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문학 고전을 '이주의 고전'으로 더 고른다. 얼마전에 이반 곤차로프의 대표작 <오블로모프>(동서문화사, 2015)가 번역돼 나와서인데, 이로써 기존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오블로모프>(문학과지성사, 2002)와 함께 두 종의 번역본을 갖게 됐다.

 

 

이런 고전은 얼마든지 중복 번역되어도 무방하다고 보는 편이라 기꺼이 구입했는데(세일즈포인트를 보니 내가 유일한 구매자인 듯싶기도 하다) 문제는 역자다. 처음 듣는 이름이고 약력도 "국립러시아 미술아카데미(Repin Academy) 졸업.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문학 연구수학. Exhibition Center Saint Petersburg Union of Artist. 겸제진경미술대전 특선. 옮긴책에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개의 심장> 등이 있다"고만 소개된다.

 

 

<오블로모프> 외에 옮긴 책이라는 게 이번에 같이 나온 <거장과 마르가리타/개의 심장>(동서문화사, 2015)이니까 이 두 권을 한꺼번에 출간한 것인데, 약력상으로는 믿기 힘든 일이다. 어지간한 전공자들도 엄두를 못 내는 일인데, 미술 전공자가 거뜬히 번역해냈다? 만약 그랬다면 러시아문학계의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초역은 아니기에 기존 번역본들을 참고할 수는 있을 터이므로, 새 번역본의 의의는 비교검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또 <오블로모프>를 강의할 때 반드시 언급하게 되는 비평가 도브롤류보프의 '오블로모프주의란 무엇인가'가 동서문화사판에는 번역 수록돼 있어서 러시아문학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요긴한 참고가 될 듯싶다. 다만 이 시리즈의 책들은 저렴한 대신에 너무 무거워서 휴대하기엔 좀 부담스러운 게 단점이다.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19세기>(현암사, 2014)에서 나는 19세기 러시아 작가 7명을 다루었는데, 거기에 한 명을 추가한다면 1순위가 곤차로프이다. 그리고 2순위는 살티코프-셰드린으로 <골로블료프가의 사람들>(문학과지성사, 2010)이 역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번역돼 있다. 그리고 한 명 더하면 극작가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 대표작 <뇌우>가 <러시아 희곡1>(열린책들, 1998)에 수록돼 있는데, 아쉽게도 절판된 지 오래 됐다. 그렇게 포함하면, 푸슈킨부터 체호프까지 딱 10명이다. 시인들을 제외하고 산문과 드라마에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 나중에 러시아문학 강의 '서플먼트'를 다룰 기회가 있으면 이들 작가들에 대해서도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그럼 <오블로모프>는 어떤 작품인가. 간략한 소개를 옮겨놓는다.

세계문학의 걸작 <오블로모프>(1859)는 러시아 귀족계급과 자본가계급을 강하게 대조하면서 농노제에 바탕을 둔 생활양식을 비난하고 있다. 주인공 오블로모프는 관대하지만 우유부단한 귀족청년으로, 박력있고 실리적인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만다. 이러한 뛰어난 인물묘사에서 비롯되어 허무감에 빠지고 무기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19세기 러시아사회 사람들을 일컫는 대명사로 ‘오블로모프주의’(오블로모프기질)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였다. 곤차로프는 <오블로모프>에서 사실주의적 세부묘사를 거듭함으로써 게으른 주인공을 완벽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곤차로프는 농노제 폐지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있다.

 

<오블로모프>(1979)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출시돼 있는데, 감독은 니키타 미할코프다. 러시아의 국민배우 가운데 한 명인 올렉 타바코프가 오블로모프 역으로 나오는 영화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러시아문학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가운데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미할코프는 주인공은 풍자보다는 연민의 대상으로 그리고 있다(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r_2wey-YuRg 1,2부로 나뉘어 있는데, 전체 분량은 140분이다).

 

아,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됐는데, 알라딘에서 영어판 외에 러시아어판까지 주문할 수 있다! 맨 오른쪽 러시아어판이 39,890원이다. 저렴하진 않지만 하드카바의 책이라 실제로 러시아 온라인서점에 주문하더라도 비슷한 액수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러시아는 배송료가 책값만큼 들기 때문에 직접 주문해도 30,000원은 넘을 듯하다, 고 생각했지만 최근 루블화의 폭락으로 예전 가격의 절반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오블로모프>도 책값만으론 8,000원 가량이다). 흠, 이젠 오존(러시아서점)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1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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