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자작시가 'Don't cry for me!'이다. 물론 이 제목과 함께 떠올려지는 멜로디는 영화 <에비타>의 주제가로 에바 페론이 부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 즉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다오!'이다. 한때, 봄바람이 날 때면, 나는 이 지구 반대편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가는 꿈을 꾸곤 했다. 나의 '이민'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은 것은 '또다른 삶'으로서의 이민에 대한 이러한 '몽상'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울지 말아다오!'란 청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나는 간혹 그러한 연민으로 자기연민을 쓰윽쓰윽 지운다, 지워버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관한 영화 <해피 투게더>의 이미지들을 군데군데 찬조출연시켰다. 피아졸라의 탱고음악과 함께 잠시 아르헨티나로 떠나본다.
Don't cry for me!
눈이 내리고 눈꺼풀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봄이다 궂은 일도 아니다
엊그제 내다버린 어항 속 개구리밥처럼
희망은 뿌리 없이도 푸른빛을 띠었고
사랑은 사당 사거리로 가는 길처럼 꽉 막히다가
이게 아니구나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하긴
봄이다 다행이다
몇 년만에 본 여자는 아르헨티나에 갔었다는 여자는
사지가 멀쩡하고 아이도 있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남편은 외교관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눈은 내리고 바람은 분다
사실은 잘 모른다
나도 언젠가는 이민을 가려고 짐을 꾸리는 중이다
봄이다 봄바람 이젠 궂은 일도 아니다
몇 년만에 본 여자는 아르헨티나에 갔었다는 여자는
하필이면 사지도 멀쩡하고 아이까지 있을까
나는 혼자 이 여자를 사랑했나 보다
흔한 일이다
나를 위해 울지 말아다오
눈은 더 내리지 않고 바람도 더 불지 않는다
그래도 봄이다 눈꺼풀이 감긴다
눈은 더 내리지 않고 바람도 더 불지 않는다
그래도 봄이다 눈꺼풀이 감긴다
엊그제 또 내다버린 어항 속 개구리밥을 걱정하다가
나는 배가 고프기도 하고 아침 내내 꽉 막히던 길에 부아도 난다
하지만
나는 결코 울지 않을 테다
봄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나는 이민 간다
봄이다 봄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
여전히 눈이 내리고 눈꺼풀이 내리고 바람이 불겠지
이게 아니구나 싶어도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
나는 여차하면 이민을 가려고 짐을 꾸리는 중이다
나는 한푼도 예금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때나 울지 않는다 절대로 울지 않는다
봄이다 봄바람 다행이다 이젠 정말 궂은 일도 아니다
제발 나를 위해 울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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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03. 26.
P.S. 이 글은 '집'에서 쓰는 본격적인 첫 페이퍼이다. 집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의 이미지 여행이 가능한 것은 물론 인터넷 덕분이다. 인터넷-몽상 때문에 이제 이민 가는 건 정말로(!) 글렀다고 봐야지. 나는 매번 짐만 꾸리다,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