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나보코프의 미완성 유작이 출간된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2009년의 일이다), 바로 그 책의 번역본이 나왔다. 오리지널 제목 그대로의 <오리지널 오브 로라>(문학동네, 2014). 영어본과 러시아본도 구해놓은 게 몇년 전인데, 이제 어디에 두었는지 행방을 찾아봐야 하게 생겼다. 이미 예고된 책이었지만 역시나 책이라는 부피를 가진 물건으로 나오게 되면 마음이 들뜬다. 소개는 이렇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남긴 미완성 유작. 나보코프는 죽기 전 원고를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아들 드미트리는 오랜 고민 끝에 작품을 출간하기로 결정했고, 원고는 나보코프가 세상을 떠난 지 32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나보코프는 원고지가 아닌 인덱스카드에 초고를 집필했다. 그리고 카드 뭉치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문장을 고치거나 순서를 재배치하는 식으로 글을 수정하다가, 원고 정리가 끝나고 나면 초고를 전부 불태워버렸다. 즉 미처 완성하지 못한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나보코프의 창작 현장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인 셈이다. 나보코프의 친필과 원고가 쓰인 인덱스카드의 모습을 그대로 소개하기 위해, 인덱스카드 각 장을 페이지 상단부에 실었다.
아들 드미트리가 아버지의 유언을 번복하게 된 건 나보코프가 꿈에 나타나 출간을 허락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그럼 나보코프 자신의 번복인가?). 여하튼 독자로서는 작품이 아니라 '창작노트'라 하더라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나보코프의 몇 작품을 이번 학기에 강의할 예정이기 때문에 바로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올봄에는 나보코프가 만들어놓은 미완의 미로 게임에서 길을 잃어봐도 좋겠다. 참고로, 러시어어판 표지는 아래와 같다. 러시아어판의 제목은 <라우라와 그녀의 오리지널>이다.
14. 0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