한결 가벼워져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힌두스탄 타임스는 서평에서 "이 책은 인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수백만 밑바닥 여성들의 운명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제1세계에서 근대문학은 이미 종언을 고했지만, 제3세계에서 근대문학은 아직 '미완의 기획'인 것. 인간의 운명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우리 주변에서는 점차 쇠퇴해가고 있는 '위대한 문학'이다).

-IHT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프랑크 매코트가 소년기의 비참한 생활을 엮은 자서전인 <안젤라의 재>에 견줄만한 이 책이 1970년대 북인도에서 살았던 한 여성의 황량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전했다.(정규득 특파원)

06. 07. 15.

P.S. 바비 할더(1972- )의 자전적 소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이 생각보다는 빨리 번역돼 나왔다. <신데렐라가 된 하녀>(문이당, 2006)이 그것이다. 제목 대로라면 작가=신데렐라이다?! ..

06.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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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7-15 19:19   좋아요 0 | URL
(*교수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_.. 라고 표시해 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

로쟈 2006-07-15 19:39   좋아요 0 | URL
사실 가정부 할더 덕분에 교수 쿠마르의 이름이 '불멸'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니까 할더 또한 쿠마르의 은인인 셈이죠. 그런 게 변증법이기도 하구요...

이리스 2006-07-15 22:38   좋아요 0 | URL
누구를 만냐느냐, 그것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꽤, 크게 바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