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나는 대로 이전에 쓴 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혹은 이미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이게 요즘 '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막힐 때 하는 나의 '단순작업'이다). 이 글은 모스크바 통신에서 '문학사가의 삶, 영화감독의 삶'이란 제목으로 띄운 글의 일부이다. 러시아의 저명한 문학사가 바쭈로와 영화감독 랴자노프를 기리며 혹은 기억하며 여기에 다시 옮겨둔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와 관련하여 기억해 둘 만한 이름은 저명한 러시아 문학사가이자 푸슈킨 시대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서 몇 년 전에 작고한 바짐 바쭈로(V. Vatsuro; 1935-2000) 교수이다(왼쪽은 청년 바쭈로이고, 오른쪽은 노년의 바쭈로이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푸슈킨연구소>(러시아어를 직역하면, ‘푸슈킨의 집’이다)에 오래 봉직한 걸로 아는데, 나는 그 연구소에서 학위를 받은 후배에게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간혹 나도 자신이 전공자인지 의심스럽다!). 얼마전에 언급한 유리 로트만과 같은 세대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1922년생인 로트만보다 13살이나 아래이니까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난다.
로트만이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인정한 학자였지만, 바쭈로란 이름이 전공자들에게조차 생소한 것은 그가 (체계를 만드는) ‘문학이론가’나 (작품을 해석하는) ‘문학연구자’라기보다는 작품 안팎의 1차 문헌자료를 주로 다루는 ‘문학사가’였기 때문이다(최근에 나온 그의 논문선집에서도 그는 “탁월한 러시아문학사가”로 소개돼 있다). 때문에, 그의 책들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푸슈킨 시대(19세기 전반기)의 마이너 작가들이 아주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옆에서 보기엔, 지나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우리 같으면 대학원에서도 안 다루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 바쭈로의 유고논문집들이 나오고 있다. 작년에 NLO(한번 소개했던 출판사)에서<러시아의 고딕 소설>이 출간됐고(544쪽, 2,000부 발행, 왼쪽의 책), 1994년에 초판이 나왔던 <푸슈킨 시대의 서정시: ‘엘레지파’>의 2판이 나우까출판사에서 나왔으며, 바로 지난주에는 (앞에서 말한) <논문선집>이 나왔다(빨간색 하드카바에 ‘바쭈로’란 이름이 큼직하게 박힌 이 책은 824쪽이고, 발행부수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많이 찍었을 거 같지는 않다. 오른쪽의 책).
필팍(인문대학)의 서점 <그노지스>에서 200루블에 산 이 책에서 나에게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책 중간에 8쪽에 걸쳐 실린 그의 사진들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업적 연보. 먼저, 사진. 첫사진은 어린 바쭈로가 엄마인 류드밀라 발렌찌노브나의 품에 안겨서 목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다. 쌍꺼풀이 크게 진 눈에(눈매가 엄마를 닮았다) 볼살이 도톰한, 얌전한 개구장이처럼 생긴 이 아이가 나중에 책에 파묻혀 사는 문학사가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장에는 1962년, 그러니까 27살(우리나이로 28살)의 바쭈로가 나온다. 70년대가 넘어가면 바쭈로는 두툼한 뿔테안경을 쓰고 얼굴이 콧수염과 구레나룻으로 뒤덮인 모습이지만, 20대 후반의 젊은 바쭈로는 아주 핸섬한 청년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스냅사진으로 찍혔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대부분 그가 다른 학자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이다(1991년의 블록학회에서 로트만과 담소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들어 있다. 둘 다 머리가 희끗하다). 가족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23쪽에 걸쳐서 모두 295건에 달하는 그의 연구업적 목록이 나와 있는데, 약간 의외로 청년 바쭈로의 초기연구는 레르몬토프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가 1959년에 나온 레르몬토프 전집(V. 마누일로프 편집)의 2권과 3권에 각각 “레르몬토프의 드라마”와 “레르몬토프의 서사시”란 작품해제를 싣고 있다는 사실이다. 1959년이면 그의 나이 24살 때인데, 그때 이미 학계(혹은 편집자 마누일로프)의 인정을 받을 만큼 유능한 학자(학생이 아니라)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가 푸슈킨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는 건 1963년부터이다.
바쭈로의 이러한 유고집들이 나오는 데 가장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은 미망인 바지마 에라즈모비차 따마라 페도로브나 셀레즈뇨바 여사이다(이름이 왜 이렇게 긴지는 모르겠다). 지난번 통신문에서 ‘미용사의 남편’ 얘기를 잔뜩 했지만,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학자의 아내’는 주로 그런 일들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그게 그녀식의 ‘배꼽춤’인 것이다). 애서가의 아내는? ‘애서가의 운명’에서 암시한바 있지만, 아마도 책들을 헌책방에 근수로 넘기면서 여생을 보내지 않을까?...

