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한국인의 귀에 가장 익숙한 러시아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카츄샤' 같은 민요도 손에 꼽아봄직 하지만, 짐작엔 라슬 감자토프의 시에 붙인 곡을 알렉산드르 코브존이 부른 (<모래시계>의 주제가) '백학'(남성버전)과 알라 푸가초바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여성 버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두 노래가 러시아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사랑받는 것은 한국에서가 아닐까 싶고. 그 중에서도 이 글에서는 '백만 송이 장미'에 관한 얘기를 조금 다루기로 한다. 참고로,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에는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으며 나도 도움을 받았다. <노래로 배우는 러시아어>(문예림, 2003)에는 노래의 러시아어 가사와 그 번역이 실려 있으며, 이 노래 등이 포함된 CD가 부록으로 포함돼 있다.  

국내에서는 '백만 송이 장미'란 타이틀의 드라마도 만들어졌지만, 우선은 심수봉이 개사해서 부른 '백만 송이 장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절과 후렴의 가사는 이렇게 돼 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어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후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있다네

그리고 이 노래의 원곡 가사는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백만송이 장미 원곡'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노래와 함께 원어 가사 등을 찾아보실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oIFmhye6fqw).

한 화가가 살고 있었네. 그에겐 집과 캔버스가 전부였다네.
화가는 꽃을 사랑하는 어느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과 그림들을 팔았고,
그 돈으로 바다만큼의 꽃을 샀다네.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 서면, 그대는 아마도 정신이 혼미해지겠지.
꿈꾸는 듯 광장은 꽃으로 가득 찼다네.
어떤 부자가 이토록 놀라게 하는지?
그러나 창문 아래엔 가난한 화가가 숨죽이며 서 있다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고, 그녀를 태운 기차는 밤을 향해 떠나버렸네.
하지만 그녀의 삶엔 열정적인 장미의 노래가 있었다네.
화가는 외로운 삶을 살았지, 아주 불행하게...
하지만 그의 삶은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었다네.

(후렴)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를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는 보고있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그대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꽃과 바꾸어 버렸다네.

 : Алсу (Алсу) : Фотка N3 : Алсу (Алсу) : Фотка N2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알라 푸가초바인데, 러시아의 국민 여가수이다(젊은 여가수들 중에는 '알수'(1983- )가 있다. 아래 사진http://www.youtube.com/watch?v=2Mos7iGcqeo). 모스크바에 체류할 때 TV에서 몇 번 봤는데(더불어 언론에도 자주 등장한다) 체구에 걸맞게 괄괄하고 화려한 무대매너를 자랑하는 여가수였다. 조금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자신의 친구 아들과 결혼해서 한때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최근에 들은 바로는 이들 커플에 올초에 이혼했다고 한다).

'젊은 남편'인 필립 키르코로프 또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인데, 역시나 스캔들 메이커로서 재작년에는 자신의 발표한 앨범 홍보 인터뷰 중 한 여기자에게 폭언을 퍼붓는 바람에 법정소송에까지 몰린 적이 있었다(이 사건이 그해 연예계 최대 스캔들이었다).

이 '요란한 커플'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을 잠시 인용한다. <주간동아>(2001. 09. 27.)에 게재된 러시아 통신원의 보고이다. 비만과 관련한. '러시아 문화의 이해'라는 제목과 관련되기도 하므로 전문을 옮겨온다(이미지는 내가 집어넣은 것이다).  

-문명의 풍요와 더불어 찾아온 병’ 비만은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추위에 대항해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과 감자, 밀가루처럼 고칼로리 음식을 주로 먹는 식습관으로 유명한 나라다 보니 러시아인의 비만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흔히 러시아 여성 하면 늘씬한 금발 미녀를 떠올리지만, 이는 사실 20대의 ‘빛나는 한때’일 뿐이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인은 총인구의 54%가 과다체중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하면서 러시아에서도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소비에트 시대 강한 여성상의 표본으로 받아들이던 ‘당당한 체구의 여성 노동자’는 미니스커트와 각선미로 중무장한 신세대 여성에 밀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50이 넘은 나이에 18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면서 대대적인 주름살 및 지방제거수술을 받아 30대 외모로 거듭난 것 역시 무수한 사례 중 하나다. 이러한 세태에 힘입어 때를 만난 것은 피트니스 클럽. 지난 93년 최초의 클럽이 모스크바에 문을 연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800여 업소가 운영되는데다, 은행·석유재벌·대형유통회사들까지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월드 클래스’ ‘플래닛 피트니스’ ‘핏 앤드 팬’ 등 유명 클럽의 1년 회원권 가격은 미화 3000달러를 넘는다. 3개월짜리(600~960달러 상당) 이하의 회원권은 아예 팔지 않을 정도로 이들 클럽은 전성기를 맞았다.

