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세 명의 철학자로만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간된 세 권의 책 때문인데, 먼저 하이데거부터. 아주 두툼한 분량의 <철학에의 기여>(새물결, 2015)가 번역돼 나왔다. 1936-1938년에 사적으로 작성해서 숨겨두었던 원고로 사후에야 출간됐다고. 이름은 알고 있던 책이지만 어떤 내력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다.  

 

3년 동안 산 속에 칩거하면서 새로이 구상한 하이데거 철학의 모든 것, 이후 50년 동안 숨겨져 있다 탄생 100주년에야 비로소 공개된 하이데거의 운명적 대표작. 이제까지 우리가 알아온 하이데거는 반쪽에 불과하다. 하이데거 철학의 ‘에베레스트 산’인 이 책은 그의 사유 세계 전체를 조망해줄 뿐만 아니라 ‘나치’ 참여 문제도 새롭게 조명해준다. 번역서로 7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실제로는 7,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해 놓은 비의적인 철학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하이데거 번역서로는 <시간 개념>(길, 2012)과 <사유의 경험으로부터>(길, 2012) 등에 이어지는 것이니 2-3년만이다. '철학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니까 아무리 '에베레스트 산'이라 하더라도 쉬엄쉬엄 올라볼 수 있겠다.

 

 

조르조 아감벤의 책도 한 권 더 더해졌다(올해 나온 책으로는 <빌라도와 예수>에 이어 두번째다_. 초기작인 <행간>(자음과모음, 2015)이 번역돼 나왔기에. 주로 최근작이 소개돼온 것과 다르게 이번엔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책이다. 거의 40년 전으로. 1977년작이니까 그가 35세 때 발표한 책. <호모 사케르>와 함께 전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아감벤 이전의 아감벤'을 만난다고 할까.

세계가 주목하는 미학자이자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문제작.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된 아감벤의 정치철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아감벤의 미학자로서의 면모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며, 아감벤이 기본적으로 취하는 비평적 자세와 철학적.문헌학적 방법이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아감벤이 <행간>에 뒤이어 1978년에 발표한 <유아기와 역사>(새물결, 2010)가 "21세기 문제적 사상가 아감벤의 데뷔작. 벤야민과 마르크스 그리고 하이데거를 통해 ‘언어’, ‘구조’, ‘혁명’, ‘변증법’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한 책"이라고 소개됐었는데, 최소한 '데뷔작'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가 아는 아감벤을 처음 만나게 해주는 책, 정도의 의미랄까. 아니, 그것도 모호하다. 그냥 아감벤의 세번째 책이라고 해야겠다.  

 

 

아감벤이 <행간>보다 먼저 발표한 책, 그러니까 진짜 데뷔작은 <내용 없는 인간>(1970)이다. 28살에 발표한 저작이다. 아감벤의 거의 모든 책이 영어로는 번역돼 있는데, <내용 없는 인간>과 <행간>, <유아기와 역사>, 세 권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위와 같다.

 

 

그리고 끝으로 알랭 바디우의 예기치않은 책,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북노마드, 2015)가 선보였다. 단독 저작으론 최근에 나온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사월의책, 2015)에 뒤이은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에 나온 <세기>(이학사, 2014)가 있었다. 원저는 2013년작. 두 편의 글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2013년 1월의 강연 '현재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뉴스 사이트에 실렸던 '적기와 삼색기'란 글이다. 거기에 감수자의 해제가 덧붙여졌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현재에 대한 위험하고 급진적인 유일한 비난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인 비난이다. 자유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해서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단지 이미지들로 가득한 금융이라는 매음굴에서 빠져나와 권력의 벌거벗은 모습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예적인 욕망을 전혀 채워줄 수 없는 시(詩)와 이미지(image)를 준비하자.

팸플릿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분량이므로 버스나 전철에서 읽는 것도 가능하겠다. 아, '포르노그래피'란 제목이 부담스러우려나...

 

15. 06..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