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리하고 옛날 파일들을 뒤적거리다가 '창고'에나 들어갈 만한 걸 발견했다. 8년전 조교 시절에 쓴 것인데, 옮겨놓는 것은 (연말을 맞이하여 쓴) 1. '30세의 겨울, 혹은 97년을 보내며'와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는) 2. '98학번, 혹은 이제 막 꽃피는 나무들에게'이다(98학번들? 이젠 대부분 졸업했다!). 격세지감(혹은 만사지탄?)이 좀 있긴 하지만, '서른의 추억'을 한번 더 되새겨본다...   

 

 

 

1.

대학 생활에서 12월은 한가한 계절이 아니다. 분주하다. 그런데 그 분주함은 6월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12월의 분주함은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분주함이 아니라 떠나간 것들을 다잡아서 추스리기 위한 분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떠나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 리는 만무하지만, 그런 분주함의 기억이 사소한 위안이 될 수는 있으리라. 혹은 이런저런 궁색한 자기변명을 조금이라도 거들어 줄 수는 있으리라. 그런 분주함의 시간이 이제 두어 주 남았다...

는 식으로 나는 쓰지 않겠다. 이젠 그럴 나이가 아닌 듯싶다. 나는 나날이 분주하고 나날이 한가하다. 12월이라고 예외가 아니며, 97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려고 했던 것, 물론 다 못했다. 반도 못했다. 하지만 후회나 반성은 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98년엔 나아질까? 나도 또 익숙한 희망에 마음이 들떠본다. 대충 그런 식이다. 다만, 그런 식에 간혹 감동할 때도 있다는 것만을 말해 두기로 하자. 우리의 생활은 보기 보다 따분한 만큼, 한편으론 감동적이니까.

  

 

 

 

무엇이 감동적인가? “인간들아,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항상 뒤를 쫓아다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향기를 맡아보아라.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시구를 인용하며 한 영화감독은 이런 말은 한다: “나는 영화 속에서 순간순간의 존엄성을 다루고자 했다.” 나는 이런 문장들에 감동을 받으며 밑줄을 그어둔다. 또 이런 것: “즉 인간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는 것이며, 이성이란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날 한 일간지의 외신란에는 프랑스에서도 스웨덴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박약 여성들에게 (불법적으로?) 불임수술을 해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약 1만 5천명 가량이 그런 수술을 당했다고, 그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나는 한편으로 생각한다. “정말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과연 선진국은 다르구나!” 또 무엇이 감동적인가?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갔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視線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輓章처럼 나부낀다 (박정대, '물질적 황홀 6'에서)

이런 시들이 감동적이다. 나는 자기 전에 몇 번이나 읊조리다가 잠이 든다. 그렇다. 내겐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하는 날들이 그 옛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하던 날들보다 몇 배는 더 감동적이다, 기타 등등. 어쨌든 내가 이 자리에서 나열할 수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내가 97년에 만난 것들,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 언젠가는 모두 희미한 추억으로만 남을 테지만, 나는 그것들을 사랑하였다...

 

 

 

 

아, 빼먹을 수 없는 한 여자가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아침 첫차 기찻간에서 도시락을 까먹고는 졸면서 삶은 계란을 먹으며 캔맨주를 마시던 여자. 턱에 살이 조금 붙은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 그리고 아마도 술집 여자. 말 한 마디 붙여보지 못했지만, 한동안 나를 감동시켰던 그 여자를 나는 또한 기억하리라. 97년에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헤어진 사람들 틈에서.

30세의 겨울을 맞으며 또 보내며, 어쨌거나 나는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잘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밖에 다른 일들은 비교적 사소해 보인다. 다음 주면 벌써 새 대통령이 결정되어 있을 것이고, 환율은 더 올라가 있겠지. 그리고는 온나라가 한동안은 떠들썩해질 것이다. 또 새해가 밝겠지. 올겨울엔 눈이 많이 내릴 거라고도 한다. 나는 어디 갈 일이 없을 것이다(아니다, 2월엔 이사를 가야 한다). 곧 98학번들이 재잘거리겠지. 삶이 다시금 봄눈처럼 푸석푸석 부드러워질 것이다. 우리들 주변에선 크고 작은 아이들이 계속 자라날 것이고, 햇살은 보기 보다 따뜻해질 것이다. 됐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에 나는 다시금 황홀해진다...

