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경우 주로 알라딘의 신간 소개를 참고하기 때문에 간혹 빠트리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을 일간지 북리뷰에서 보게 되면 반가우면서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부득불 새로운 소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최근에 그런 책들이 몇 권 되기 때문이다. 피터 게이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책의 부제는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로 돼 있는데, 원제가 '슈니츨러의 세기(Schntzler's Century)(2002)이다.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로서 현재는 예일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는 분이라는 데, 우리에겐 <계몽주의의 기원>(원제는 '계몽주의: 한 가지 해석 The Enlightenment: An Interpretation')라는 방대한 책으로 소개된 양반이다. 계몽주의에 관한 저서도 갖고 있지만 서지를 보면 바이마르 시대가 '주전공'인 듯하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도 800쪽이 넘는 전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도서관에서 보던 책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관해서라면 미국에서도 최고 권위자일 듯하다. 그러니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에 대해 이 만한 규모(430쪽 가량)의 책을 쓰는 건 뭐 식은 죽먹기일 수도.

소개에 따르면 책은 "1815년부터 1914년에 이르는 19세기 중간계급의 '전기'다. 지은이가 길잡이로 삼은 인물은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극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아르투어 슈니츨러. 슈니츨러는 14세부터 5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지은이는 슈니츨러의 일기를 펼치면서 슈니츨러 자신과 그가 그려낸 인간 군상, 곧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를 쓴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을 역사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 "이 책에서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대표적인 요소들이 - 섹슈얼리티, 불안 - 서구 부르주아의 내면을 이해하는 열쇠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역사학의 프로이트'인 피터 게이는 '문학의 프로이트'인 슈니츨러의 눈으로 19세기를 조명함으로써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원로 학자의 성 '게이(Gay)'는 이래 저래 검색하기 불편한(!) 이름인데, 그가 프로이트에 빠져들게 된 게 비단 성(性) 때문이 아니더라도 혹 그런 성(姓)과 관련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에 개인적으론 관심을 갖게 되는 저자이며 더 많은 그의 책들이 번역되기를 기대한다(주로 두꺼운 책들을 쓴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한편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전기를 감당하게 된 슈니츨러는 우리에게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 원작자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이다. 프로이트로부터는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는데, 52년 동안 일기를 쓸 정도면 '숨기고 싶은' 그러나 '기록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기도 많았을 것이다(물론 대부분은 이상 성심리나 콤플렉스에 관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큐브릭이 현대적으로 각색한 <꿈의 노벨레>부터도 성에 관한 오해와 판타지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은 읽어본 바 없는데, <특별한 사랑이야기> (문화사랑, 1998), 희곡 <사랑의 유희>(성대출판부, 1999), 소설 <마지막 도박>(세계사, 1999), 단편집 <죽은 자는 말이 없다>(문예출판사, 2000), <사랑의 묘약>(문예출판사, 2004) 등이 번역/소개돼 있다. 최근에 '도박'과 관련한 논문도 쓴 김에 <마지막 도박> 정도는 읽어봐야겠다(이 책의 소개에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작가가 쓴 장편소설'로 돼 있다! 정선에 가실 분들은 미리 필독하시길.). <사랑의 묘약>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개정판이다(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을 패러디한 제목인 듯한데, 원제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두번째 책은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나노미디어).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저자는 현재 텍사스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는데, 우리에겐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청림출판, 2003)로 알려져 있다. 나는 둘다 갖고 있고 전자를 읽었다. 버스는 도킨스 같은 스타 과학자들의 필력을 자랑하진 않는다. 원제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 the new science of the mind)'인 이 책도 언젠가 도서관에서 원서를 본 적이 있는데(1999년에 초판, 작년에 2판이 나왔다) 딱 대학교재 같은 구성과 내용으로 돼 있다(그러니 '진화심리학 입문' 정도의 책인데, '마음의 기원'이란 역서명은 좀더 많은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방책인 듯싶다).  

