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확연히 봄밤이라고 하긴 어려운 봄밤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자주 듣는 필 콜린스의 'Another Day in Paradise'를 들으며). 이번주에도 국내 저자로만 골랐다. 순서를 어떻게 정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 생각 안 한 듯이) 가나다순으로 정했다.

 

 

그래서 먼저, <보다>(문학동네, 2014)에 이어서 이번엔 <말하다>(문학동네, 2015)를 펴낸 김영하 작가. <읽다>까지 해서 3부작이 될 거란 예고인데, 이런 페이스라면 아마 마지막 3권도 올해 안에 나올 듯싶다. 표지 디자인으로만 보자면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과도 '친구' 먹을 수 있는 책.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말하다>는 작가 김영하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창의력에 대한 그의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인 테드(TED)의 메인 강연으로 소개되어 136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해 2014년 12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했던 청춘 특강은 젊은층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KBS 라디오의 '문화포커스'를 진행한 방송인이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단에서 서사창작을 가르쳤던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진행자인 작가 김영하. 이미 거의 모든 형식의 '말하기'를 경험한 그는 <말하다>를 통해 빼어난 말솜씨로 어느 순간 청자의 허를 찌르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귀기울여 듣고 되새길 만한 말들로 가득하다.

모든 작가가 달변은 아니며 그 반대인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달변의 작가는 이런 책도 낼 수 있구나, 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도 슬렁슬렁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잡놈들 전성시대>(새로운현재, 2015)와 <성숙 자본주의>(레디앙, 2015). 반년 전에 <불황 10년>(새로운현재, 2014)과 <솔로 계급의 경제학>(한울, 2014)을 펴냈으니 저자로서 매우 '분주한' 편이다. <성숙 자본주의>를 먼저 주문해서 손에 들었는데, '성숙과 퇴행, 기로에 놓인 한국경제'가 부제다.

자칭 C급 경제학자이며,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돼 왔던 우석훈 박사가 ‘성숙 자본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우석훈은 이 책에서 “2008년 이후로 전 세계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케인즈 시대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만들 것인가, 그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고민 중”이라며, 자신은 한국 경제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숙 자본주의’를 제시한 것이다.

"성장은 소수를 부자로 만들고 성숙은 다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보아 저자는 '성장'이란 자본주의의 주술에 '성숙'을 해독제로 처방하려는 듯하다. 덕분에 한국경제가 '성장병'에서 치유된다면, 그만한 성과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성숙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상은 어떤 것인지는 책에서 확인해봐야겠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도 일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 2015)다.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와 <투명사회>(문학과지성사, 2014)를 고려하면 세번째 '네글자 제목' 책이다. 부제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우리의 박태근 MD는 이렇게 평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리정치>를 간결하게 정리한 다음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개인을 조종하는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 한병철의 저작이 꾸준히 소개되며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까닭은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는 결론 때문이 아니라(그의 저작 제목은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라 하겠다), 현실과 이론을 종횡으로 넘나들며 우리가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세계의 특성을 간명하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작정치와 사찰정치의 망령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지만, 좀더 세련된 '심리정치' 또한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구닥다리 정치와 세련된 정치가 마구 뒤섞인 한국적 현실에 대한 인식 도구로 저마다 구비해놓을 만하다. 올해도 어떻듯, 살아남기 위해서, 더 바란다면, 제대로 살기 위해서...

 

15.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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