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 공연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지난달에 이번주 토요일 공연을 예매했기 때문에, 주말 7시간 30분을 이 공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공연에 관한 글을 한번 띄운 적이 있지만, 며칠전 한겨레에 관련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옮겨온다.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한겨레(06. 05. 11)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연출가 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 공연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장장 7시간30분에 걸친 공연시간으로 화제지만 중요한 건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작품과 함께 늙어온 배우들은 스타니슬랍스키가 부르짖었던 ‘무대 위의 삶’이 무엇인지를 펼쳐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 무대에 처음 <형제자매들>이 울려 퍼진 것은 1985년. 그로부터 20년이 넘었지만 관객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작품을 찾는다. 여전히 ‘동시대적’인 무엇이 그들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감동은 러시아인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말리 극장 로비에 전시된 세계지도에는 <형제자매들>이 여행한 루트가 표시되어 있다. 1999년 러시아 유학 중 두 차례에 걸쳐 이 작품을 봤으며, 레프 도진을 인터뷰하기도 했던 이진아 숙명여대 교수가 소개글을 보내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주 연극의 위기에 대해, 드라마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인접 장르와의 경쟁 속에서 연극은 서서히 도태되고, 마이너 장르로 밀려나고, 마침내는 사라지고 있다고. 그런데 그런 시대에 20년 이상 객석을 가득 메운 채 상연되는 연극이 있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장 민족적이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연극이 세계인의 공감과 찬사를 얻으며 지구를 몇 바퀴나 돌고 있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형제자매들>은 러시아인들이 ‘위대한 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베리아 민중들의 이야기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새 희망에 부풀지만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가난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은 다시 사랑하고 노래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삶이 주어진 한 다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극의 씨뿌리기 장면은 그러한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다. 발을 구르고 민요를 부르며 열을 맞추어 씨를 뿌리는 아낙들, 황금빛 조명 아래 찬란한 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씨앗들, 그들이 파종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래요, 희망이다.

연출가 레프 도진의 명성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드라마 극장(이하 말리 극장)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1980년대 초 도진이 이곳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됐을 때, 그는 극장을 말 그대로 개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형제자매들>이라고 하는 금세기 연극사에 길이 남을 작품 만들기에 착수했다. <형제자매들>을 만들기 위해 그는 도시에서만 자란 젊은 배우들을 데리고 원작자 표도르 아브라모프의 고향 시베리아의 시골마을로 갔다. 도시의 평론가들과 연극인들의 경악과 비웃음 속에서 그들은 여름 한철을 몽땅 그곳에서 보냈다. 시골 풍습을 배우고, 북쪽 사람들 특유의 악센트를 익혔으며, 무엇보다 그들 삶의 영혼을 느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들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일소하며 <형제자매들>의 무대 위에서 경이롭게 빛을 발했다.

<형제자매들>의 무대는 예두아르트 코체르긴이 북러시아의 상징적인 재료, 통나무로 디자인했다. 극의 시작은 무대 중앙에 드리워진 통나무 스크린 위로 전쟁 자료화면들이 영사되면서부터다. 이와 함께 무대를 울리는, ‘형제자매들이여~’로 시작되는 스탈린의 연설. 이 프롤로그 직후 나무 스크린이 거두어지면 무대 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전장에서 귀향하는 가족을 기다린다. 통나무로 된 두 개의 나무 문이 앞줄에 앉은 관객의 머리 위를 지나 두 개의 반원을 그리며 열어젖혀지면 그들은 힘차게 가족들을 외쳐 부른다. 그들의 애절함과 반가움 속에는 관객들에 대한 마음도 함께하는 것 같다. 이렇게 관객은 <형제자매들>의 전후 민중들의 삶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 작품은 본래 이틀 저녁에 걸쳐 공연된다. 세 시간 남짓한 두 개의 공연이 모여 <형제자매들>이라는 하나의 극을 이루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신들의 소중한 이틀 저녁을 고스란히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할애해야 한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도진의 작품을 보는 것은 늘 편안한 경험은 아니다. 그는 관객에게 충격과 고통을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바로 그 ‘경험’을 통해 극장을 나서면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나 얻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레프 도진의 작업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과 연극적 유산들을 연구하지 않은 진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뿌리와 근원을 잃은 아이디어는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 그의 작업은 이러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형제자매들>은 연극이 어떠한 모습으로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적 질문이 되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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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5-1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한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7시간 30분이라...밥 먹는 시간도 준다니...그런데 러시아 극단이 와서 직접하는 건가요? 그럼 자막 읽어내랴 어지간히 고생깨나 할 것 같아요. 하지만 호기심이 마구 동한다는...^^

로쟈 2006-05-1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직접 와서 하는 공연입니다. 두 차례 관련 페이퍼를 올린 바 있으니까 참고하시길. 혹 표가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