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일정이 아니었고 따로 노트북을 들고 가지도 않았기에 일주일간(6박8일)의 러시아 문학기행은 사진과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 기억 가운데 하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이하 페테르)의 최대서점 '돔끄니기'(영어로 하면 '북하우스'란 뜻)를 방문한 것이다. 페테르 체류 마지막 날 저녁 식사후 모스크바행 심야기차를 타기 전에 한시간 남짓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카잔성당에 들러 성탄절 저녁미사가 진행되는 걸 좀 보다가(러시아의 성탄절은 구력을 따르기에 1월 7일이다) 남은 시간은 돔끄니기에서 책구경을 했다. 지난 2004년 페테르 여행시에는 둘러보지 못했기에 첫 방문이었다. 대략 아래 사진과 같은 분위기의 서점이다(건물의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가 서점인 듯했다). 


 

모스크바에도 돔끄니기가 있는데, 같은 체인인지 별도의 서점인지는 모르겠다. 구조는 달라서 모스크바의 돔끄니기가 우리의 교보문고 스타일이라면, 페테르의 돔끄니기는 예전 종로서적 스타일이다. 



시간이 짧아서 둘러본 건 예술과 인문 코너였고, 지하의 인문 코너에서 몇 권의 책을 구입했다. 리하초프나 로트만 같은 고명한 러시아 학자들의 책과 함께 수집가적 관심에서 손에 든 책 몇 권은 우리에게도 소개된 책들의 러시아어판이다. 지난 여름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지젝의 <향락의 전이> 등. 푸코의 책은 예전에 나왔을 거 같은데 못 보던 장정이어서(2016년판이니 당연하다) 구입했고, 지젝의 책은 지난 달인가 검색해보았을 때도 뜨지 않았던 책이라 반가웠다. 색스의 책은 한국어판도 일주기 기념판으로 다시 구한 김에 역시 기념삼아 구했다. 아래가 그 책이다(같은 총서 시리즈 가운데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도 러시아 입국시 경유지였던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 공항 매점에서 구입했다. 제목이 달라졌기에. 이전 번역본 제목이 <소음과 분노>였다면 새 번역본은 <소리와 분노>다).   



그밖에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에서 자료사진집 두 권을 구한 것, 그리고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보리스 그로이스의 미학관련서들과 에르미타주 안내서 등을 구한 것이 이번 여행의 소득이다. 짧은 여행의 장점은 무게와 책값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은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 시간이 넉넉했다면 욕심을 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구입도서는 스무 권이 넘지 않도록 했다. 그럼에도 예상치 않았던 책 몇 권 덕분에 만족스럽다. 러시아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만족감이다...


17. 01. 11.


P.S. 핸드폰을 충전중에 놓고 하차하는 바람에 돔끄니기는 사진으로 찍지 못했다. 그 이전 일정으로 당일 오후에 에르미타주를 방문했는데, 나올 때쯤에는 이미 어둠이 져 있었다. 폰카로 찍은 에르미타주의 야경이다(정확하게는 에르미타주와 마주보고 있는 육군본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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