-회원권의 가격은 제공되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4000달러짜리 ‘핏 앤드 팬’ 클럽의 골드카드에는 심장질환 검사 2회, 에어로빅 강습, 트레이너의 개인 훈련, 사우나, 마사지, 자쿠지(거품목욕), 수영장, 일광욕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레스토랑과 미용실 할인혜택까지 포함한다. 다이어트 전문 컨설턴트와 상담해 피부 미용 등은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그 밖에 요가·동양무술 코스도 인기 있는 옵션이다. 이들 피트니스 클럽은 자본주의 문화의 첨병답게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으로도 앞서간다. 낮 시간 이용자에게는 회비를 낮춘다거나 대기업 직원들과 제휴해 단체 할인혜택을 주는 것은 고전적인 기법. 어린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 청소년 전용 헬스장도 있다. 클럽 내부에 레스토랑과 바, 옷가게, 미용실 등을 설치해 살도 빼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한 경우도 있다. 물론 이 클럽들은 수백 달러의 월급으로 연명하는 대다수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거센 다이어트 열풍 뒤에는 비만을 여유로 생각하는 ‘만만디족’도 있다. 날씬하지 않음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며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다. 러시아에는 ‘뚱보’ 클럽을 결성해 ‘풍요로운 체구’로 인해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도 전개한다(http:// fatgirls.narod.ru/fatclub). 심지어 체중 130kg이 넘는 무용수로만 이루어진 발레단도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이 ‘뚱보 발레단’ 단원들은 신체조건을 극복하며 아름다운 발레를 하는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날씬함이 곧 경제적 여유를 상징하게 된 자본주의 러시아. 그 속에서도 ‘살빼기에 집착하다 건강 버리고 마음 상하느니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살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돋보이는 것은 분명 우리 나라나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가난한 서민의 일종의 항의 표시일까, 아니면 러시아인의 낙천적인 본성 때문일까. 

아마도 짐작에는 '낙천적인 본성' 때문인 듯하다. 내지는 체중 정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백만 송이 장미'로 돌아오면, 러시아어 노래는 실제의 사랑 이야기에 바탕을 둔 거라고 한다. 그 가난한 화가는 그루지야 출신의 니코 피로사니(피로스마니슈빌리; 1862-1918)이고, 비쩍 마른 간판쟁이 화가였던 그가 30대 중반에 사랑했던 젊은 여배우(마르가리타?)는 가사에서처럼 잠시 그의 구애에 감동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돈많은 남자에게로 가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아홉 켤레의 구두처럼 니코에게 남은 것은 '백만 송이 장미'의 추억. 그는 쓸쓸하게 여생을 살다가 56살에 세상을 뜬다. 한국식 가사에 따르면 그의 별나라로 떠난 것. 그의 그림 몇 점을 감상해보기로 한다.

 

마지막 그림은 라일락과 딸기를 그려놓은 듯하다. 그의 그림들 중에서는 굉장히 드물게도 뭔가 따뜻함이 배어나는 것도 같다. 최소한 '백만 송이 장미'보다는 덜 안쓰럽지 않은가? 여하튼 니코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삶 전체를 꽃과 바꾸어 버리는 일은 자못 삼가해야겠다(내일이 '화이트데이'로군).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06.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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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의 죽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04 01:22 
    몇 시간 전 일이지만 어제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의 현대철학강의 종강일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과 비평에 관해 다루고 강의 뒤에는 몇 분과 간단한 뒷풀이를 가졌다. 어제 아침에서야 서울에서 선거 '패배' 소식을 접하고 수도권의 경우 고작 0:3(예상)에서 1:2(결과)란 말인가 싶었지만, 밤에 귀가하면서 한겨레를 보다가 2% 부족한 승리를 '관대한 승리'로 간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twoshot 2006-03-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위에 대항해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과 감자, 밀가루처럼 고칼로리 음식을 주로 먹는 식습관으로 유명한 나라다"...비만의 원인, 이제야 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