물론 '좀더 많은 독자들'께서 바로 이 600쪽이 넘는 책을 집어들기는 어려울 테고, 딜런 에반스의 <진화심리학>(김영사, 2001) 정도로 먼저 몸을 푸시는 게 좋겠다. 그런 후에 최재천 교수 등이 쓴 <살인의 진화심리학>(서울대출판부, 2003)은 진화심리학 '연습' 정도로 훑어보고 그래도 내키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을 경우에 비로소 버스를 읽어나가는 게 제대로 된 코스 같다. 그 코스에서 옆길로 새는 독자들을 위해선 신간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바다출판사)가 준비돼 있다(이런 제목들은 다 누가 짓는 것인지?). '낚싯대로 건져 올린 인간, 진화 그리고 심리학 이야기'란 부제를 갖고 있는데, 낚시광인 저자가 "물에서 뭍으로 진화를 거쳐 '낚시하는 인간'으로 진화해온 인류와 낚시꾼의 경험담을 전해준다"고. 물론 거기에 걸려들 독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구호: "헤이, 우리는 삼천포로 간다!"

버스의 또다른 책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의 원제는 '위험한 열정(The Dangerous Passion)'(2000)인데, 많이 '노력한' 역서명이지만 원제가 유인책(미끼)으로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판매율이 아주 저조하다). 책은 <언어본능>의 저자 스티븐 핀커도 추천하고 있는 만큼 '엉터리'는 아니다. '성적 질투와 살해', '배우자 살해에 대한 진화적 설명', '배우자 살해를 당하기 쉬운 여성들' 등 자극적인 내용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독해볼 만한 책. 사실 <살인의 진화심리학>도 '배우자 살해'에 관한 연구인데, 이게 초창기 진화심리학의 '인기 있는' 주제였다.  배우자 살해라면, 물론 대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인데('나는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케이스가 아니라면) 좋다고 쫒아나딜 때는 언제고 죽이는 건 또 뭔가?(죽도록 사랑해서 죽이는가?) 

그런 게 문득 궁금한 독자라면 <남자는 원래 그래?>(리좀)을 손에 들만 하다. 저자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는 <무통혁명>(모멘토, 2005)의 저자이기도 한데, 신간은 남성의 성심리와 '불감증'을 다루고 있다(오늘자 한겨레가 자세한 리뷰를 싣고 있다. 참조하시길). 변태적이거나 도착적인, 하지만 일반적인(!) 남성심리에 대해서라면 일본인 저자의 통찰을 참조해볼 하다. 일본이 그 방면으로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는 나라니까 말이다(여고생 팬티를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세번째 책은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한길사)이다. 원제는 'Sovereign Virtue'(2000). '주권의 미덕'이란 뜻인가? 개략적인 소개를 옮겨오면 이렇다: "현대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서 자유주의가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드워킨은 지금까지의 현대 정치철학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대다수 정치사상의 입장들을 평등에 대한 하나의 견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철학의 문제를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의 문제로 다루고자 한다. 드워킨의 정치철학에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철학에서 공동체는 자유와 평등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정치적 이상으로 인정된다. 그는 공동체와 자유와 평등을 동일한 하나의 정치적 비전의 상호보완적인 측면들로 본다."

사실 작년,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들 중에는 <법의 제국>(아카넷)이라는 두툼한 법철학서도 있어서 다소 놀랐더랬는데('드워킨'이란 이름은 인문서를 읽다 보면 곧잘 등장한다), 이번에 '쐐기'를 박는 책이 출간된 것. 며칠 전 주문했던 <법의 제국>은 오늘 받았는데, '법'과 관련한 논문을 준비중에 있기 때문에 일단 구매를 했고 언제 통독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드워킨의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법철학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책은 역시나 작년에 출간된 데리다의 <법의 힘>(문학과지성사)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책들이 나와 있는데, 내 생각에 역시나 표준적인 것은 스티븐 뮬홀(멀할)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 2001)이다. 그 책의 한 장이 드워킨에 할애돼 있다.

