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전에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연휴를 염두에 두고 고른 타이틀북은 베룬트 브루너의 <눕기의 기술>(현암사, 2015)이다.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이란 부제도 그럴 듯하다. 침대맡 필수 아이템. "저자 베른트 브루너는 눕기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찰한다. 인간에게 수평 자세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역사, 철학, 문학, 과학, 인문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지적인 탐색을 거듭한다. 어떤 방향으로 누워야 할지, 고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잠자리를 마련했는지, 어떻게 누워야 잘 누웠다고 소문날지... 인류 탄생 이후부터 이어진 다양한 눕기에 대한 유쾌한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그간에 걷기나 달리기에 관한 책은 여러 종이 나왔었지만 눕기에 관한 책은 처음이지 싶다. 아무튼 인생의 많은 시간을 누워지내야 하는 조건을 생각해보면 매우 요긴한 가이드북이다.
두번째 책은 이미 확실한 지지 독자층을 거느린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그책, 2015)이다. <보통의 존재>(달, 2009) 이후 6년만에 나온 두번째 산문집으로 누워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세번째도 누워서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문학동네, 2015). 지난해 <판사유감>(21세기북스, 2014)을 펴냈던 저자가 이번에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는 게 골자.
네번째는 누웠던 몸을 좀 일으켜서 읽어야 하는 <확률가족>(마티, 2015)이다. '아파트 키드의 가족 이야기'가 부제로 디자인연구자이자 <아파트 게임>의 저자 박해천이 기획했다. 다양한 인포그래픽을 활용하고 있어서 책으로서도 새로운 시도(그래서 누워서 읽기엔 불편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만든 4인 가족은 아파트의 표준 모델과 지금의 20~30대를 낳았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를 둔 에코 세대에 속하며, 유년 시절에 어떤 식으로든 아파트를 체험한 아파트키드들이다. 이들은 학업, 직장, 결혼 등의 이유로 독립하면서, 혹은 같은 이유로 부모와 동거하면서 주거 문제에 수시로 부딪힌다. 이 문제의 시원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족 이야기로 들어온 한국의 정치경제사가 빚어낸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엮은이는 이 동시대성을 각각 글과 인포그래픽으로 정리, 분석했다.
다섯번째는 딸아이에게 줄 책으로 재클린 섀넌의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어!>(에쎄, 2015)를 골랐다. 부제는 무려 '우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50가지 이유'다. '여섯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의 소녀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데, "여자의 신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여자가 얼마나 강인한지, 여자들의 특성들에 어떤 힘이 있는지 그리고 여자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왔는지를 50개 항목으로 구성하여, 성장기의 소녀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했다." 단, 미국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 책이라는 점. 한국의 소녀들에게는 자칫 역효과를 낼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아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