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경험론'이란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온 지 한달쯤 됐다. 라이크만의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연구)을 읽으면서부터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동의나 공감의 여부와 무관하게 현대 영화나 문학 전공자라면 '들뢰즈'란 이름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푸코의 예언대로, 20세기가 들뢰즈의 세기로 기록될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가 하나의 '문턱'을 이룬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누구나 들뢰지언이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때 들뢰즈에 빠져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왜?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 더 멀리 도주하기 위해서.

 

 

 

 

그런 필요성이라면 다수가 공감할 수 있을 테지만, 실제적으로 들뢰즈에 빠져보는 건 쉽지 않다. 즉, 들뢰즈를 읽어나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건 당신이 <천 개의 고원>(새물결)이나 <차이와 반복>(민음사) 어디를 들춰봐도 대번에 알 수 있는 일이다. 가령, <차이와 반복>의 옮긴이 해제에서 김상환 교수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 책을 처음 여는 독자는 첫 대목부터 어떤 주름운동 속에 놓여 있는 재빠른 문장들 앞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애매한 개념들이 혼잡하게 난무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기 십상이다. 적어도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는 그렇다. 남들이 어렵다고 내팽개친 철학 책들을 별 불만 없이 읽곤 했던 나로서도 들뢰즈의 이 저서 앞에서 느낀 처음의 당혹감은 예외적이었다. 두세 번 반복해서 읽은 다음에야 겨우 번역할 용기를 얻을 정도였으니까."(685쪽)

프랑스 철학 전공의 엘리트 독자마저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은 다음에야 겨우 감을 잡을 수 있었다는 책을 일반 독자들이 어찌 한번 읽고 이해할 수 있으랴(더구나 번역서로)? 철학에는 아마추어 독자인 나도 어제 <차이와 반복>의 '머리말'과 '사유와 이미지' 장에 나오는 한 대목, '어리석음의 문제'를 복사해서 귀가길 전철 안에서 읽었는데, '머리말'은 대충 읽을 수 있었지만, '어리석음의 문제'는 새삼 나의 둔함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오늘 영역본과 러시아어본에서 해당 대목을 복사한바(책들이 무겁기 때문에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가 없다) 이따 귀가길에 다시 도전해볼 작정이다(두세 번까지는 읽어줘야 한다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두세 번 읽는 일이 효과를 볼 리는 만무하다. 들뢰즈로 가는 길, 혹은 들뢰즈를 읽는 방법에는 여럿이 있겠지만(들뢰즈 또한 리좀적 다양체일 테니까), 내가 가장 권하고 싶은 건 흄의 경험론을 통하는 길이다(무턱대고 <차이와 반복>에 달려드는 일은 아무런 훈련 없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이러한 사실의 발견이 나로선 <들뢰즈 커넥션>을 읽은 가장 큰 성과이다. 책의 역자가 백미라고 권한 건 '감각'을 다룬 6장이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장 '실험'이었으며, 나머지 장들은 모두 그 변주로 이해되었다('실험'은 'experimentation'의 역어이며, 언제나 '경험'과 대체될 수 있는 용어이다. 우리식으로 '한번 해보는 것'이 거기에 해당한다. "한번 맛 좀 보지 그래?"라거나 "그런 게 다 경험이지!"라고 말할 때의 '경험'이 '실험'이기도 한 것).

