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버스-전철-전철-버스로 이어지는 80분의 여정이다. 방학이라 격일출근 비슷한 걸 하고는 있지만, 당장 다음달부터는 아침 1교시 수업이 이틀이나 잡혀 있는 관계로 보통의 직장인들과 같이 '찌든' 출근길을 보내야 할 참이다(시간도 90분으로 늘어난다. 그 정도면 풀타임 영화상영시간이다). 그런 경우 끼여 있는 몸도 여유가 없지만, 더 유감스러운 건 무언가를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 보통 때 오며가며 읽는 신문/잡지도 만원 지하철(일명 '지옥철')에서는 언감생심이기 십상이다. 그러다 좀 느지막하게 출근하는 날이면 '올모스트 헤븐'이다. 유식한 유한계급들은 잘 모르겠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무식'하다.

 

 

 

 

아침에 전철을 타고 오면서는 신문을 읽고 버스를 갈아타고 오면서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기 위해서 지젝의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인간사랑, 2003)을 뒤적거렸다. 전체 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4-5장이 '호모 사케르'를 중심적인 테마로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지젝은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존 철학자로 자신의 동료들이기도 한 알랭 바디우와 조르조 아감벤을 꼽았다. 나는 <언어와 죽음>이란 책으로 처음 아감벤을 접했지만, 아감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지젝을 경유한 것이다), 1995년에 처음 출간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이미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면서 '고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다(세번째 이미지가 영역본, 그리고 네번째 이미지는 불가리아어본이다). 아마도 올해는 국역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한편, 웹진 '자율평론'에서는 아감벤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으므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조하시길). 

한데, 예기치 않은 대목을 다시 읽게 되면서 아감벤에 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그러니까 그 글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잠시 '대기소'에 머물러야만 되겠다. 그것들도 나름대로 '사케르'이군). 국역본은 이미 지적되어온 대로 '번역의 사막'인지라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내가 읽을 한 문단은 국역본 97-8쪽, 원서 '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Verso, 2002)의 47-8쪽이다. 국역본에서 인용하되 필요할 경우 별도의 표시없이 수정하여 인용하겠다. 그럼, 웰컴, 지젝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치체제의 붕괴, 이를테면 1990년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생각해 보라.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사람들은 게임이 끝났음을, 공산주의가 패배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단절은 전적으로 상징적이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으로부터 체제의 최종적인 붕괴까지는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순서의 일이 (2001년) 9월 11일 이후에 일어났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

"아마도 WTC(세계무역센터)의 붕괴가 낳은 궁극적인 희생자는 '미국 권역(American Sphere)'이라는 어떤 대타자(the big Other) 형상일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이어서 지젝이 막바로 떠올리는 것은 미국의 '파트너'였던 러시아(과거 소련)이다. 말하자면 '소비에트 권역(Soviet Sphere)'이 될까? 때는 1956년 2월 제20차 소련공산당 전당대회 때이다. 이때 스탈린 사후(1953) 당 제1서기였던 흐루시초프는 비밀연설(비공개연설)을 통해서 절대권력이었던 스탈린의 과오(!)를 비판한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이전에 잠깐 써둔 것을 옮겨온다. 먼저, 스탈린 체제의 과오에 대한 한 논문에서의 인용: "사실 스탈린의 독재와 테러가 국가와 공산당에 가져다 준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스탈린 시대, 특히 1930년대의 테러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공산당 당원과 국가 관리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예컨대, 흐루시초프의 연설문에 따르면, 17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139명 중 98, 70% (주로 1937-38년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으며(*니키타 미할코프의 <위선의 태양>(1994)은 이 시기에 대한 영화적 증언이다) 표결권과 심의권을 지닌 [17] 전당대회 대의원 1,966명 중 절반이 훨씬 넘는 1,108명이 반혁명 범죄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그 연설문이 <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책세상, 2006)로 번역돼 나왔다. 역자는 인용한 논문의 필자인 박상철 교수이다.)

 

 

 

 

그리고 아래 포스터는 <위선의 태양>. 영화 속 코토프 대령 역은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직접 연기했으며, 딸 나쟈(나디야)는 실제로 미할코프의 막내딸이다(<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도 카메오로 나온다).

"이런 상황은 하위 기관들이나 지방의 경우에도 비슷하였다. 모스크바 시() 당위원회와 모스크바 주() 당위원회에서 1935-37년에 근무했던 서기 38명 중 35, 시 또는 구 당위원회 서기 146명 중 136, 그리고 수많은 국가기관, 노동조합, 경제계, 과학 및 문화계의 지도적인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하여,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스탈린 시대에 처형되거나 감옥에서 죽은 이들의 숫자는 2,000-2,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체포된 사람은 4,000만 명 가량). 이런 식의 공포정치로 형성된 스탈린 체제’ 덕분에, 당시 소련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계속 유지하면서 가장 후진적인 문맹자들의 농업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난 도시 중심의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모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이러한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당의 기간요원들이 느꼈던 신분의 불안정이었고, 이미 상당한 규모로 팽창되었던 공산당, 행정부, 군부, 경제계 등의 관료계층은 신분 안전과 업무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를 원했.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스탈린 사후에 형성된 것이 안정적인/특권적인 거대 관료조직이다. 이것은 이후에 노멘클라투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스탈린 시대에서 포스트-스탈린 시대로의 이행 (라캉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의 이행에 대응한다(라캉의 관심은 현대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담론이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 이행한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지젝, <이라크>, 도서출판b, 171).

