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회에 걸쳐서 경향신문에 '이현우의 내 인생의 책'이 실렸다.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연재를 진행하느라 기존에 썼던 글들을 기자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는 식으로 수습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내 인생의 책'이라고 다섯 권을 꼽은 바 있어서 중복되지 않도록 했는데, 사실 내게 '내 인생의 책'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는 '이주의 책'이다. 다만 내게 삶의 결정적 이미지를 만들어준 몇 권의 책을 골랐다. 내가 처음 읽은 판본은 대개 절판됐기에 대체본들의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1. 릴케, 두이노의 비가 - 진리도 복음도 때론 가혹한 것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비가1’의 첫 시구다. 이 같은 시구를 당신은 접해본 적이 있으신지? 인생에 대해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건 릴케의 이 시 구절을 읽은 덕분이다.

시의 기본축은 강한 천사와 연약한 인간의 대비다. 인간은 짐승도 아니지만, 천사도 못 된다. 유한한 존재이자, 필멸적 존재인 인간, 그래서 ‘울부짖는’ 존재로서 인간의 어중간함이 릴케 시의 숙고 대상이다. 그런 어중간한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지상의 존재인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더라도 천사들은, 혹은 신은 눈도 끔쩍하지 않으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건 계와 질서가 다르며, 존재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사들의 무관심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은 유치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으로 더 무서워할 만한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이라고 릴케는 말한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불쌍히 여겨 설혹 한 천사가 우리를 껴안아준다 해도 문제는 우리가 그걸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질 거라는 것.

 

진리나 복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리를 견딜 수 있을까? 살아남는 일은 왜 많은 거짓말을 필요로 할까? 그건 진리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어떤가? 만약 당신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견뎌낼 수 있는가? 그의 기적은 어떤가? 혹은 재림은? 종말은?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 허무와 감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가끔은 골방에서 이 시구를 되뇌어보시라. 다소간 위로가 되고, 구제가 될는지 모른다. 물론 구원은 턱도 없다. 우리는 연약하기만 한 게 아니라 천박하기도 하므로.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는 공연한 관심과 사랑, 진리와 복음을 구걸하지 말고, 그저 대충 울부짖는 데 만족할 일이다.

 

 

2.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쓰라린 유년에 피운 희망의 꽃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가계(家系)를.”(‘위험한 가계 1969’ 중)

1969년 하면 내가 떠올리는 건 한 시인의 불행한 가족사다. 시인 기형도의 많은 시가 그의 유년 시절과 불행한 가족사에 바쳐져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위험한 가계 1969’는 그 사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인데, 시작은 아버지의 병환이다. 인용한 대목은 시인이 어린 날에 깨달은 삶의 방법론을 집약하고 있으며 이처럼 구체적인 가족사는 ‘그토록 쓰라린 삶’이라는 보편성을 상기시킨다.

유년의 화자는 그래도 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환한 가계’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아주 큰 꽃’과 ‘환한 가계’! ‘작은 씨앗들’이 ‘큰 꽃’을 피워내는 게 생명의 미스터리이고, 삶의 미스터리다. 유년의 시인 또한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라고 대견스레 물을 때 그러한 미스터리를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과 의지를 동시에 피력한 것이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미스터리는 그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生)의 벽지(僻地)”였다. 그는 다만, “저 고단한 등피(燈皮)를 다 닦아내는 박명(薄明)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잠시 유예하던 ‘마지막 한 잎’이었기에. 1969년의 겨울 이후 시인은 20년을 더 살았을 뿐이다. 그는 어머니께 ‘아주 큰 꽃’을 보여드렸을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3.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자유와 사랑이 ‘구원’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최후의 걸작이다. 강의를 하다 보면 부득불 이런 걸작들을 ‘상대’해야 하는 때가 닥친다. 스릴을 느끼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잔인한 천재’를 내려다보면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작 작가 자신은 이 소설을 두고 주인공 3형제 중 막내 알료샤의 전기를 구성하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정수이자 서구 소설사에서 기념비적인 위치에 놓인 작품이 주인공의 어린 시절 ‘한순간’, 혹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다룬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친부 살해라는 모티프가 중심인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전개에 재미와 깊이를 부여하는 것은 카라마조프가의 세 아들이 대표하는 인간형이다. 큰아들 드미트리는 정념의 인간, 미학적 인간이다. 그는 ‘마돈나의 이상’(성스러움)을 동경하면서도 끊임없이 ‘소돔의 이상’(추악함)에 이끌린다. 미는 마돈나에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소돔 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다. 둘째 이반은 이성적인 인간으로 서구의 합리주의와 무신론을 대변한다. 사실 이반이 부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세상,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다. 막내 알료샤는 신앙의 인간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미래 러시아를 상징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자유와 양면적인 본성을 억압하는 대가로 경제적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당대의 어떤 이념에도 반대했다. 그는 인간 영혼의 자유와 사랑, 그리고 부활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하는 신앙만이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진정한 힘이라고 믿었다.

 

 

4.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 삶을 아름답게 할 시간의 재창조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한 여성 노동자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고 보낸 편지의 일부다. 영화라는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읽힌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내게도 그런 것이다.

<봉인된 시간>은 부분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노트이면서 영화와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보여주는 유례없는 책이다. 사실 대개의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미학을 글로써 말하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작업환경은 순조롭지 못했다. 그는 내내 당국과 마찰을 빚어야 했고, 실제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고통스럽고 긴 휴식’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그는 영화 창작과정에서 추구하는 목적을 숙고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영화적 순간들을 창조·구성하는 데 있어서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그 윤리학의 미적 실천을 위해서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그는 이런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사형수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리 중의 한 명이 무리에서 벗어나 구멍투성이의 양말을 신은 채 한참을 물구덩이 속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일분이 지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될 자기 외투와 장화를 내려놓을 마른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서 이보다 더 격렬한 순간은 많지 않다.

 

 

5. 에밀 시오랑, 절망의 맨 끝에서 -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

 

“나는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눈물들은 생각들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눈물과 마찬가지로 쓰라리지 않을까?”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둔 그는 1937년 파리로 건너가서 이후 죽을 때까지 인근의 창녀들이 야밤에도 소란을 피우는 싸구려 호텔 다락방에 은둔해 살았다. 그가 철학을 그만둔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칸트와 피히테, 쇼펜하우어, 베르그송을 읽으면서 철학을 제외하곤 시에도 무관심했던 그는 남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어떤 주제를 고를까 고심했다. 진부하면서도 뭔가 독특한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지도교수에게 달려갔다. “‘눈물의 일반이론’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참고문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겠나.” 이에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논문의 근거가 되니까요.” 시오랑은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고, 그는 그 순간 철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다. 그는 철학자 대신에 절망의 에세이스트로 남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근대철학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면, 시오랑은 바로 그 코기토의 불철저성이 미덥잖다. 그에 따르면 “철학의 잘못은 너무 참을 만하다는 것이다”. 사유를 철저하게 극단에까지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존재’를 통과하여 의당 그 ‘폭발’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참을 수 없는 철학의 참을 만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우리는 ‘폭발’한다. 곧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가 시오랑의 새로운 명제다. 그의 아포리즘들은 어떤 사유의 응집이 아니라 그러한 폭발의 잔재로 읽혀야 한다. 그의 아포리즘들이 지시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종말로서의 폭발이다.

 

15.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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