알다시피 들뢰즈의 첫번째 책은 1953년 그가 26세의 나이에 펴낸 <경험론과 주체성>이다. 지금 생각에 희한한 일이지만, 국내의 많은 들뢰지언들이 유독 얇은 분량의 이 책만을 아직까지의 번역 목록에서 제쳐놓은 이유를 모르겠다(<들뢰즈 커넥션>을 읽으면서 나는 부랴부랴 영역본을 입수했다). 라이크만에 따르면, "들뢰즈는, 경험론의 비밀은 철학 그 자체에 속하는 것이지, 지식이나 과학을 보는 단순한 철학적 입장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비밀은 바로 흄에서 드러났다. 흄과 함께, 경험론은 새로운 역량들을, 심지어 새로운 논리를 발견했다."(43쪽) 나는 거기에 이후에 펼쳐지게 될 들뢰즈 철학의 모든 포텐셜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해서, 라이크만의 교훈을 되새기자면, "그대 들뢰즈를 읽으려는가, 흄을 들고 가는 걸 잊지 말기를!"이다. 참고로, 흄의 책으론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예전에 흔히 <인성론>이라고 불렸던 책)을 비롯해서 비교적 많은 책들이 번역돼 있으며 국내의 연구 수준 또한 낮지 않다. 참고할 만한 책들을 약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김효명 교수의 <영국 경험론>(아카넷, 2001)은 영국 경험론 전반에 대한 모범적인 개관이며, 최희봉 교수의 <흄>(이룸, 2004)은 흄 철학에 대한 평이한 입문서이다. <흄의 인과론>(서광사, 1998), <흄의 자연주의와 자아>(울산대출판부, 1999) 등은 '전문서' 범주에 속한다. 그나마 내가 예전에 읽었던 건 에이어 경의 <흄의 철학>(서광사, 1989)이라는 얇은 책이었는데,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당시 흄에 대한 관심은 칸트를 읽기 위한 예비적인 성격의 것이었다(물론 흄은 문학적 필치가 뛰어난 철학자로 분류되기에 따로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른바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웠다는 이가 흄 아닌가? 내 생각에 그런 흄의 파워(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철학자가 20대의 젊은 들뢰즈가 아니었나 싶다(1950년대 들뢰즈의 흄 강의가 소르본느의 전설이었다는 것은 '들뢰즈의 적' 바디우 또한 <존재의 함성>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이다. 바디우 자신은 듣지 않았다지만).  

 

 

 

 

아쉬운 것은 들뢰즈의 가장 '평이한' 책이기도 한 <경험론과 주체성>에 대해서 국내의 들뢰지언들이나 흄 전공자들 모두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자신의 역량이 다 펼쳐지기 이전의 '배아적 들뢰즈'를 보여주고 있기에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가장 용이함에도 불구하고 <안티 오이디푸스>나 <천 개의 고원>으로 내모는 것은 조금 '잔인해' 보인다(들뢰즈? 거기서 좀 굴러보면 알게 될 거야!). 들뢰즈 '전문가'인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2002)에서도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을 다루면서 흄 철학과의 관련이 아닌 '들뢰즈 인식론의 칸트적 배경'을 해명하고 있는데, 평탄한 길을 놔두고 굳이 험한 길을 에둘러 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물론 저자에게 칸트는 '쉬운' 철학자일 수 있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과연 칸트가 흄보다 만만하며 읽기 편한 철학자인지? 고명하신 <순수이성비판>을 과연 몇 명이나 읽었겠는가?).  

하지만, 정작 들뢰즈-라이크만의 흄은 (비판철학을 가능하게 한) '칸트 이전의 흄'이 아니라 (비판철학을 넘어선) '칸트 이후의 흄'이다: "이처럼, 흄은 칸트와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들'에 대한 탐구의 막다른 골목 이후에 올 것이 무엇인지를 예견하고 있었다. 흄은 공통감의 경계들 또는 틀들을 교차시키고 공통감에 앞서는 관계들과 연결접속들을 만들어내는 개념적 실험가라는 유형을 예견했던 것이다."(25쪽, 강조는 나의 것) 여기서 '개념적 실험가'는 'conceptual experimenter'의 번역인데, '개념의 실험가'로 이해하면 되겠다. '개념의 실험가'이자 '발명가'가 바로 흄-들뢰즈가 말하는 '철학자'이며, 이것은 이성의 법정을 주관하는 '판사(judge)'로서의 철학자 형상과 대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유한다는 것은 실험한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판단하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For to think is to experiment and not, in the first place, to judge.)"(23쪽). 

요컨대, 철학에는 초월론과 경험론의 두 가지 계보가 있으며, 흄-들뢰즈가 권유하는 것은 '경험론으로의 개종', '경험론의 개종(empiricist conversion)'이다. 들뢰즈는 흄에게서 그가 발견한 경험론(이후에 자신의 경험론을 '초월적 경험론'이라고 명명)을 그가 애호했던 모든 시인, 작가, 철학자, 화가, 영화감독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발견한다. 경험론에서만 '사건의 철학'이 구성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오직 영국인과 스토아학파만이 '사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노라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들뢰즈를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이 바로 이 '경험론'이었다: "동시에 들뢰즈의 '경험론'은 들뢰즈를 프랑스 동시에 학자들과 구별시켜 놓았다. 푸코에 따르면, 경험론은 들뢰즈가 현상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48쪽).

