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자 한겨레의 책-지성 섹션을 챙겨보는 편인데, 가끔 '아깝다 이책'란에 눈길이 오래 머물곤 한다. 오늘도 그러한데, 작년 11월에 출간된 책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에 대해서 출판사 기획실장 임병삼씨가 쓴 글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었던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왜 다루지 않았을까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여하튼 초판의 절반 정도가 창고에 남아있다고 하니까 책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뒷북치는 기분으로 임병삼씨의 글과 함께 언론의 리뷰 두 편, 그리고 구로사와의 영화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소개 영화평 하나를 차례로 옮겨놓는다.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나대로의 '자료집성'이다. 

 

한겨레(06. 06. 16) 전화가 뜸한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부천에 산다는 독자였다. <데르수 우잘라>를 감동 깊게 읽었고 이런 책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단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다른 책이 국내에 나왔는지, 없다면 갈라파고스에서 낼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잠시 머뭇거리자 왜 책이 잘 안 팔리느냐면서 그렇다면 자기라도 열심히 ‘입선전’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 책을 내고 여러 사람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서점의 어느 독자는 리뷰란에 이 책을 보고 왜 자기가 울었는지를 독자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이 책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출판동네 15년이 넘지만 낸 책을 잘 보았다는 독자 전화를 받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쯤되면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또다른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책들 때문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초판 2000부를 발행해 반년이 지난 지금, 초판의 반 가까운 부수의 재고가 오늘도 독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 대해 러시아의 대문호 고리키는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하의 책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과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풍부한 자연묘사와 특유의 표현력에 저는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귀하의 친구였던 데르수는 이제 더는 ‘짐승의 발자국을 뒤쫓는 야만적인 사냥꾼’이 아닙니다.그는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심판자이며,또한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예술의 본질’을 일깨워준 선구자입니다.귀하의 삶에 이런 친구가 있었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과 교감했던 원주민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의 삶을 그린 논픽션이다. 지은이 아르세니에프는 러시아군의 극동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의용병 부대의 지휘관이며, 러시아 극동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며 작가였다(*사진은 저자인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 우잘라의 초상을 담은 소련의 우표). 당시의 의용병 부대는 수렵과 탐사가 주임무로, 오지를 수색할 때가 많았다. 전투훈련 대신 시호테 알린 일대와 연해지방의 지형 및 도로를 조사했으며, 전시에는 정찰과 길안내를 맡았다. 이 책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데르수 우잘라가 1902년부터 1910년에 걸쳐 아르세니에프의 탐사대와 함께한 나날들, 그리고 그가 총과 돈을 노린 러시아 사람에게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데르수는 항상 사냥해온 것을 이웃과 똑같이 나눠가졌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고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소위 문명화된 인간에게 퇴화된 능력을 어디까지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복과 승리 대신 공존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야생의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은 키플링이 쓴 <정글북> 혹은,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와 비견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5년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데르수 우잘라>를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모스크바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둔 성공회대학 신영복 교수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수업에서 `사회는 우직한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나아간다’는 교훈을 주고싶다”며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 때문에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가르침을 전해 주려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데르수 우잘라’야말로 신영복 선생님이 말한 그런 사람의 전형이 아닐까. 

동아일보(05. 11. 26) 차갑고 조용한 밤이었다. 데르수는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계곡을 타고 조잘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이 어제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마른 풀은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탄한다고 말했다. 데르수의 모습이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신비롭게 비쳤다. 어둠 저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푸른 달빛을 닮아 있었다. 이 야만인은 하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무슨 원시적인 종교가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매번 그의 설명은 싱거웠다. 별이 뭘까? “저기 별 떴다. 보면 된다.” 달은 뭘까? “눈 있는 사람. 달 본다. 저게 달이다.” 그러면 하늘은? “환할 땐 파랗다. 캄캄해지면 까맣다. 비 올 때 흐리다….” 무한함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허무의식, 그것은 문명인만이 갖고 있는 것일까.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 그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시베리아의 원주민 고리드족의 후예다. 생명이 생명으로 대접받던 원시의 나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냥꾼이다.

-데르수는 1902년부터 저자가 이끌었던 러시아 극동탐사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수렵부대의 지휘관으로 있던 저자는 당시 지도상의 빈칸으로 남아 있던 연해주 시호테알린 산맥 중부지대를 훑었다. 저자는 데르수와 동행하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와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는 원시인의 삶의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이다.

-평생을 숲과 함께 살아온 데르수는 아무 욕심이 없었다. 사냥을 하면 이웃과 똑같이 나눠 가졌고, 얼룩바다표범과도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짐승을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잉크’라는 말은 몰라 ‘더러운 물’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10년에 걸친 탐사가 끝나자 데르수를 데리고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병들어 더는 숲에서 혼자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영혼은 갑갑한 문명을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수도요금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쳤다! 물마시고 돈 준다! 강에 돈 안 줬다!” 데르수는 아무르 강을 떠올렸다. “거기 물 많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조금씩 깨달아 갔다. 그는 도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호랑이가 아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도시보다는 춥고 배고픈 숲이 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르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2주일 뒤 변시체로 발견된다. 강도의 소행이었다. 숲에서 태어난 데르수는 결국 숲에 묻혔다. 커다란 시베리아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그의 무덤가에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후르르 날아들었다. “의젓한 사람!” 데르수는 이 새를 그렇게 불렀었다….

