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41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강연 행사를 갖기도 한 조르조 아감벤의 <행간>(자음과모음, 2015)을 다루었다. 나중에 다시 공지하겠지만 8월 4주부터는 3주간 매주 월요일에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아감벤의 대표작 <호모 사케르>(새물결, 20108)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감벤 독서에 입문하고자 하는 분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시사IN(15. 07. 25) 비평의 자격 조건

 

<행간>은 <호모 사케르> 연작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의 초기 저작이다. 30대 중반에 발표한 이 비평서에서 아감벤은 철학자라기보다는 인문학자 혹은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서양 고전과 중세 문헌에 정통한 인문학자, 그리고 비평 본연의 의미로서 ‘앎의 한계에 대한 연구’를 과제로 삼는 비평가가 <행간>에서 만나게 되는 아감벤이다. <호모 사케르>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아감벤 이전의 아감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제목이 가리키는 건 이탈리아어 ‘스탄체’이다. 시의 연(聯)을 가리키는 ‘스탄차’에서 온 단어인데, 13세기 시인들에게 이 ‘스탄차’는 시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시의 거주지이자 피난처’였다. 그들이 그 공간에 간직하고자 한 시의 유일한 대상은 ‘사랑의 기쁨’이었다. “어떤 종류의 기쁨을 위해 시의 행간이 모든 예술의 요람이 되는가?" 아감벤이 던지는 물음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접근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이 문제의 접근하는 길이 서구문화 태동기에 일어난 어떤 분리현상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무엇의 분리였나. 바로 시와 철학의 분리다.


시와 철학의 분리라는 말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건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유명한 ‘시인추방론’인데, 아감벤 역시 그러하다. 플라톤은 시적인 언어와 생각하는 언어 사이에서 일어난 이 분리현상을 ‘오래된 불화’ 혹은 ‘오래된 적대관계’로 규정했다. 이 불화는 어떤 사태를 빚어내는가. 바로 시와 철학의 불완전성이다. 시는 대상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유하는 반면에 철학은 대상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파악한다. 곧 인식과 소유의 분리이며, 이것은 앎의 대상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아감벤에 따르면 “서구에서의 앎은 두 개의 양극화된 차원, ‘영감과 희열’의 차원과 ‘이성과 인식’의 차원 속에 극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모든 시의 궁극적인 목표가 앎이라면 철학 또한 항상 기쁨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래서 떠오르는 과제는 이 분리현상을 극복하고 분열된 언어의 통일성을 되찾는 것이다. 바로 비평의 과제다. 비평은 그렇게 분리된 언어가 통일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비평은 시처럼 표현하지 않고 철학만큼 아는 것도 없지만 적어도 “표현이 무엇인지”는 안다. 시와 철학을 중개할 수 있는 비평의 자격 조건이다.

 

 

아감벤이 13세기 시인들에게서, 그리고 무엇보다 단테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에로스와 시어의 독보적인 공모관계다. ‘가슴의 영(靈)’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시의 언어는 ‘영적 움직임’으로서의 사랑과 곧장 조합되고 이는 다시 사랑의 대상인 ‘환상적 영’과 결합한다. 그렇게 해서 시의 언어는 욕망과 욕망의 대상 사이에 놓여 있는 균열이 메워지는 공간, ‘영웅적인 사랑’의 병, 우울증적 망상에 빠지도록 하는 질병이 “스스로의 치유와 명예회복을 노래하는 공간”이 된다. 아감벤은 이것이 중세의 연애시가 유럽문화에 남겨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에로스와 시적 언어의 연관성, 다시 말해 시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욕망과 유령과 시의 조합이다


중세의 시와 인식론에 대한 보기 드문 박학과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아감벤은 서양문화사에서 욕망과 그 대상, 그리고 유령(환영)이란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인문적 사유의 힘과 비평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군말 없이 ‘행간’을 통해서 보여준다. 아감벤이 인용한 시인의 말대로라면,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붙드는 사람만이 가장 원대한 현실을 창조해낼 것이다.” 실제로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다룬 그의 저작이 <행간>이라면, ‘가장 원대한 현실’을 다룬 책이 바로 <호모 사케르> 연작이 아닐까. 미학적 비평서로서 <행간>과 정치철학서로서 <호모 사케르> 사이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지만 <행간>에는 미래의 아감벤의 ‘잠재성’이 숨어 있다.

 

15.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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