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권혁웅의 평론집 <미래파>(문학과지성사, 2005)에서 요즘의 젊은 시인들에 대한 표제 평론 '미래파'를 훑어보다가 인용된 시들 중 장석원의 '金秋子에게 보내는 戀書'를 읽었다. 제목이 주는 인상 그대로 '활달한' 시인데, 최근 들어 그런 걸 드물 게 보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시집을 구입했다. 작년 11월에 나온 시집 <아나키스트>(문학과지성사, 2005)가 그것이다. 시는 3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나의 '구성감각'으로는 뒤에 네번째 단락이 더 붙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그래서 2% 아쉬운 감을 갖게 되지만), 읽어볼 만한 시이다. '방법적 인용'의 새로운 차원을 건드리고 있는데, 권혁웅의 해설은 이를 '시와 다성성'으로 정리하고 있다. 시를 전문 인용해본다(80년대를 말한다는 건 요즘 시로선 드문 경우가 아닌가 싶다).

1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 그대의 눈동자에 고이는 슬픔 때문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갈대, 갈대의 순정 때문에 그날이 다시 온다 해도, 나는 빛좋은 개살구.

그대를 보면 입안에 침이 고여, 그대를 만지면 몸이 부풀어, 아흔 아홉 풍선이 되어 서쪽으로 날아가버려, 꽃잎이 피고 또 졌기 때문에, 꽃잎 속에 다시 꽃잎이 모여들기 때문에

그날은 부처님이 오신 날이었어, 자비는 그들에게 구해야 돼, 살려줘, 날 구해줘, 날 묻지 마, 파헤쳐줘, 뒤에서 날 쑤셔줘

떨어지는 꽃잎, 삼천의 꽃잎들, 실려간 청춘, 푸른 청춘, 꽃다운 그대 얼굴 위에, 다시 꽃비 내리는 오월에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 왜 가버렸나,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내게 사랑을 실어보냈는가, 나는 토막난 몸통이고 끊어진 길인데

다만 후회하지 않는, 지워지지 않는, 길 위의 혈흔 더운 피 더러운 피, 나의 시신경에 와 닿는 오월의 햇빛, 희미한 전기 신호, 뭉개진 얼굴

그대는 물질적 증거이기 때문에, 짓이긴 꽃잎이기 때문에, 오월의 햇빛 속에서, 소리없이 지는 한 점 그림자, 물들자마자 한 겹 벗겨지는 껍질

그리고 나의 사랑스런 벌레들 이 풍진 세상을 만나 번성의 시대를 보냈으니, 변태해야 하리, 벌레들이여 또 다른 살덩어리여, 내 아파트로 와서 하룻밤 즐기시라

그대 또 다른 살덩어리여, 붉은 혀 붉은 젖가슴 붉은 엉덩이여, 어두운 거실 소파 위에 나의 게르니카, 그대 차가운 추상이여


2

이것이면 족하다. 단 하나의 이미지면 나는 완성된다. 환상이 나를 건강하게 하고 희망이 나를 발기시킨다. 나의 연인이여, 내 가슴에 볼 비비는 꽃잎이여, 머릿속의 총알이여

'가장'이라는 최상급 부사는, 그렇다. 그대에게만 해당된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그대만이 독점한다.


3.

우리는 자욱한 歲月에 걸친 試鍊과 苦惱의 時代를 넘어서서 이제야말로 成長과 成熟을 通해 自己 完成의 時代를 形成하여야 할 80年代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聖스러운 새 時代의 序場에서 大統領이란 莫重한 責務를 맡게 된 本人은 國家의 成長과 成熟이 本人에게 賦與된 歷史的 課題임을 痛感하고 있습니다.('제5공화국 대통령 취임연설문'에서)

 

 

06. 01. 11.

 

 

 

 

 

 

 

 

 

 

P.S. 작고한 평론가 이성욱의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생각의나무, 2004)에는 '마음의 요람이 되어버린 김추자'란 절이 포함돼 있다. 김훈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2004)에도 '양희은, 김추자, 심수봉'이란 글꼭지가 있다(이 책은 산 것 같은데 그 글은 아직 못 읽었다). 그리고 이선영의 시집 <일찍 늙으며 꽃꿈>(창비, 2003)에는 '이미자와 김추자'란 시가 들어 있다(이 또한 아직 못 읽었다). 이영미의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황금가지, 2002)는 우리 대중음악사인데, '신중현과 김추자에 대한 기억들'이란 꼭지에서 김추자가 다루어지고 있다.

 

 

 

나는 김추자(1951-)에 대해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어렸을 적에 접했던 대중가요는 주로 남진, 나훈아, 아니면 패티김과 이미자였다(아마도 어머니의 취향이셨던 듯하다). 물론 이 '전설적인 가수(혹은 '간첩')의 노래를 들어는 보았겠지만, 그다지 조숙하지 않았던 '나의 취향'은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함께 비로소 시작됐기에.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점령했던 건 마이클 잭슨이었고 컬처클럽이나 듀란듀란 같은 '팝'그룹들이었다. 그 음악취향이라는 것도 '조지 마이클'과 '마돈나'를 거쳐 'R.E.M.' 정도에서 저문 듯하다. 이후로는 대중음반을 산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영화음악이나 편곡된 국악 정도를 가끔 듣는다.

 

 

 

 

 

 

 

그런 가운데 없는 인연을 만들어낸 건 조관우의 리메이크 '님은 먼 곳에'이다. 한 연구소에서 간사로 근무할 때에는 벅스뮤직에서 온갖 버전의 '님은 먼곳에'를 나의 앨범으로 만들어서 종일 듣곤 했다('빗속의 여인'도 그런 식으로 듣곤 했다). '꽃잎'은 그 다음이었다. 몇달 전인가 우리의 대중문화사를 다룬 한 TV프로그램에서 김추자 특집이 다루어지는 걸 보았고 김추자에 대한 새삼스런 '흥미'를 느꼈지만 내가 터치할 수 있는 쪽은 아니어서 흥미로운 책들이 씌어지기를 고대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띈 '김추자에게 보내는 연서'가 기대를 얼마간 충족시켜준 것. 

 

시인은 김추자의 '꽃잎'을 주조음으로 깔면서 마치 디스크 자키처럼 여러 장르의 여러 노래들을 뒤섞고 있는데, 좀 아쉽게 생각하는 건 '나와 김추자'의 구체적 세목이 빠진 것. 해서 시는 재미있지만 감동은 없다. 물론 3번째 단락에 전두환의 연설을 삽입해 넣음으로써 시인이 의도한 건 돌발적인 충돌의 몽타주와 그로 인한 충격효과인 듯하지만, 시적 화자의 포지션은 (황지우식의) 방법적 인용과 (유하식의) 개인사적 고백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돼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뒷심'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참고로 신중현 작사/작곡의 '꽃잎' 가사를 옮겨둔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지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 버렸네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는 왜 가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지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 버렸네

꽃잎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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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1-1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추자 이전에 가수없고 김추자 이후에 가수없다.
작고한 평론가 이성욱씨의 말입니다.
저요? 제게있어 여가수 NO.1은 단연코 김추자입니다.
님과 공유하는 연서가 있다니, 가슴이 마구 뛰어요^^
제 페이퍼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580089 보시삼..흐흐

로쟈 2006-01-1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귀가길에 올린 글이어서 마무리를 못 지었었는데, 마저 보충했습니다. 김추자를 좋아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