한겨레(05. 11. 25)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펴냄)는 1907년 6월22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지도상의 빈칸이었던 연해주 시호테 알린 산맥 동쪽지역을 탐사한 기록이다. 원제는 <우수리 지역의 밀림에서>(*사진은 러시아어 원본). 지은이는 러시아 극동군 소속 정찰부대 지휘관.

-군용 보고서와 별도로 1923년 출간된 이 책은 출간당시 고리키로부터 풍부하고 꼼꼼한 자연묘사와 표현력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75년, 일본인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눈에 띄어 ‘데르수 우잘라’라는 고리드족 출신 원주민 안내자한테 초점이 옮겨와 영화로 만들어진다. 2005년 한국 독자한테도 사정은 비슷하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는 따위는 데르수의 신기한 면모일 따름. 그는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 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물고기로부터 그곳에 야영을 하지 말라는 말 뒤에 정체불명의 야수가 스멀거렸다든가, 바다표범이 인간의 머릿수를 세고 있는 것에 분개한다든가, 설득하여 물러가는 호랑이를 쏘아 죽인 뒤 가슴 아파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의 진면목은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 어느 날 저녁, 지은이가 모닥불에 던진 찌꺼기 고기를 끄집어내면서 “우리는 내일 떠나지만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온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은 너구리, 오소리, 까마귀, 쥐, 개미였던 것. 금을 찾다가 굶어죽은 밀림속 조선인 인골, 화전과 담비 사냥으로 물레방아와 맷돌을 이용하며 사는 이주 조선인 대목에서는 일제하 유랑했던 윗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씨네21(02. 09. 12) 구로사와 낯설게 보기, <데르수 우잘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65년작 <붉은 수염>은 두 주인공이 영광스럽게 걸어들어가는 진료소의 문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은 구로사와의 빛나던 한 시대가 이제 그만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로 구로사와는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실의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폭주 기관차>나 <도라! 도라! 도라!> 같은 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연이어 불발로 그쳤는가 하면, <붉은 수염> 이후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야심찬 ‘실험작’ <도데스카덴>(1970)은 (상업적)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로사와는 그새 일본의 제작자들로부터 흥행성이 없는 영화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래서 좀체 영화제작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구로사와에게 길을 터준 것이 바로 소련의 영화제작사 모스필름(Mosfilm)이었다. 모스필름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은 구로사와는 조감독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프로젝트- 러시아 탐험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를 꺼내놓았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열망까지 채워주며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들어진 <데르수 우잘라>(1975)는 침체에 빠져 있던 그의 70년대를 그나마 완전한 불모의 시기가 되지 않게 막아주었다고 기록될 만한 영화다.

-영화는 1910년, 아르세니에프(유리 살로민)라는 전직 군인 겸 탐험가가 옛 친구 데르수 우잘라(막심 문주크)의 묘지를 찾아와 데르수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902년 지형탐사차 시베리아의 우수리 지방에 온 아르세니에프는 몽골계 사냥꾼 데르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데르수가 낯선 땅에서 고생하던 아르세니에프 일행의 안내인 역할을 맡으면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서로간의 신의를 쌓아간다. 아르세니에프 일행이 탐험 임무를 완수하자 두 사람은 헤어지고 1907년에 재회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본 사람들에게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치고는 아주 ‘낯설다’는 인상부터 주게 될 그런 영화다. 이건 이 영화가 구로사와의 영화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외의 지역에서 일본인이 아닌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구로사와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이한 양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특징들, 즉 갈등들이 정묘하게 엮여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스토리구조라든가 역동적인 시각적 스타일 같은 것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유의 영화인 것이다.

-단적으로 이것은 여느 구로사와 영화들처럼 관객을 적극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참여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짝 물러 선 자리에서 다소 초연한 태도로 보게 만드는 ‘관조의 영화’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비주얼 설계면에서나 연기면에서 과장, 장식 혹은 기교를 거의 배제한 ‘자연스런(혹은 자연주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데르수 우잘라>가 구로사와적인 표지를 완전히 지워버린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우리는 여기서도 구로사와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사제관계라는 모티브가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 대해 확실히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데르수의 자발적인 선의는 아르세니에프의 감탄과 신뢰를 사기에 충분하고 심지어 데르수의 타고난 용기와 총기는 아르세니에프의 생명마저 구해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붉은 수염>에서 결국에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그것과는 달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제관계이다.

-이건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데르수는 ‘자연’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고(주위의 모든 것, 태양, 달, 바람, 물, 불 등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면 측량일을 하는 아르세니에프는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문명의 침입을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에 동화하기보다는 종국에는 그의 운명에 ‘탄식’을 던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여하튼 구로사와는 아르세니에프가 몹시 그리워하는 어조로 “데르수…” 하고 던지는 두번의 탄식을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해놓음으로써 데르수가 체현하는 그 가치에 대해 끔찍이도 향수를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내비친다. 즉 <데르수 우잘라>는 데르수가 대변하는, 지금은 상실했고 또 사라져버린 어떤 아름다운 세계와 그 가치에 대해 애조띤 밭은 탄식을 던지는 영화인 것이다. 그것이 너무 진부하거나 보수적이지는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말이다.(홍성남)

0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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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몇 안되는 책이었습니다.
로쟈님의 수고로움의 덕택에 얌체처럼 낼름 퍼 가요.

로쟈 2006-06-1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관해서라면 파란여우님이 '원조'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