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학교 없는 사회>의 저자이자 문명비판가 이반 일리치 전집 1차분이 출간돼 머리에 올린다(전9권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전집은 2017년 완간 예정이라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이반 일리히 전집'이 나오다가 중단되었고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였다. 이번에 나온 건 <그림자 노동>과 <전문가들의 사회>(사월의책, 2015) 두 권이다. 지난해에도 일리치의 책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느린걸음, 2014)이 나왔었으므로 다시금 꾸준히 주목받는 저자로 분류할 수 있다.
두 권 가운데 <전문가들의 사회>는 일리치의 저서라기보다는 공저다. 어떤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 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육아, 심리, 교육, 인간관계, 심지어는 삶의 지향까지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동의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전문가 사회에 대한 일리치의 비판이 얼마나 유효한지 살펴보는 것은 그의 사상이 지닌 현재성을 음미해보는 일이기도 하겠다.
러시아 문학자 석영중 교수도 새 책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우다'란 부제의 <자유>(예담, 2015)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책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에 이어지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자유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본능으로서의 자유다. 다른 한편으로는 본능의 극복과 최고의 도덕적 상태를 향한 지향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본능으로서의 자유와 가치로서의 자유를 삶과 소설에서 끈질기게 탐구했다. 유배지에서 그가 목격한 죄수들의 행동이 본능으로서의 자유 획득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그 자신의 내적인 성숙은 가치로서의 자유를 위한 일종의 정신 수련이었다.
나 또한 강의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자주 다루곤 하는데, 유익하게 읽어볼 참이다.
'피노키오 철학 시리즈'의 저자 양운덕 교수는 신작으로 <사랑의 인문학>(삼인, 2015)을 펴냈다. '사랑의 철학, 사랑의 문학'이 부제다.
셰익스피어에서 쿤데라까지의 문학과, 소크라테스에서 바디우까지의 철학을 아우르며 사랑에 관해 탐색하는 사랑학개론. 저자는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오가며 사랑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전개한다. 사랑의 철학은 진리를 그리워하기에 '이' 사랑과 '저' 사랑을 넘어서는 '하나'의 사랑, 불변적인 사랑에 관심을 갖는다. 반면 사랑의 문학은 사랑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전적으로 변형된 개인들에 주목하고, 저마다 다른 사랑의 경험들 그 특이성을 부각시킨다.
사랑도 나 역시 강의에서 자주 다루는, 다룰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흥미를 끈다. 셰익스피어와 쿤데라, 그리고 플라톤은 강의에서 읽은 적이 있기에 유익한 비교가 되겠다.
흠, 이제 다음 주면 12월이군. 올해 내지 못한 책들이 눈에 밟히는 달이 될 텐데, 내년에는 심기일전해서 나 자신도 '이주의 저자'에서 다룰 일이 자주 생겼으면 싶다...
15.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