 

 

 

 

네번째 책은 '소련'에 관한 책이다. 미국인 저자들이 쓴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이후).  원제는 '계급이론과 역사'이고, 부제가 '소련에서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이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니까 비교적 신간이며 빨리 소개된 편인데, 거기엔 역자가 저자들에게 배운 제자라는 속사정도 들어 있다. 한국어판 서문이 2003년 9월에 씌어지고 옮긴이의 말도 작년 1월에 작성된 걸로 돼 있는데, 책이 지금에야 나온 건 무슨 사정 때문인지? 하여간에 비록 소련 '경제'를 다룬 책이지만 넓은 의미에선 '전공서적'에 속하기 때문에 나로선 반갑다. 스티븐 레스닉과 리처드 울프, 두 공저자는 맑스주의 계급투쟁이론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앰허스트학파'의 리더들이라고 하는데, 그 방면으론 눈이 어두워 어느 정도 지명도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여러 권의 공저를 냈지만, 한국어로는 처음 소개되는 듯하므로 나의 무지가 흠은 아니겠다.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해 보이는데, 저자들은 소련의 경제를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분석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러한 시각을 빌려 남북한도 비교해볼 수 있으리라고 시사하는데, 가령 남북한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대립적인 체제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각각에서 작동하는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집단소유와 국가계획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농장과 공장에서 공상주의는 결코 성취되지 않았다. 대신, 북한에는 국가자본주의가 존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북한사회에 여전히 가능한 대안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라면, "남한과 북한 사회 모두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한 판단을 입증/반증할 만한 데이터를 나는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동의할 만한 견해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와 김일성은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며, (손호철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강정구나 조갑제나'이다. 오늘자 한겨레 북리뷰에 실린 도정일 교수의 칼럼에서도 '상식적인' (그러나 현재 간과/무시되고 있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는 북두칠성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자도 관용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게 그 체제의 짐이고(*혹은 딜레마이고) 영광 아니더냐? 그 짐을 질 자신이 없거든 일찌감치 걷어치워라. 너희가 북한과 같아지고 싶어서 안달이냐?"

어떤 나라는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하고 경축 분위기인데, 또 어떤 나라는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거의 '국난'을 당한 듯 시끌벅적이다. 만경대 정신을 떠받들겠다는 지식인이 (우리식 분류로) 좌익이고 친북인사라는 건 부인하지 말자.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지난 월요일자 한 신문의 칼럼에서 한 헌법학자는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라는 제하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들어 국가적 범죄도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사상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는데, 과거 유신헌법 기초에 관여했었다는 그의 전력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걸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원로들이 며칠전에는 구국운동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그 구호가 대한민국 만세였는지, 말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런 취지로 만경대주의자들을 다 잡아넣는다고 치자. 한데, 바로 그런 것이야말로 '북한식'이며 '북한식 인권의식' 아닌가? 현 국가보안법이 이렇듯 '북한과 같아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이들을 처분할 수 없다면, 그건 뭐하는 법인가? 거꾸로 만경대주의자에 대한 관용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강변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또 무슨 자격으로 진보주의자인가? 북한보다 나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인데, '강정구 사건'과 관련하여 이보다 '보수적인' 태도가 또 있을까?(실상 남한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못한' 체제라는 것이 폭로되어야 혁명/통일 대업 달성에 유리한 것 아닌가?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국보법으로 잡혀가야 정세가 더 호전되는 것 아닌가?) 내막은 또 짜고 치는 수작들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상식적으론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인 듯한다... 

어쨌든, 예전에 <소련국가자본주의>(책갈피, 1993)란 책이 나왔었는데, 신간과는 기조가 유사할 듯싶다. 소련 경제에 대해서는 권위자라고 하는 알렉 노브의 <소련경제사>(창비, 1998)도 참고할 만한 책.

 

 

 

 

