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오늘자 한국일보에는 언제나처럼 '객원논설위원' 고종석의 '시인공화국 풍경들'이 실렸는데(이 연재가 47회에 이른 만큼 이젠 책으로 묶어도 좋을 만한 분량이 되었다), 오늘은 김현승(金顯承, 1913~1975) 시인 편으로 세번째 시집 <견고한 고독>(관동출판사, 1968)을 다루고 있다. 김현승 시인의 호는 '다형(茶兄)'이다. 생전에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하지만, 이 글은 커피를 마시면서 쓴다).

고종석의 글은 "김현승의 시세계는 예술과 철학의 경계에 걸터앉아 있다. 한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철학적이라 규정하거나 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예술적이라 판정하는 것이 반드시 상찬일 수는 없다. 이성의 규칙과 감각의 규칙은 자주 맞버티기 마련이어서, 그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얼치기 예술이나 반편이 철학을 낳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미의 끝머리와 치지(致知)의 첫머리를 이어 거룩한 매듭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사의 높다란 정신들이 늘 지향해온 이상이었다. 김현승은 그런 매듭 하나를 지었다."라는 문단으로 시작해서, "김현승이 목월보다 세 살 손위고 미당보다도 두 살 손위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시를 읽을 때, 독자들은 이 시인의, 특히 그 후기 작업의 첨예한 현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현승을 딱히 주지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는 우리 시단에 드문, 진정 지적인 시인이었다."란 문단으로 마무리된다.

 

 

 

 

내가 새삼 놀란 건 다형이 미당보다 두 살 위라는 사실. 깊이 따져본 적은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같은 연배나 후배 시인으로 간주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경건한 고독의 세계'는 언제나 '토속적 탐미주의의 세계'보다 나중에, 혹은 그런 세계를 거쳐서 도달하게 되는 어떤 경지가 아닐까란 선입견 때문인 듯하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그의 시 '가을의 기도'의 마지막 대목에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라고 시인이 '기도'할 때, '마른 나뭇가지'가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보다 나중에, 말하자면 '뜨거운 피'의 세계 이후에 나오는 것처럼. 

해서 등단도 다형이 1934년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서 데뷔하였으므로 1936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한 미당보다 2년 앞서지만, 어쩐지 더 '나중'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어떤 사건이 스토리상으론 먼저 나오지만, 플롯상으로 나중에 배치되어야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는 두 사람보다 연배가 좀 위이면서 미당과는 '생명파'로 같이 묶여서 불리던 청마 유치환(1908-1967)과 더불어 한국 현대시 정신사의 삼각형을 만든다면 그 한 꼭지점을 이룬다('바위'와 '구렁이'와 '까마귀').    

작년 11월에 시인의 서거 30주년을 맞이하여 <김현승 시전집>(민음사, 2005)이 출간되었지만, 이 고독한 '기독교 시인'은 시단과 평단의 주류적인 관심사 밖에 있었다(기억에 <김우창전집 3: 시인의 보석>의 표제가 김현승론에서 따온 것이다). 그것은 그가 미당이나 대여(김춘수)와는 달리 시의 '언어'보다는 시의 '이념'에 더 주안점을 두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기독교적인 성향의 시인들을 내켜하지 않은 터라 나도 지난 80년대 중반에 구할 수 있었던 김현승의 전집(시인사)을 제쳐두고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문학과비평사, 1989) 같은 시선집을 통해서 김현승과 대면했었다(아마도 군복무 시절이어쓴데, 그때 몇 자 적은 독후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는 곧 덮어두었다(시인의 '고독'에 동참하기에는 아직 젊었을 때니까).

이어서 언젠가 교육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였던 것 같은데, 김현승의 시세계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았고, 전남 광주 출신이었던 시인의 시비가 무등산에 세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동향의 후배 시인 황지우가 시비에 새겨진 시 '눈물'을 낭송하기도 했다(중학교 교과서엔가도 실려 있던 시. 박완서의 소설에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져......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아름답고 눈물겨운 시이지만, '시'로서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건 '연(鉛)' 같은 시인데, '납 연'자이므로 그냥 '납'이라고 불러도 좋겠다(실제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오래전에,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엮은 세계시선집 1권(한국현대시)으로 나온 <나는 내가 무겁다>(정우사, 1994)에 표제를 빌려준 시가 바로 '납'이었다. 그때 만난 이 시가 내게는 김현승의 대표작이다. 

나는 내가 항상 무겁다,
나같이 무거운 무게도 내게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무거워
나를 등에 지고 다닌다.
나는 나의 짐이다.

맑고 고요한 내 눈물을
밤이슬처럼 맺혀보아도,
눈물은 나를 떼어낸 조그만 납덩이가 되고 만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나의 시를 써보지만,
울리지 않는다. - 금과 은과 같이는

나를 만지는 네 손도 무거울 것이다.
나를 때리는 네 주먹도
시원치는 않을 것이다.
나의 음성
나의 눈빛

내 기침소리마저도
나를 무겁게 한다.

내 속에는 아마도
납덩이가 들어 있나부다,
나는 납을 삼켰나부다,
나는 내 영혼인 줄 알고 그만 납을
삼켜버렸나부다.

요즘은 중국산 꽃게, 대구, 복어, 병어 등에서 '친근하게' 발견되는 것이 납이지만, 시인에게 납은 '금'과 '은' 같이 되지 않는 시와 삶의 은유이다(나는 영혼에 대한 시들보다는 이 납에 대한 시들을 더 좋아한다). 하긴 예전보다 무거워진 나의 몸속에도 납덩어리가 몇 개쯤 들어앉아 있는지도 모를 일인바, "나는 내가 무거워/ 나를 등에 지고 다닌다./ 나는 나의 짐이다."라는 시인의 하소연이 남의 것일 수만은 없다. 사실 보다 일반론적으로 해서,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를 들어올릴 수 없는 만큼, "나같이 무거운 무게도 내게는 없을 것이다."라는 진술은 보편적 명제에 값한다. 그러니 시인의 고독은 딴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견고한 고독'에서 '절대 고독'에 이르는 김현승의 시적 여정에 새삼 눈길을 주어볼 만한 이유이다. 


06.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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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1-27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신문을 항상 하루 늦게 보게 됩니다) 고종석씨 글을 읽고 김현승 시인 나이에 깜짝 놀랐는데, 여기서 또 로쟈님의 글을 읽게 되니 반갑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로쟈 2006-01-2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생각을 하셨다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