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이 글은 2003년 11월말에 씌어졌다. 나는 한 계절을 건너뛰었다!). 앞으로 한 계절 정도 연재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사이에 나온 책들이 또한 부지기수이지만, 다 생략하고 지난 1-2주 정도에 나온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권에 대한 소감만을 적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책들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 복사하고 제본하는 책들은 쌓여가고 있지만, (인터넷)서점에서 실제로 구입하는 신간들은 일주일에 몇 권 안된다(덕분에 <정의론> 같은 '구닥다리'도 사들이고 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루소의 <에밀>(한길사)이다. 800쪽이 넘는 분량이고, 3만원이 넘는 책값이다. 이미 정봉구 교수의 완역본(범우사)이 나와 있는 걸로 아는데, 어쨌든 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새단장을 해서 나왔다. 얼마전에는 책세상에서도 일부 발췌역 <에밀>이 나왔는데(해제만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책을 낼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갑자기 에밀 붐이라도 분 것 같다.

루소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개역본(한길사)도 아직 사지 않은 나로서는 이 신간을 사게 될지 아직은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고전의 완역은 반가운 일이다. 루소와 관련해서 가장 기다려지는 책은 단연 <고백록>이다. 아주 오래전에 완역된 적이 있는데, 그건 도서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고, 새 완역본이 나왔으면 싶다(범우사판의 <에밀> 역자는 정봉구 교수이다. 알라딘에는 '정범구' 교수로 잘못 표기돼 있다. 미심쩍어서 다시 확인하고 수정했다. *알다시피 <고백>은 작년에 재출간됐다).

루소 입문서로 내가 추천할 만한 책은 로로로 시리즈로 나온 G.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이다. 당대의 경쟁자 볼테르와의 비교가 재미있는 전기이다. 그리고 참고로, <철학이야기>의 저자 윌 듀란트도 루소와 그의 시대에 대한 1,000쪽이 넘는 저작을 갖고 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엄두가 나질 않아서 다시 꽂아둔 기억이 있다. 루소의 연구서로는 토도로프의 얇은 책 <덧없는 행복>(한국문화사)이 번역돼 있고, 문예이론가 야우스의 <미적 현대와 그 이후>(문학동네)에서도 루소가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책(번역되었으면 하는 책)으로는 장 스타로벵스키의 연구서 <투명성과 장애물>이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폴 드 만의 <독서의 알레고리> 등도 번역되었으면 싶지만...

 

 


 


두번째 책은 강유원의 <서양문명의 기반>(미토)이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폐간된 잡지 <포에티카>에서였지만, 나는 지지난주 문화일보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새삼 그의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이윤기의 <장미의 이름> 개역본은 강유원의 오역에 대한 지적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책>(야간비행)으로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이 회사원/철학자의 신간은 철학책이 아니라 거시적인 문명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혹은 역사철학책이라고 할까?). 구내서점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아직 사진 못한 책이지만, 사실 이런 제목으로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라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인데, 저자의 대한 신뢰감 때문에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물론 지금의 강유원은 더이상의 소개가 불필요하다. 그의 최신간은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선언>(뿌리와이파리, 2006)이다. 분량 만만, 가격 저렴이라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는 동국대의 스타급 강사였다고 하는데, 요즘도 모처에서 틈틈이 강의를 하는 모양이며, 신간은 그 결과물이라고 한다(그는 <씨네21>에도 기고하고 있다. *지금은 물론 과거형이지만). 그가 빨리 생업을 위한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에 ('취업'이 아니라) '초빙'되기를 바란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도록. 참고로, 그의 책으론 헤겔 번역서 <법철학1-서문과 서론>(사람생각)과 절판된 <근대 실천철학연구>(미래글)가 있다. 후자는 홉스와 헤겔의 사회철학 연구서이다(그의 학위논문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 책은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의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코리브르)이다. 교양 수학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데블린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으론 이미 8권 정도가 번역돼 있는바, <수학의 언어>(해나무), <인포센스>(사람in), <수학유전자>(까치글방) 등이 비교적 많이 팔리고 있는 책들이다. 개인적으론 <수학유전자>란 책 이후에 비로소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게 되었는데, 댓권쯤 꽂혀 있는 그의 책들을 언제나 마음놓고 읽어볼는지...

