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태풍을 핑계로 하루종일 집에 죽치고 있다가 저녁 무렵 읽은 게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김용석 교수의 연재칼럼이다.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이고 청소년들을 타겟으로 한 글이지만, '진화생물학의 마키아벨리즘'이란 제목도 눈에 띄고 도킨스의 책도 한번 더 홍보할 겸 여기에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7. 10)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가 출간된 이후 지난 한 세대 동안 이 책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도킨스 자신도 책의 2판(1989년) 서문에서 “논쟁적인 저서로서의 이 책의 명성은 해가 갈수록 커져 지금에 와서는 과격한 극단주의의 작품으로 널리 간주되고 있다”고 인정한다(*이전에 지적한 바이지만, 국내에는 이 1판과 2판이 모두 번역돼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주장이 ‘보편적 이론’일 수 있음을 확신한다. 또한 이런 확신 때문에 동료 과학자들로부터도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도킨스의 입장이 이해보다는 오해와 곡해의 대상이 된 것은 일정 부분 그 자신의 수사법에도 기인한다. 그의 수사법이 모호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단도직입적이고 명확해서라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생존 기계다.” “우리는 로봇 운반자다.” “사람과 기타 모든 동물은 자기 복제하는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며, 바로 이 간단한 문장들이 그의 이론을 대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도킨스의 이론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몇 문장에 현혹될 게 아니라 내용 전체를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으며,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도킨스의 이론은 “유전자의 눈으로 본 다윈주의”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다윈의 이론이지만 다윈이 택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 즉 “개개의 생물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유전자의 눈으로” 자연 선택을 설명한 것이다. 이런 관점의 전환이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이는 책에서 도킨스가 지적하는 것도 종의 이해관계나 개체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진화론의 오류들이라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유전자의 이해관계이다.



-한편 과학사회학과 과학철학적 맥락에서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의 흥미로운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이 저 유명한 마키아벨리의 ‘저주받은’ 책 <군주론>과 유사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도킨스도 인정하듯 엉뚱하고 깜짝 놀랄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비유와 해석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선 도킨스는 자신이 사용하는 윤리적 성격의 단어, 즉 ‘이기적’이니 ‘이타적’이니 하는 말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에 제동을 건다. 이 말들로 “진화에 따른 도덕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주장하지 않으며, “단지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말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즉 그의 입장은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의 구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의 논법이다. 마키아벨리 역시 도덕적 논의에서 벗어난 입장을 견지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사는가’의 구별을 전제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도킨스는 자신의 목적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키아벨리는 다름 아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정치학’을 탐구한다. 그는 정치사의 사례들을 들면서 “이로부터 거의 항상 유효한 일반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 즉 타인을 강하게 하는 자는 자멸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타주의를 가장할 줄 알라고까지 조언한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결코 타자를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 경우라도 그것은 “겉보기의 이타주의일 뿐”, 결국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이 밖에도 둘 사이의 유사점은 많다(그들이 사용하는 수사법도 그렇고, 일부 주장들은 ‘양면적’으로 독해해야 그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두 저서에 가해진 비판들도 비슷한 양상을 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두 저서가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둘 모두 ‘현실을 직시하라’는 매우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킨스의 경우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관점’에서 본 한정된 현실이지만, 이런 고전들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들을 제시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06.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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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루핀 2006-07-14 03:40   좋아요 0 | URL
"자신을 위한 이타주의"... 저는 <이타적 유전자>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양극화 현상이 전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할 때 자신을 위한 이타주의, 즉 타인에 대한 기만이 아닌 자신과 남을 향한 공생적 (win-win) 이타주의에 대한 철학이 너무나 절실하지 않나 싶은 요즘입니다.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신지..

로쟈 2006-07-14 07:37   좋아요 0 | URL
<이타적 유전자>란 책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아시다시피 원제는 <미덕의 기원>이니까요. 그리고 그때의 미덕은 '이기적 유전자'론으로 다 설명되는 부분입니다(상호 협력(공생)이란 것도 궁극적으론 지극한 이기주의(계산)의 산물이라는 것이죠. 다만 개체 차원이 아닌 유전자적 차원에서). 다만, '이기적'이란 게 유전자적 이해관계를 표현한 수식인 만큼 인간적 '해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붉은루핀 2006-07-15 03:12   좋아요 0 | URL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타적, 이기적 이라는 단어 속에는 벗어날 길 없는 도덕적 윤리적 포스가 서려있긴 하지요...ㅎㅎ <이타적 유전자> 경우 제목 자체때문에 조금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혹 대안할만한 좋은 단어가 있을런지요?

로쟈 2006-07-15 19:46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원제가 좋습니다. '미덕의 기원', 혹은 '이타성의 진화' 같은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거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