는 식으로 나는 쓰고 말았다. 후배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바가 있겠지만, 내 딴에는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쓴 것이다. 게다가 할 일은 얼마나 많은가! 조교 생활에서 12월은 결코 한가한 계절이 아니다. 남들처럼 리포트도 내야 되고, 성적 처리, 연말 정산도 해야 된다. 정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도 싶지만, 그나마 돈도 없다. 방은 춥고, 나이 서른에 애인도 없다. 그저 하는 일없이 분주하기만 하다. 한심한 일이다. 그런 분주함의 시간이 아직도 두어 주나 남았다니!...

 

 

 

2.

내게 특별히 무슨 할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꽃핀다는데, 꽃피겠다는데, 그걸 두고 이렇다저렇다,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수야 없는 일이 아닌가. 나이가 되어, 또 마침 볕이 좋아(요즘은 머리도 좋아야 한다고?) 꽃피는 시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인 것이어서 우리네 두 팔을 다 벌려봐도 사방팔방이 다 빈틈이요 구멍이다. 그런 일을 두고 중과부적(혹은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아무려면.

 


 

 

 

  

 

 

일월 송학에 이월 매조에, 칠월은 횡재수, 오월은 술 아니면 떡이라

팔월 공산에 어느 님 만나 이 한시절 삼월에 산보하랴마는

淑아, 물고기같이 동그란 눈뜨고 일하러 같던 누이가 눈맞아 돌아오지 않던 그 길

- 인생은 그 날이 꽃과 같아 (함성호, '고향집, 폐허'에서)


하여간에 다시 생각해보면, 내게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건만, 새삼스럽게도 분명 이곳은 이제 어제 놀던 꽃그늘이 아니다. 정말 꽃향기에 취해 세월아 네월아 꿈결에 묻혀가던 시간들이었는데(다 지나간 일들인데, ‘좋게’ 말하자. 어느 시인의 말을 빌면, 지나간 일은 일도 아니라니까), 어느덧 나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말을 해도 농담이 아닌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 내가 굳이 이런 자리에서 몇 마디 거들어야 한다면, 그건 무슨 책임감에서라기보다는 억울함 때문이라는 걸 먼저 분명히 밝혀두어야겠다.

 

그렇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스물 한두 살에 ‘잘가라, 내 청춘…’을 입에 달고 다니긴 했지만, 그런 말이 이젠 겉멋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이젠 내가 그런 소리를 하면, 우리 97학번, 98학번들은 진담으로 알 것이 아닌가!). 울며 겨자먹기로 요즘은 ‘나이 서른에 아직…’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래서 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내 스무 살, 푸른 영혼’이라고 떠벌릴 수 있는 그대들이. 아직 여드름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에 나보다 밥도 많이 먹는 그대들이. 내친 김에 연애도 많이 할 그대들이(아이도 많이 낳을?). 비록 경제는 거지꼴이지만, 자유를 숨쉴 수 있는 시대에 청춘을 맞이한 그대들이.

 

하여간에 이유를 붙이자면 한정이 없겠지만, 결론은 부럽다는 것이고, 그대들이 잘났다는 것이다(여기 ‘잘났다’에서 ‘잘’은 타이밍을 말한다. 굳이 덧붙이지면, 이 타이밍은 재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자, 이 정도면 나는 제법 예의를 차린 것이 된다(이제 막 꽃피는 나무들을 기죽이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다). 그래, 내친 김에, 부디 잘 살아다오, 성공을 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를 보게 하라, 등등등. 아직 자신의 정서적 발육이 미진하다고, 그래서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는 98학번은 여기까지만 읽어주기 바란다. 안녕!


내게 특별히 무슨 할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개인적인 얘기지만, 언제였던가 87년, 나는 20세(만19세)의 대학 신입생이었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도 없었다. 이른바 5공화국 말기였고, 세상은 개판이었다(무서운 일이지만, 그런 세상도 죽치고 있다보면 정이 든다). 야외수업을 하던 어느 볕좋은 봄날 나는 한 친구에게 “너는 왜 죽지 않니?”라고 쓴 쪽지를 건넸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선 세상이 빨리 끝장나기만을 빌었다. 요컨대 나는 얼치기였고 바보였고 멍텅구리였으며 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꽃이 피기도 전에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겉늙어버렸다.