다시 신(新)아르바트거리의 <돔 끄니기>(영어로는 '북스토어'). 2층의 신간매장에 가서 열심히 찾은 건 영화관련서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정말 초라했다. 영화이론서들은커녕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 같은 종류의 책도 전혀 없었고, 러시아 영화감독론도 전무했다(두어 권 나온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책들도 당연히 없고, 새로 나온 에이젠슈테인의 저작집들도 없고). 그나마 욕심이 났던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 영화 속의 20세기 러시아사를 주제별로 짚어본 책이었는데, 가격이 400루블을 훌쩍 넘었다(18,000원 가량). 들고 간 돈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는 수밖에. 그래도 발행부수를 보니까 이해가 갈 만했다. 500부 발행. 그러니까, 이 책을 사게 되면, 500명 안에 드는 것이다!
시나리오 같은 경우 조그만 소책자로 나오는 정간물이 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못 들어본 최근의 영화들이어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직원에게 라쟈노프에 관한 책이나 그가 쓴 책이 없는지를 물어봤는데, 두 권을 찾아주었다('랴자노프'의 러시아어 발음은 '리자노프'이다). 하나는 얇은 것으로,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한 이 영화감독과 그 주변사람들의 짤막한 글들을 모은 ‘그림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두툼한 ‘회고록’ 혹은 ‘자서전’이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그래봐야 1만원도 안되는 책값이다!) 자서전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바그리우스출판사의 ‘나의 20세기’ 시리즈(정치가나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영화감독 중에는 페데리코 펠리니나 밀로스 포만 등의 이름이 보이고, 배우들 가운데는 브리지트 바르도와 캐서린 햅번이 눈에 띈다) 중의 하나로 나온 <엘다르 랴자노프>는 2000년에 나온 걸 이 출판사에서 작년에 다시 찍은 것이다. 하드카바에 637쪽 분량이고, 흑백화보도 풍성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돈은 안 아까운 책이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젊은 시절의 랴자노프).
일단 이 책에서도 화보들을 먼저 보게 되는데, 세 군데에 나뉘어 실린 화보의 제일 첫 페이지에는 (아마도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인 듯한) 20세의 라쟈노프가 나온다. 중년 이후의 라쟈노프와 비교해보면, 도저히 동일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잘생기고 퍽 진지해 보이는 청년이다. 그가 1927년생이니까 4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일 것이다. 그런 인상이 30대 초반 정도까지도 유지되는 듯하다. 머리가 이미 빠지기 시작하지만, 짙은 눈썹의 강인한 눈매, 그리고 단단한 턱은 남자다운 매력을 물씬 풍긴다. 라쟈노프 자신이 “이건 테너 가수가 아니라, 나입니다!”라고 설명을 달아놓았을 정도이다.
20세의 사진 뒤쪽에는 그의 엄마가 백일도 안된 라쟈노프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벌거벗은 채 장난감을 한 손에 들고 있는 8개월 된 라쟈노프도 보이고(엄마를 닮았다), 서너살쯤 된 라쟈노프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도 그 옆에 있다(아빠를 닮았다). 이 아이가 나중에 러시아의 거장이 된다! 그의 부모는 라쟈노프가 3살 때 이혼했으며, 아버지는 1938년(스탈린 시대 최대 숙청기)에 체포되었다고(아마 총살되었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었을 것이다).


20대엔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동원되다가 그가 극영화 감독으로서 정식 데뷔하게 되는 것은 1956년이다. 그러니까 그의 나이 29세 때이고(우리 나이로 30세), 해빙기(흐루시초프 시대)의 대표적인 풍자코미디인 <카니발의 밤>이 그의 데뷔작이다. 이때부터 라쟈노프는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이 점점 넙적해지는 중년의 아저씨 타입이 된다. 거기에 선글라스를 끼면, 누가 봐도 공사장 작업반장이거나 영화감독이다. 맨마지막에 실린 근년의 사진은 약간 수척해진 백발의 노장(老將)의 모습을 보여준다. 칠순을 넘긴 라쟈노프이지만, 눈빛만은 아직도 예리하다.
국내에 이 거장의 영화들이 소개되지 않은 건 유감스럽다. 가장 오랜 기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영화의 현장을 지켜왔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해 왔던(그의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성공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감독이기에 그러하다. 비디오CD로 나온 그의 작품을 모두 구해보니까 9편이다(그는 비디오CD 레퍼토리 중 가장 많은 편수를 가진 감독이기도 하다). 자서전의 책날개에 실린 11편의 대표작 목록 중 근작에 속하는 두 편이 빠져 있을 뿐이다(이제 그의 영화에 관한 학술논문이나 비평문들을 도서관 등에 다니면서 구해봐야겠다).

가장 최근에 구한 1983년작 <잔혹한 로맨스>에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주연을 맡고 있다(총을 들고 있는 남자. 라쟈노프가 연기지도를 했을까?). 국내에 출시된 영화들 중에서는 자신이 감독한 <(자동)피아노를 위한 희곡>, <위선의 태양>,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러시아 영화의 황제’ 미할코프는 현재(2004년) 칸느에 가 있다. 얼마전 뉴스에서 현지 표정을 전해주었는데, 얼핏 보기로 이번 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위원장인가를 맡고 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곳 <이즈베스찌야>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 같다고 점치고 있다. 그건 그 영화가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퀜틴 타란티노의 ‘취향’이기 때문이라고. 맞아떨어질 것인지?(*그걸 점치던 때가 있었다!)

참고로, 그의 최고작은 해마다 연말이면 러시아 TV에서 방영되는 <운명의 아이러니 혹은 목욕 잘 하셨습니까?>(1975). 보통은 그냥 <운명의 아이러니>라고 부르는데, 사회주의 러시아의 최전성기를 대변하는 영화이다. 아래는 그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 커플이다.

06. 0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