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와 타르코프스키(1932-1986)는 물론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와 감독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달았지만, 내가 맘잡고 이들에 대해서 몇 마디 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다. 읽어야 할 책이 잘 읽히지 않아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1997)을 펴들게 됐는데, 1970년부터 시작되는 이 일기의 첫 페이지가 우연히도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것이었을 뿐이다(이 책을 몇 년만에 펴든 듯하다. 참고로, 타르코프스키의 이 일기는 1986년 12월 그가 폐암으로 사망하기 불과 2주전의 기록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 4월 30일자 일기를 따라가 본다. 아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쳐진 영화 <거울>(1975)에 등장하는 실제의 어머니.
-우리는 다시 한번 <도스토예프스키>를 영화화하는 작업에 관해 사샤 마사린과 이야기했다(*역주에도 있지만, 마사린은 영화 <거울>의 시나리오 작업을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했었다). 당연히 우선 작품구상을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는 대답이었고 당분간 연출구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계획은 의미가 없을 것이며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에 관한 영화를 찍어야 할 것이다...(*마치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책세상, 2001)를 쓴 존 쿳시처럼. 쿳시의 책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성격, 그의 신, 그의 악령들, 그가 이룩한 일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톨야 솔로니친은 도스토예프스키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톨랴 솔로니친'이 맞는 표기겠다. '톨랴'는 '아나톨리'의 애칭이며, 아나톨리 솔로니친(1934-1982)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 배우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솔로니친을 도스토예프스키의 배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 아래 사진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솔로니친과 도스토예프스키.)
-이제 나는 우선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쓴 글을 모조리 읽어야만 하겠다. 그리고 그에 관해 쓴 모든 글들 그리고 러시아 종교철학자들인 솔로비요프, 베르쟈예프, 레온체프의 글들도 모두 읽어야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영화 속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 모든 것들의 총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지 않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제법 '용감한' 일에 속한다. 아래 사진은 모스크바의 국립레닌도서관 앞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동상. 그의 동상으로서는 가장 유명하다.)
(*)타르코프스키가 언급하고 있는 러시아의 (종교)철학자들 가운데, 국내에는 베르쟈예프 정도만 소개돼 있다. 그리고,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를 영화화하려던 타르코프스키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가 세번째로 찍게 된 영화를 스타니슬라프 렘 원작의 <솔라리스>였으며, 그에게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순교일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계획'들에 비추어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7편의 '타르코프스키'는 정말로 '한줌'밖에 되지 않는다. 몇 달 뒤, 그러니까 1970년 9월 7일 일기의 한 대목.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영화화되었는지를 꼭 알아보아야겠다고 별렀으면서도 아직도 알아보지 못했다. 아직도 영화화된 적이 없다면 테니슈빌리가 감바로프에게 두 개의 주제를 제안했으면 한다. '카뮈'와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시나리오, 사샤 마샤린이 우리와 함께 이 시나리오를 쓰고자 했었지. 솔로니친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역할을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40쪽)
이어서 그는 '내가 기꺼이 만들고 싶은 영화들'의 목록을 적어놓고 있는데, 13편이다. 그 중에는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과 솔제니친의 <마트료나의 마당>(*<마트료나의 집>이라 번역돼 있다), 그리고 카뮈의 <페스트>가 포함돼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으로는 <젊은이>(*<미성년>을 가리키는 것이겠다)가 올라와 있다.
-좋은 시절이라면 나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만일 일년에 영화 두 편씩을 찍을 수 있다면 1960년부터 시작해서 이미 20편을 찍었을 것이다. 바보 천치 같은 자들이 결재를 하고 있는 판에 무슨 영화를 찍을 수 있단 말인가!(*1970년이면 타르코프스키의 나이가 바로 내 나이이다. 나도 주변에서 '바보 천치'들을 찾아봐야겠다!)
-자기자신을 구원함으로써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41쪽)(*이것이 '오늘의 밑줄'이다. 나도 물론 진작부터 알고 있는 '지혜'이긴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어록'에 올려놓도록 한다.)
06. 04.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