 

성숙한 98학번들에게만 하는 얘기지만, 사실 근본적인 사정은 이제나그제나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여러분도 얼치기고 바보고 멍텅구리다(‘성숙’이란 건 그런 사정을 요리조리 잘 견뎌낸다는 뜻이다). 한두 가지 정도 개보다 나을까, 그것도 많이 봐줘서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 그런 그대들이 부럽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다. 그저 겉멋이거나 한때의 기분일 뿐인 것(이런 말이 있다: “내가 너라면 자살한다!”). 사실대로 말하자. 나는 그대들이 딱하고 불쌍하다(그런 생각만 하면 잠도 오지 않는다). 그대들은 앞으로 꼬박 10년을 더 고생하며 늙어야 비로소 30대가 되는 것. 그때까지 그대들의 스무 살, 푸르죽죽한 영혼은 되지도 않는 고민거리들로 바람잘 날이 없을 것이다(그런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조금 걱정이 되지 않는가? 내가 몇 마디 거들려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나이가 좀 어리기 때문에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아침 저녁으로 만지는 책상, 좀전에 같이 앉아 있었던 별로 말이 없는 고향 친구, 며칠 전에 내 손가락을 물어뜯은 하숙집 개의 이빨의 촉감, 이런 것들 말이다. 늙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집어 넣어준 돌자갈 같은 관념들을 바닷물 속에 쏟아버린 후로는 늘 멍청해서 거리를 걸어다닌다.(이제하) 


나는 개에게 물려본 적이 없지만, 이 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비록 요즘은 믿는 구석이 많아졌지만(늙어가는 징조이다). 하여간에 중요한 것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것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만들어나가기 바란다. 그래서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만들어나가기 바란다. 우리가 진짜 성숙한다는 것, 그래서 개보다 나은 인간이 된다는 것(내가 보기엔 이것이 인문학의 목표인데)은 오직 그런 ‘다른 삶’ 속에서만 가능하다. 생은 다른 곳에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나는 그렇게 새기고 있다. 언젠가 그런 다른 삶 속에서 그대들은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다른, ‘위대함’에 대한 전혀 다른 비전을 가진, 추운, 추운 나라의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어떻게 오는가?

 

 

 

 

 

 

이제는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모두 내버린 자의 무서움이 있었다(主여, 亡者에게 평안함을 주소서). 그는 하해(河海)와 같은 억겁의 술을 마시며 그 괴로운 세월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겨울의 새벽 4시에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리면 소년인 나는 내 아버지의 쓰라린 위장을 위하여 남비를 들고 시장거리로 가서 가슴에 안고 돌아오곤 했다. 어느 겨울 새벽에 나는 해장국집 문지방에 낀 얼음 위에 자빠져서 끓는 국물을 뒤집어쓰고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나는 선지와 콩나물을 바지에 뒤집어쓰고, 빈 남비를 들고 춥고 어두운 새벽거리에서 울었다. 나는 이 세월들과 내 아버지의 생애를 뛰어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이를 갈면서 울었다(主여, 亡者를 당신의 품 안에).(김훈)


나는 해장국 심부름을 한 적은 없지만, 허벅지에 화상을 입은 적은 있고 또 당연히 이를 갈면서 울어본 적도 있다(한번쯤 이를 갈며 울어보지 않은 98학번이 혹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 것. 기회는 두고두고 온다!). 그래서 이 또다른 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아버지의 생애를, 선배의 생애를 뛰어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없이 어물쩍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 98학번에게는 달리 할말이 없다(부디 잘 살아다오, 성공을 빈다). 그럼 이제 몇이나 남았는가? 이쯤에서 남아있는 그대들에게 나는 선배로서의 사랑과 기대를 표한다. 물론 이 사랑과 기대는 이제는 운명이 되어버린 한 ‘선배’로서의 책임감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책임감을 고마움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그대들의 몫이다.

 

쑥쓰러운 얘기는 그만 줄이도록 하자. 입에 발린 소리지만, 거듭 이 새(배움)터에 오게 된 것을 축하하며 환영한다. 곧 같이 늙어갈 날이 있을 것이다...

 

05. 12. 08.

 

P.S. 작년 모스크바 체류시절 룸메이트가 98학번이었다. 우리는 같이 생활하면서 1년간 이미 같이 늙어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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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12-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그 시절의 로쟈님이 더 맘에 들어요. 으하핫.

로쟈 2005-12-0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늙어가는 게 더 맘에 듭니다. 어디 쑤시고 고장나는 거 빼고는...

비로그인 2005-12-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진창 마시고 하룻밤 샌 다음 초췌한 얼굴로 올라와 과방에 앉았을 때 만난 선배가 해주는 지난 청춘의 이야기 같아요. 쯥. 후후후...

2005-12-09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2-0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세월'에 대한 한담에 감회들이 있으신가 보군요.^^ 금요일 마저 죽이시고, 즐거운 주말들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