 

 

 

한편, 수학전문출판사인 경문사에서 새로운 교양수학 시리즈로 'Apple'을 얼마전에 내놓았는데, 1권이 네이글의 <괴델의 증명>이고, 2권이 파울로스의 <수학 그리고 유머>이다. 네이글은 저명한 과학철학자이고, 파울로스는 <수학자의 신문읽기>(경문사)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수학자이다. 특히 <수학 그리고 유머>에는 르네 톰의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응용한 대목이 나오는데, 이 톰의 주저들이 아직 번역되고 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이정우가 번역/소개한 <카타스트로프의 과학과 철학>(솔출판사)이 유일하다(*이정우의 근작인 <탐독>에는 르네 톰에 관한 내용이 얼마간 언급돼 있다). <구조적 안정성과 형태발생>, <기호물리학> 등의 책들을 언제쯤 우리말로 읽을 수 있을는지,(크리스테바의 초기 기호분석론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그걸 번역해줄 수 있는 국내 학자가 과연 있는지 궁금하다...

 

 



 

네번째 책은 이경훈의 <오빠의 탄생>(문학과지성사)이다. 부제는 '한국근대문학의 풍속사'인바, 같은 주제의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도 이 같은 부류의 신간이다. 모두 '선정적인' 제목에 힘입어서인지 잘 팔려나가고 있다. 근대문학연구자들이 일종의 노다지를 발견한 셈인데, 물론 신간들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책들이면서 인문학 위기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책으로서도 유력해 보인다.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끝으로 말론 브랜도의 전기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푸른숲)이 지난주에 나온 전기문학이다. '20세기 최고의 배우'라는 평을 받는 이 대배우의 삶에 대한 '내밀한 기록'이라고. 나에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과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의 배우로 각인돼 있는데, 책표지로 사용된 젊은 시절의 사진들 또한 매력이 있어 보인다.

 

 

 

 

브랜도의 전기는 푸른숲에서 새로 출간하고 있는 전기물 시리즈 'Prun Soop Bios'의 세번째 책인데, 둘째권이 조너선 스펜스의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이고, 첫째권이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자 붓다>이다(*동양학 권위자인 암스트롱의 책으론 <마호메트 평전> 등도 출간돼 있으며, 자서전 <마음의 진보>(교양인, 2006)도 연초에 나왔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 소개한 기억이 있다). 모두 주목할 만한 전기물들이다...

 

 

 



덧붙임: 작년에 제6회 다산기념 철학강좌에 초빙되어 내한했던 찰스 테일러 교수의 강연/대담집 <세속화와 현대문명>(철학과현실사)이 출간됐다(*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영어원문과 번역문이 나란히 실린 강연문 외에도 저자의 40쪽 분량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번에 내한했던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은 제7회 철학강좌였다. 그것이 의미하는바는 내년 이맘때쯤 이번 강연문들이 책으로 묶여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 생각보다 오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그래도 조잡한 번역문들이 대폭 수정되어 말끔한 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알다시피 지젝의 내한강연은 작년 6월에 책으로 나왔다).

한가지, 철학과현실사의 신간에는 <자유주의의 원류>도 있는데, 부제가 '18세기 이전의 자유주의'이다. 나는 이 부제가 좀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루어진 내용의 절반은 18세기 사상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제는 '19세기 이전의 자유주의'라고 해야 옳다. 18세기 이전이라면, 1700년까지이기 때문이다(*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200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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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05-19 16:37   좋아요 0 | URL
강유원의 <근대 실천철학 연구>는 그의 학위논문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석사논문으로 홉스를, 박사로는 헤겔을 썼으니 밀접한 연관은 있겠지요. 그의 논문은 그의 싸이트armarius.net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더군요.

로쟈 2006-05-20 00: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오래전에 책의 서문과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학위논문과 관련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