 

 

 

 

서구의 경우 그러한 이행이 표시되는 지점이 1968년 혁명이었다면, 소련의 경우에는 이보다 앞선 1956년 제20차 공산당 전당대회(2 14-25)에서의 흐루시초프의 反스탈린 비밀연설이었다. 요컨대, 서구의 68혁명에 짝이 되는 것은 러시아의 1956년 비밀연설이다.

 

 

지젝은 <이라크>에서 이 연설을 본래적인 정치적 행위의 사례로 들고 있기도 하다(물론 비민주적인 형식의 것이긴 하지만). 본래적인 정치적 행위는, 그것의 형식과 관련해서, 민주적인 것과 동시에 비민주적인 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 대중적 의지의 본래적 행위는 폭력적 혁명이나 진보적 군부 독재 등의 형식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스탈린의 범죄를 비난하는 흐루시초프 1956년의 연설은 진정한 정치적 행위였다…”(116-7쪽, 강조는 나의 것) 세번째 이미지가 러시아어본(2004)이다. 

 

 

<이라크>(2004)에서의 이러한 언급은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02)에서 잠깐 언급된 내용을 보다 확장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2년의 언급은 이 비밀연설이 불러일으킨 파문에 일단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제20차 소비에트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범죄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비밀연설을 하는 동안 12명 정도의 대표자들이 신경쇠약을 일으켜서 밖으로 실려나와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폴란드 공산당의 강경파 서기장 볼레슬라프 비에루트(1892-1956, 왼쪽 사진)는 며칠 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그리고 모범적인 스탈린주의 작가 알렉산드르 파제예프(1901-1956, 가운데 사진)는 며칠 뒤에 권총자살한다.)" 참고로, 파제예프의 소설작품으론 <궤멸>(예문, 1988)과 <젊은 근위대>(중앙일보사, 1990)가 번역돼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는 <해빙>(중앙일보사, 1990)의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그(1981-1967, 오른쪽 사진)의 회고가 인용돼 있는데, 그에 따르면 “2 25일 비공개회의에서 흐루시초프가 보고할 때, 몇몇 대의원들은 실신했다... 그 보고문을 읽으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이것을 복권된 사람이 친구들 사이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중앙위원회 제1 서기(=흐루시초프)가 전당대회에서 말했단 말인가. 1956 2 25일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대한 날이 되었다.”(해서 러시아의 1956년은 프랑스에서의 1968년에 값한다.)

 

 

 

 

 

 

 

 

 

  

물론 이 연설의 효과가 문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이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발표되는 것이 1962년이니까(우리의 경우 4.19와 최인훈의 <광장> 간의 관계가 여기에 대응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1987년 체제에 대응하는 문학을 갖고 있는가? 혹은 그에 대응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진 왼쪽은 연설중인 흐루시초프, 오른쪽은 스탈린과 함께 한 흐루시초프. 레닌과 스탈린에 이어서 소비에트의 권좌에 오르지만 소위 '막돼먹은' 언동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흐루시초프는결국엔 심복이었던 브레즈네프에게 퇴위당한다. 그는 소련의의 권력자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회고록과 증언 등이 우리말로 번역됐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이라크>에서 지젝을 조금 더 따라가본다: 이 대담한 조치의 기회주의적 동기들은 뻔한 것이지만(*이 연설을 계기로 흐루시초프는 당권을 장악한다), 여기엔 분명 단순한 계산 이상의 것이 있었으며, 전략적 추론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무모한 과잉이 있었다. 이 연설 이후에 사태는 다시는 전과 같지 않았으며, 지도자의 무오류성이라는 근본적 도그마는 침식되었고 따라서 연설에 대한 반응으로서 노멘클라투라 전체가 잠시 마비 상태에 빠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117) 그러니 흐루시초프가 1956년 봄(4월 30일자)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겠다(그는 1955년 2월에도 표지를 장식했었다).

 

 

여하튼 이러한 지젝의 지적/판단은 옳은 것이다. 다만, 그가 사용한 노멜클라투라란 말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스탈린의 최측근들조차도 그가 신임하는 동안에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에 (안정적인) 사회계급으로서의 노멘클라투라라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련에 노멘클라투라가 사회계급으로 부상하는 것은 흐루시초프 이후에 들어선 브레즈네프 시대에 와서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론 소프트 스탈린 시대처럼 보이지만, 브레즈네프의 시대는 주인-담론의 시대(=스탈린 시대)가 아니라 대학-담론, 혹은 관료-담론의 시대이다. 대학-담론(University Discourse)을 소련의 상황에 맞는 보다 적절한 용어로 바꾸자면, 관료-담론(Bureaucracy Discourse)이 될 것이기에(자가용 운전을 즐겼던 브레즈네프가 출근길에 곧잘 자신이 직접 관용차를 몰았다고 한다. 운전기사는 조수석에 태우고).