들뢰즈와 동시대 철학자들은 전후 3H(헤겔, 후설, 하이데거)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던 이들로, (제도권 밖의) 사르트르뿐만 아니라 (제도권 안의) 메를로-퐁티, 리쾨르, 레비나스, 데리다 할 것 없이 모두 현상학자이거나 현상학에서 출발했던 철학자들이다. 그러한 풍경에서 비껴나 있었던 이로는 영미철학뿐 아니라 영미문학에 대한 예찬자이기도 했던 들뢰즈가 유일하다 싶을 정도인바, 그의 철학적 조국은 다른 철학자들처럼 그리스나 독일이 아니라 영국이었다고 해야 온당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그는 '블루오션'의 철학자였던 것이다.

05. 10. 11.

P.S. 이 글은  '들뢰즈와 경험론'이란 짤막한(!) 글을 쓰기 위한 '노트'의 일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토막글은 이후에 짬짬이 몇 차례 더 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들뢰즈 커넥션>을 근거로 해서 들뢰즈에게서 흄 철학과 경험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사실 <들뢰즈 커넥션> 자체도, 내 경험에 의거하자면, 2장을 가장 먼저 읽는 게 효과적이다(번역상 미덥지 않은 대목들은 차후에 다시 지적하겠다). 그리고 1장을 읽는 식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읽어야 할 것은 콜브룩의 <질 들뢰즈>(태학사, 2004)에서 '초월론적 경험론'이란 장이다(거기서도 '경험론'이란 절부터 읽어보시길). 그럼, 들뢰즈 철학의 윤곽이 잡힐 것이다.

'가장 쉬운 들뢰즈 입문서'로서 콜브룩의 책은 제값을 하는 책이지만, 들뢰즈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영화(론)'부터 소개하는 것은 불만스럽다(초보자에겐 아무리 그래도 '순서'가 중요한 법이다). 여하튼 그녀의 책에서 핵심적인 장을 셋만 고르라고 한다면, '사유의 역량들(역능들)', '초월적 경험론', '생성'을 고르고 싶다(바쁘신 분들은 참조하시길). 그리고, 이어서,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에 실린 보론 '경험론과 철학'을 읽어보시길. 내 경험상 들뢰즈에 접근하는 가장 평탄하면서도 용이한 루트이다. 다음 글에서는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 좀더 부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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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인간 2005-10-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마디즘'을 읽고도 '천개의 고원'을 다 읽지 못하고 중도에 쉬고 있습니다. 로쟈님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서 흄 등으로 내공을 쌓은 후 내년 쯤 다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정우님의 베르그송 인터넷 강의 수강하면서 사서는 첫 페이지에 기겁을 하고 지금껏 책장에 꽃혀 있는 '영화 1'도 언젠가는 읽어야 할텐데...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멀군요.

yoonta 2005-10-12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콜브룩의 책은 분명 들뢰즈 입문서임에도...어떻게 보면 제일 난해하다 할수있는 씨네마를 앞에다 배치했으니..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이책의 영화편을 읽다가 집어 던졌을지도..^^

저에겐 초기사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콜브룩이나 라이크만의 책보다는 <들뢰즈 사상의 진화>라는 마이클하트의 책이 훨씬 들뢰즈를 쉽게 이해할수있게 만든 책이더군요...<경험론과 주체성>과 관련된 들뢰즈의 작업은 "총체를 가로질러 특정한 한 단편만 취했다"고 저자 스스로도 고백했다시피 스킵하긴 했지만 말이죠..베르그송으로부터 니체..스피노자로 나아가는 사상의 발전과정은 잘 서술한 책인 것 같더라고요..니체나 스피노자관련 해석은 좀 강한 해석이라는 견해도 있지만..말이죠..

로쟈 2005-10-1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인간님/ 쉬엄쉬엄 즐기면서 가시길.^^ yoonta님/ 하트의 책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들뢰즈 철학의 키워드를 저는 '경험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는) 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인데요, 물론 들뢰즈로 가는 루트는 베르그송을 경유하거나, 니체를 따라가거나 스피노자를 길잡이로 삼는 등 여러 갈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짐작에 흄이 가장 평탄하며 쉬운 길입니다(독자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더불어, <니체와 철학> 등이 들뢰즈의 '초기사상'이라곤 하나 그러한 초기사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배아적 사상을 <경험론과 주체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로쟈 2005-11-0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준으로 삼은 건 전문가가 아닌 일반독자입니다. 그리고 제 요점은 일반독자의 '들뢰즈 독해'에 칸트가 덜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칸트를 공부하셨다면, 일반독자들에게도 보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