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에 대하여(*이 코멘트는 1999년에 씌어진 것이고 2004년에 모스크바에서 약간 손질되었다). 드레피스/레비노우의 <성숙이란 무엇인가>(What is Maturity?)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석/해석을 놓고 벌어진 푸코와 하버마스 간의 논전을 잘 정리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의 우리말 번역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불어본(<푸코와 하버마스>)을 번역한 것이고(<우리시대의 문학 6>), 다른 하나는 독어본을 번역한 것이다(<외국문학> 1995, 겨울). 그리고 나에겐 이 둘과 영어본이 있다.

 

 

 

 

이 중에서 불어본의 번역은 난삽하고 부정확하다. 문맥에 대한 역자의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는데, 가령 “푸코에 의하면, 칸트는 현대적이긴 하지만 성숙하지는 않다”(On Foucault's reading Kant was modern but not mature.) 정도로 번역되는 문장을 역자는 “푸코의 칸트에 대한 독서를 알려 주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칸트는 근대적이기 위해 성숙성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로 옮기고 있다(불어가 더 어렵긴 한 모양이다). 근대적이기 ‘위해’ 성숙성에 이르지 않았다니?

그리고 글의 결론에 해당하는 “우리가 이 논문에서 옹호하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논지는 인간 시대 혹은 성숙성이 적어도, 행동을 개별적 주체와 글쓰기의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이론들 위에나,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발언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 위에다 세우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 논리, 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의도들이, 현존하는 모든 부분들이 일치하여 그것에서 우리의 현재 상황 내에는 더 불안한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어떤 것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하는 논리이다.” 같은 부분은 오역을 넘어서 해독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다(이런 ‘most troubling한’ 문장이 번역으로 통용되는 한, 한국의 인문학은 가망이 없다).

이 부분의 영어본은 이렇다. “The thesis of this paper is that maturity would consist in at least being willing to face the possibility that action cannot be grounded in universal, ahistorical theories of the individual subject and of writing, or in the conditions of community and speaking, and that, in fact, such attempts promote what all parties agree is most troubling in our current situation.”

비록 저자들이 확정적인 표현을 피하고는 있지만, 이 부분의 요지는 이렇게 옮겨질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바, 성숙성이란 우리의 행위가 더 이상 개별 주체와 글쓰기에 대한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이론들이나, 혹은 공동체와 화행(말하기)의 조건들에 토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기꺼이 대면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이론이나 조건을 도출해내려는 시도들이 부추기는바 모든 정파가 동의하는 일이야말로 사실상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가장 곤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의 성숙성은 비역사적인 보편적 이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다. 오히려 곤란한 것,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편적 합의’이다. 정파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합의에 따라 한쪽에선 의원들의 세비도 올리고, 다른 쪽에선 이라크 침공도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이때의 ‘보편적 합의’는 기만과 폭력에 대한 ‘보편적 정당화’이겠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저자들은 하버마스보다는 푸코의 편을 들고 있다. 이때 푸코가 말하는 성숙한 태도는 아이러니적인 태도이다. 

참고로 독어본의 번역. “이 논문의 테제는 다음과 같다. 개별적인 주체나 글쓰기의 보편적이고 반역사적인 이론 속에서는, 또는 공동체의 조건이나 말하기의 조건 속에서는 행위의 토대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최소한 성숙의 본질이 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위에서 열거된 이론이나 조건들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실제로 모든 철학적 당파들이 일치하고 있는 것을 촉진시킨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촉진시키는 것이 우리의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

불어본의 번역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편이나 만족스럽지는 않다(독어가 불어보다는 쉬운 것인가?). 요컨대, 저자들이 칸트-하버마스 계열의 성취와 한계(“현대적이긴 하나 성숙하지 않다”)를 지적하고 있는 맥락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줄 필요가 있다.

06. 06. 22.

 

 

 

 

P.S. '성숙함'에 관한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은,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브뤼크네르의 <순진함의 유혹>(동문선, 1999)이다. 즉, 성숙이란 '순진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순진함이란 자신을 어린아이나 희생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말한다. 유치하거나 기만적인 태도 말이다. 물론 그 유치함/기만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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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이미애) 2006-06-2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숙이란. '순직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 때의 순진함이란 자신을 어린아이나 희생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말한다.

뜨끔하네요. 생각해보면 저는 순진함의 유혹에 정말 잘 빠져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 자신의 내면에서 그것들을 분리 시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유치하거나 기만적인 태도도.. 참 어렵네요.

유치하거나 기만적인 태도가 어떤 태도인지 알고 있다면 좀더 쉬울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고, 또 알고 있다고해도 그런 태도를 취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른다면 더 왜곡되어서 표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성숙... 이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아.. 성숙해지고 싶은데..

로쟈 2006-06-2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함의 유혹>은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성숙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