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번스타인의 <악의 남용>(울력, 2016)을 읽다가 존 듀이의 '창조적 민주주의'란 연설문을 알게 되었다. 그가 80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행한 연설로 전체 제목은 '창조적 민주주의 - 우리 앞에 놓인 과제'(1939)다. 국내에 번역본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다만 서용선의 <혁신교육 존 듀이에게 묻다>(살림터, 2012)에 이 연설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악의 남용>에서 인용된 부분은 연설의 말미다.

 

"민주주의는, 다른 삶의 방식과 비교해볼 때, 경험의 과정을 목적인 동시에 수단으로서 성심성의껏 믿는(...) 그리고 사람의 감정, 욕구, 소망을 해방시켜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삶의 방식은, 경험들이 확장되고 풍부해지면서 계속 안정을 이루게 하는, 접촉, 교환, 의사소통, 상호작용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 해방과 풍요로움의 과제는 매일매일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경험이란 것은 그 자체로 종말에 이를 때까지는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과제는 모두가 공유하고 모두가 이바지하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인간적인 경험을 창조하는 영원한 과제이다."(45-46쪽)

요컨대 '매일매일의 경험으로서의 민주주의''영원한 과제로서의 민주주의'가 듀이가 생각한 민주주의의 최종적인 모습이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는 좀 다른 의미의 민주주의다. 번스타인의 해설은 이렇다.

"듀이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나 공식적인 투표 절차 또는 권리에 대한 법률적 보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에 생명과 의미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민주주의적 협동이 실천되는 문화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도와 절차는 실속 없고 무의미해질 위험에 놓이게 된다.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자, 적극적이고 부단한 관심을 요구하는 윤리적 이상이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민주주의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45쪽)

<악의 남용>이 듀이의 민주주의론을 핵심으로 다룬 책은 아니다. '9/11 이후의 정치와 종교의 부패'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9/11과 그 이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저자의 관심사다. 이 문제를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멘탈리티의 충돌'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그 멘탈리티의 한쪽에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실용주의적 가류주의'(pragmatic fallibilism)가 있다. 실용주의적 가류주의란 대략 미국의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와 일치하는 철학이자 태도이며, 이를 설명하면서 다른 실용주의 사상가들과 함께 듀이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 철학자 듀이는 국내에서 주로 교육철학자로서 참조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민주주의와 교육>이 핵심 저작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읽히는 성싶지 않다. 그런데 듀이는 교육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공공철학자로서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마이클 샌델이 보여주듯이 공공철학이야말로 미국철학다운 특징이며 강점이다. 찾아보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책세상, 2011), <공공성과 그 문제들>(한국문화사, 2014), <현대 민주주의와 정치 주체 문제>(CIR, 2010) 등 읽을 거리가 없지 않다.

 

듀이의 민주주의론이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가 진작에 '기업 멘탈리티'를 민주주의 가장 큰 적으로 지목한 때문이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에의 최대 위협은 내부적인 것, 즉 공중들이 강력한 특정 이익 단체의 조종을 받게 되는 경우라고 느꼈다. 그는 '공중의 소멸', 즉 공개적인 의사소통과 토론 및 심의 하에서 정보를 숙지한 공중의 소멸을 염려하였다. 듀이는 우리 시대에 전 세계적 차원에서 채택된 멘탈리티인 '기업 멘탈리티'의 성장과 전파로 인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44쪽)

 

 

이후 듀이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그 여정은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마이클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으로의 여정이다(<민주주의의 불만>은 공공철학자 샌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샌델은 20세 후반 미국사를 '절차적 공화정'(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절치적 민주주의' 내지 '형식적 민주주의')에 의해 미국 민주주의가 점차 거세되어온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 결과 얻게 된 것은 '형식상의 민주정+내용상 과두정'이다. 이건 미국만의 현실이 아니다. 서민 표몰이를 한 뒤에 부자 감세를 하는 게 한국 민주주의의 현단계니까. 그 결과가 미국 중산층의 붕괴이고 유사 이래 가장 크게 벌어진 게 빈부 격차다. 물론 '헬조선'을 만들어낸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

 

 

듀이식 대안을 다시 적자면 관건은 '창조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제껏 없었다면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대선후보 예비선거가 진행되면서 그 과정과 결과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민주당 후부로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의 승부가 주목거리인데, 듀이가 옹호한 미국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는지 가늠해보는 중요한 지표가 될 듯싶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올봄의 총선과 2017년 대선은 한국 민주주의의 맨얼굴을 확인하게 해줄 중요한 일정이다. 그것이 당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내딛게 해줄 것이다. '매일매일의 경험'과 '영원한 과제'를 향한 첫걸음... 

 

16. 02. 09.

 

 

P.S. 실용주의적 가류주의를 설명하면서 저자 리처드 번스타인이 가장 많이 참고하고 있는 책은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이다. "미국 실용주의의 역사를 탐구하고 미국 역사의 맥락 안에서 이 운동의 위상을 조망"한 책. 메넌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룬 네 명의 실용주의 사상가는 윌리엄 제임스와 찰스 퍼스, 존 듀이 외 연방 대법관을 지닌 올리버 웬델 홈즈 2세다. 프래그머티즘의 3인방으로 널리 알려진 세 명의 철학자와 같이 놓인 홈즈만이 생소한데, 국내엔 <보통법>(알토란, 2012)이 번역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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