마지막 책은 얼마전 101세로 세상을 떠난 중국의 대작가 파금의 <파금수상록>(학고방). 우리에겐 그의 대표작 <집(家)> 등이 소개돼 있는데, 한때 노벨문학상 단골후보이기도 했던 '큰집' 작가에 대한 예우로서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언론에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바진'이라고 표기했던데, 아마도 중국어로는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다(대역본 <바진 소설선>이 출간돼 있다). 등소평(덩샤오핑)과는 동갑내기로서 서로 막역했다고 하는데, 젊은 시절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듯 파금(바진)이라는그의 필명은 그가 존경하던 러시아의 무정 부주의자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한자음에서 각각 첫 음절과 마지 막 음절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식으론 '바킨'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데, 우리로선 이 '바킨' 같은 작가를 기대할 수 없는데, 우리말로 된 '바쿠닌' 책이 한권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E. H. 카가 쓴 평전 <미하일 바쿠닌>(종로서적, 1989)이 좀 돌아다녔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그나마 크로포트킨은 사정이 좀 나아서 그의 <자서전>(우물이있는집, 2003)과 상호부조론 <만물은 서로 돕는다>(르네상스, 2005)가 나와 있는 정도. 이 걸출한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에 대해서는 할 수 없이 <아나키스트의 초상>(갈무리, 2004) 같은 책들을 참조하는 수밖에 없겠다. 저자인 폴 애브리치는 아나키즘 전문가로서 그의 책으론 <러시아 아나키스트, 1905>(1989),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예문, 1989) 등이 더 번역된 적이 있다. 지금은 다 어데로 갔나? 하긴, 뭐이 아나키스트는 아무나 하나...  

05. 10. 21.  

 

 

 

 

P.S. 언젠가 한번 언급했었는데, 시인-비평가이자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친구이기도 한 이장욱의 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문학수첩)이 출간됐다.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소설가 공지영의 평에 따르면, "만만치 않은 문장력과 사회에 대한 통찰, 소설의 구성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였다. 고심을 많이 했다고 해서 꼭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은 아니지만 그 치열한 대결의식에 점수를 주고 싶었다. 최근에 나온 신인의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자부한다"고.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다음 생(生)으로 미룬 장래 희망이 있었다. 아주 유연한 유격수. 무표정한 프로바둑 기사. 소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소설가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유연하고 무표정한 그런 소설가가 되도록 하자." 지인(知人)의 책이라고 나도 따로 표정을 짓지는 않겠다...

덧붙여,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진주 태생의 시인 허수경의 네번째 시집이 나왔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나는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비, 2001)가 다소 불만스러웠으나 새 시집에 대한 기대마저 놓은 건 아니었다. 소개에 따르면, "시인은 시편들을 통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反전쟁에 대한 노래, 이 아이러니를 그냥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먼 이국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시인이 오래된 지층 사이에서 혹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넘쳐나는 전쟁 소식을 접하며 마치 발굴하듯 모국어로 옮긴 한 자 한 자의 시어는 '시'가 '역사'를 대할 때 보일 수 있는 한 전범이"라고 하니까 일독해 보시길. 그이의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은 지난달에 나온 책이다.

이제 '감자의 시간'이다. 빨리 귀가해야겠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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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fire 2005-10-22 03:06   좋아요 0 | URL
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는 예전에 모 출판사 문고판시리즈인가로 번역되었습니다. 도서관(어떤 곳은 구간)에서 찾으실 수 있을 거에요. 90년대 이후 바이마르 문화연구가 서구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기(막강 [바이마르 리퍼블릭 소스북] 이후로) 전까지 이 책이 유용한 입문서 역할을 했었죠. 지금은 당장 보기 힘들지만 관심이 가네요. 일단 보관함에 걸어둡니다.

푸른꽃 2005-10-22 08:43   좋아요 0 | URL
피터 게이의 성은 원래 Froehlich였어요. 독일어로 "즐거운"이란 뜻이죠. 나치 집권 후 유태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같은 의미의 Gay로 바꾼 거예요. 물론 요즘엔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지만요.^^

로쟈 2005-10-22 15:03   좋아요 0 | URL
palefire님/ 예, <바이마르 문화>는 탐구당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푸른꽃님/ 그렇군요. 독일문화사에 정통한 이유가 있었군요. 하긴 니체의 '즐거운 지식/학문'도 영어로는 'Gay science'죠.^^

evopsy 2005-11-01 12:07   좋아요 0 | URL
추측하신대로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은 원래 대학의 심리학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입니다. 그가 텍사스대학에서 하고 있는 [진화심리학]강의도 이 책을 교과서로 하고 있습니다. "오셀로...헤라"' 이 책은 차라리 원제 그대로 [워험한 열정]이라 하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말씀에 십분 동감합니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