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들러 몇 권의 책을 대출하고 산책 삼아 시내를 걷다가 (어쩌다 보니 종종 들르게 된) PC방에서 밀린 페이퍼를 몇 편 올리기로 한다. 먼저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미적대다 보니 손바닥에서 빠져나간 저자들도 여럿 되는데, 나중에 기회를 보아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손 가까이 닿는 저자들부터.

 

 

아감벤과 카를 슈미트 등의 저작을 번역해온 김항 교수가 새 단독 저작을 펴냈다. <종말론 사무소>(문학과지성사, 2016). '인간의 운명과 정치적인 것의 자리'가 부제다. 넓게 보아 현대 정치철학과 동아시아 정치사상을 주된 관심분야로 다뤄온 저자의 작업이 지난해 나온 <제국일본의 사상>(창비, 2015)과 이번 책으로 갈무리되는 듯싶다.

 

"조르조 아감벤,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 카를 슈미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에 응답하거나 대립했던 위대한 사상가들 간의 논쟁을 교차시키며 분석하는 책이다. 그를 통해 근대 통치질서의 실체를 밝히고, 인간의 삶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치환하여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오이코노미아-생명정치'의 패러다임에 맞서 인간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김항은 이러한 '정치'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할 장소로서, 아감벤이 <왕국과 영광>에서 '벤야민이 주저 없이 재개하려 했'다고 말한 '종말론 사무소eschatological bereau'에 주목한다."

저자가 아감벤 사상의 적극적인 전도사이자 해설자이기도 한 만큼 조르조 아감벤 활용법에 대해서도 저자에게 배워볼 만하다. 나대로는 <왕국과 영광>을 읽는 대로 내년쯤에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시리즈에 대한 강의를 한번 더 진행해보려고 한다.

 

 

건축가 승효상의 책들이 연이어 나왔다.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2016)은 1996년에 나온 첫 책의 '20주년 기념판'이고,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돌베개, 2016)은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 직무를 지난해 마친 저자의 건축론이자 도시론이다. "그간 서울시 건축 정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 만큼, 승효상의 도시론은 현실적이되 희망적이다. 이 책은 그가 우리 도시를 새로이 설계하며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으며,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직접 목격한 총괄건축가이기에 가능한 통찰이 담겨 있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의 승효상 특집도 지난 달에 출간됐기에 그의 삶과 작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참고할 수 있다. 나 같은 초심자라면 이 참에 <빈자의 미학>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빈자의 미학>에서는 승효상의 철학이 반영된 초기 건축 11점을 만날 수 있다. “건축학도들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유홍준 교수의 집 ‘수졸당’부터 ‘돌마루 공소’, ‘웰콤 시티’ 등 승효상의 스케치와 설계도가 책을 보는 기쁨을 더한다. 또한 이 책의 독창적인 특징은, 동서고금을 아우른 위대한 사유와 고귀한 예술작품, 아름다운 건축들이 승효상의 안목으로 엄선되어 담겨있다는 것이다.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제의 ‘라 뚜레뜨 수도원’부터 우리네 ‘달동네’와 ‘종묘’까지, 자코메티의 조각과 추사 김정희의 글씨, 몬드리안과 김환기의 그림 등이 승효상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주석과 함께 매 페이지마다 독립적으로 펼쳐진다."

 

주로 여성의 삶과 일을 기록해온 안미선 작가가 이번에는 여성의 책읽기를 다룬 책을 펴냈다. <모퉁이 책읽기>(이매진, 2016). '여자들의 책 읽기 책 속의 여자 읽기'가 부제. "책 모퉁이를 돌면서 만나 남모르는 지난 시간을 고백하고, 캄캄하기만 한 앞날을 묻고, 가슴 치며 답답해하고, 비죽비죽 울고, 앙칼지게 쏘아붙이고, 무릎 꿇고 경탄하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준 책 보퉁이를 여기 풀어놓는다. 마흔 즈음에 꼽아보는 나를 만든 책 마흔 권"이라고 소개한다.

 

 

'책읽는 여자'를 다뤘다고 하니까 곁들여 생각나는 저자는 슈테판 볼만이다.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2/2006)로 잘 알려진 저자인데, '책에 미친 여자들의 세계사'를 다룬 <여자와 책>(알에치코리아, 2016)도 매우 유익한 책이다. 독서 칼럼에서 여러 차례 다루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진 못했는데, 언젠가는 독후감을 적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16.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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