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06. 06. 23) 북리뷰에서 저자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시공아트, 2006)의 저자 김규원씨와의 인터뷰인데, 타이틀은 "진짜 잘 노는 법 보여드리죠". 월드컵이란 '축제'도 현재 진행중이므로 한번쯤 귀기울여볼 만하다.





-축제의 첫 장은 역시 술로 시작하고 있었다.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색은 샹그리아 술병에서 흐르는 붉은색이다. 기대했던 진한 붉은색 대신 분홍빛이 감도는, 그래서 색정이 달콤하게 뚝뚝 흐르는 액체가 유리병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분홍빛 알콜로 얼굴을 내민 팜플로나는 곧 핏빛 축제로 젖어 이방인을 맞는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 시내를 가로지르며 더운 콧김을 내뿜는 황소떼가 달려가고 비명과 탄성이 온거리에 울려퍼진다. 살벌한 소몰이에 자칫 어리숙한 관람객은 목이 꺾이고 배가 뚫리는 일도 다반사. 순교자 성 페르민을 기리며 13~14세기께 시작된 성 페르민 축제는 오늘날에도 죽음의 광란까지 마다않는 ‘붉은 축제’다.

-‘축제연구자’ 김규원(39·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원)씨는 지난 10년 동안 산 페르민 축제를 비롯해 축제 문화가 발달한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장난감 산업 박람회라는 실용적 목적을 유감없이 달성하는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장터 축제, 개성있는 정원의 잔치가 펼쳐지는 쇼몽 쉬르 루아르 축제, 2차 대전의 폐허를 딛고 독창적인 공연으로 승부해 명성을 얻은 아비뇽과 에든버러 페스티벌…. 축제 속에 풍덩 빠져 그 감흥을 소상히 적은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시공아트 펴냄)는 서로 다른 빛깔과 향취를 뿜어내는 축제의 매력을 전하는 낭만적인 기록이다.
-대학에서 조경을 공부한 김씨는 95년 도시계획을 전공하러 유학길에 올랐다가 문화지리학을 전공한 프랑스인 스승의 말에 솔깃해 축제 연구에 빠져들었다. “축제를 만나면서 도시를 즐겁게 연구할 수 있었어요. 축제는 압축적으로 도시를 보여주거든요.” 이 도시의 어떤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이런 축제를 만들었을까, 도시마다 왜 축제는 다를까, 축제가 펼쳐지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 축제를 경험할수록 이런 의문들이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99년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 축제아닌 축제를 열어 ‘축제 망국론’까지 터져나오던 시기였다. 그만큼 ‘축제 연구자’가 절실했다. 김씨는 곧 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축제를 평가하고 장기 계획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축제가 행사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아요. 축제는 자발적이고 즉흥적이고 우연에 기대지만, 행사는 스케줄이 있어야 하고 시간에 맞춰야 하고 실수가 없어야 하지요.”(*즉 '행사'는 '축제'의 적이다. 비록 겉보기에는 유사하게 보일지라도.)




-그는 축제가 즐거움을 주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축제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며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고 재미를 느끼지요. 여수진남제에서 시민들이 <뱃노래>를 따라 부르며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요. 또 하나는 속죄양 또는 희생제물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는 모든 ‘잘되는’ 축제엔 반드시 ‘죽이는’ 의식이 있다고 했다(*사실, 이 내용 때문에 기사를 옮겨왔다. 축제의 비결은 '죽이는 의식'에 있다는 것! 이건 바타이유의 종교론이기도 하다).
-꼭 양이나 소를 잡지 않아도 여러가지 상징적 행위들이 있지요. 풍어제에서 배를 띄워 바다로 보내는 거나, 짚인형을 태우거나, 풍자적 언어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하회마을에서 탈춤을 추며 양반을 사정없이 씹거나, 쾰른 카니발에서 시장을 본딴 인형을 태우는 의식 등은 바로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축제의 속성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없이, 그저 시민들에게 일방적인 즐거움만을 제공하려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실패는 이런 데서 온다고 그는 지적했다(*누가 좀 죽어줘야 했을까?)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응용하자면, 비도덕적인 축제나 도덕적인 축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잘 만든 축제와 잘 만들지 못한 축제만이 있을 뿐이지요.”(*축제는 '선악의 저편'에 있다.)
-그래서 그는 “축제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고도의 예술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현대 추상화를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줄 순 없잖아요. 딱딱한 문체로 축제 보고서를 쓰다보니, 축제의 본질적인 매력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화려한 축제의 체험담을 펴낸 까닭은, “좀더 많은 사람들이 축제의 감흥을 깨달아 진짜 잘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고 강조했다.
06. 0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