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는 <이방인> 번역 시비부터 중차대하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뒤숭숭한 한 주였고 난감하고 난해한 한 주였다. 아직 진행중이긴 하나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겨우 떠올릴 수 있는 말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작품세계를 가리키는 '고골레스크'다. 참으로 고골레스크한 나라에서 산다는 느낌이 든다(차이라면 우리에겐 '우리 시대의 고골'이 없다는 것). '이주의 책'은 그런 느낌에 짓눌리며 고른다.

 

 

타이틀북은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다. 밀양구술프로젝트팀이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17명의 구술기록을 모은 것인데,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이 부제. 소개에 따르면, "왜 송전탑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이 어떤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으며, 삶의 터전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주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돈과 힘을 앞세운 한전과 정부에 대한 분노, 돈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이들을 향한 배신감,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이 책은 밀양에서 살고 있는, 그리고 밀양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아주 편파적인 기록이다."

 

두번째 책은 CBS 정혜윤 피디의 르포르타주 에세이 <그의 슬픔과 기쁨>(후마니타스, 2014).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주로 독서 에세이를 펴내온 저자로선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책’을 매개로 하지 않은 최초의 본격적 시도이자,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쌍용차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뿐 아니라 졍혜윤 피디의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될 듯싶다.

 

 

세번째 책부터는 방향을 좀 틀어서 역사책을 고른다. 신명호의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역사의아침, 2014). '무엇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했나'가 부제다. 제목과 부제가 내용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 책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을 기점으로 하여, 고종과 메이지가 통치하던 무렵의 조일(한일) 관계와 동북아 역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현존하는 사료의 분석과 인용을 통해, 조선과 일본 두 나라 앞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와 그들이 직면한 다양한 사건을 살펴본다. 동시에 고종과 메이지를 포함하여 두 나라의 정국을 주도한 인물들이 그러한 사건과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또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지 등을 세밀히 관찰한다." 두달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일본 학자 쓰키아시 다쓰히코의 <조선의 개화사상과 내셔널리즘>(열린책들, 2014)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네번째 책은 미국의 일본사학자 미리엄 실버버그의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현실문화, 2014). 사실 '그로테스크 넌센스'는 지금의 우리를 가리키는 키워드로도 손색이 없다(바로 '고골레스크'다!). 근대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서.

간토 대지진과 진주만 공습 사이, 이념대립과 호전적 기운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일본의 대중들은 정말 현실을 외면한 채 퇴폐적 눈요기와 감각적 쾌락, 엽기적이고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것만을 찾는 삶을 살았을까? 근대화의 물결과 국가 이데올로기, 팽창주의의 압력과 제국의 검열 아래서 대중문화는 어떻게 조응했을까? 캘리포니아 대학교 역사학 교수였으며 여성연구소 소장직을 맡기도 한 미리엄 실버버그의 책으로, 당대의 신문과 잡지, 영화와 공연을 통해 일본의 '모던 타임스'의 면면을 마주하고 당시의 대중문화가 퍼트린 욕망과 충동, 긴장과 에너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야말로 타산지석이 될 만한 사례가 아닐까. 한국판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도 충분히 쓰여질 만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개정판으로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14). 10년 전에 나온 초판보다 분량이 90쪽 가량 늘어났기에 '증보판'이기도 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과 주체사상 등 북한 현대사의 시작부터 고난의 행군, 개성공단 건립과 금강산 관광, 김정은 집권에 이르는 북한의 최신 동향까지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300여 컷이 넘는 사진과 그림 자료, 흥미로운 읽을거리들은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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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살다-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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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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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무엇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했나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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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근대 일본의 대중문화
미리엄 실버버그 지음, 강진석 외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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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개정증보판
김성보.기광서.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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