 

이 관료-담론 시대의 (유토피아적)최대치는 79년에 만들어진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 반영돼 있다('모스크바의 지하철'에서 영화의 이미지들은 소개한 바 있다). 소련의 유토피아는 그 영화 속에 있()(냉전시대였던 1970년대가 소련식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유금세월이자 화양연화였다. 그 시절의 종말이 다들 브레즈네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증언하는 아프칸 침공이다(덕분에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방측에 보이콧됐다. 그리고 이 전쟁의 와중에 브레즈네프는 사망한다). 그러니, 소련보다 한술 더 떠서 아프칸에 이어 이라크에 침공한 미국의 패권 또한 (징후적으로) 사양길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적어도 역사는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진리는 황제보다 강하다란 푸슈킨의 유언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역사는 패권보다 강하다.      

 

 

흐루시초프의 정치적 제스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1980년대 중반의 고르바초프이며, 그의 페레스트로이카이다(페레스트로이카의 문학적 상관물이 요즘 TV시리즈로 방영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아나톨리 리바코프(1911-1998, 왼쪽 사진)의 <아르바트의 아이들>(열린책들, 1988; 우아당, 1988)이다. 전체 3부작 가운데, 1부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아니, 2부도 번역돼 있다. 이 작품은 2004년에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재출간된 작품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가운데가 소설 3부작, 그리고 오른쪽이 DVD로도 출시돼 있는 미니시리즈). 한데, 국역본은 절판중인가? 

 

나중에 고르바초프 자신이 고백한 바이기도 하지만, 브레즈네프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그에게 소련의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거대)관료체제였다. 그는 (흐루시초프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인민대중과 상대하면서 관료주의를 타파해나가려고 하지만, 그러한 이상주의는 흐루시초프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와 함께 소련의 역사는 종말을 맞았고.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들어선 1990년대 옐친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는 과두지배를 뜻하는 올리가르흐(복수형은 올리가르히)이다.

 

현재 러시아를 지배하는 계급은 민영화(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막대한 이윤과 부를 챙긴, 과거 노멘클라투라의 새로운 버전으로서의 올리가르흐이다(같은 제목이 영화도 만들어졌었다. 옐친 시대의 최대 갑부였던 베레조프스키를 모델로 한). 옐친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현 푸틴 정부 최대의 정치적 과제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신흥 노멘클라투라, 혹은 '신종 러시아인'으로서의 올리가르흐를 개혁하는 것인바(그는 석유재벌이자 러시아 최대 갑부 호도로프스키를 감옥에 집어넣었고, 영국으로 도망간 베레조프스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 그가 지방 자치주 지사를 직접선거에 의한 선출에서 대통령 임명제로 바꾼 것도 나는 그러한 방향에서 이해한다(이건 물론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민주적 직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 지사들의 대부분은 지역 마피아였다).

 

요컨대, 푸틴은 일관되게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는데(한국사 패러다임으로 얘기하자면, 왕권(王權)이냐 신권(臣權)이냐), 문제는 그 궁극적인 지향점/회귀점이 스탈린이냐, 브레즈네프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임명제 대통령으로서 푸틴이 (주인-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의 경우에서처럼) 주인-대통령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물론 부정적인 전망만이 있는 건 아니다.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푸틴 정부에는 (원유 수출로 챙기고 있는) 막대한 자금력이 있으니까(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은 1,000억 달러가 넘는다). 과연 좋은 나라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이 대략 재작년에 쓴 글이다. 주절이주절이 늘어놓았는데, 우리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비밀 연설이 끼친 파문들, 곧 여기저기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권총으로 자살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것. 다시 지젝. "여기서의 요점은 그들이 '순수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소비에트 체제의 본성에 대한 어떠한 주관적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던 잔혹한 조종자들이었다. 무너진 것은 그들의 '객관적' 환상, 곧 '대타자(big Other)'의 형상이다. 이 대타자를 배경으로 해서만 그들은 권력에 대한 무자비한 충동(욕동)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옮겨놓은 대타자, 즉 그들을 대신한다고 믿어왔던 대타자, 그들의 믿는다고-가정된-주체로서의 대타자가 붕괴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리고 9. 11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2001년 9월 11일은 제20차 아메리칸 드림 전당대회의 날이 아니었을까?"(강조는 나의 것) 물론 여기서 '전당대회'가 뜻하는 바는 제20차 소비에트의 전당대회가 의미했던 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대타자'의 붕괴이고 파국이다. 그리고 실상 이 '아메리칸 드림'에 내가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며칠전부터 대서특필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  덕분이다. 분량상 이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06. 02. 08.  

 

P.S. 아래 성화는 16세기의 것인데, '천국으로 가는 러시아(인)의 계단(A Russian Ladder to Heaven)'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혹은 가깝고도 먼 나라,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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