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없는 대신에 주말과 휴일에는 통상 번역거리나 원고와 씨름하는 게 일상이다.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음악을 찾아 듣는 게 나대로의 휴식이고, 당장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책을 넘겨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다. 가령 '세계문학의 거장들이 붓으로 그린 자서전'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나온 도널드 프리드먼의 <작가의 붓>(아트북스, 2014)도 그런 즐거움을 주는 책.

'문학계 거장 100명' 가운데는 러시아의 시인, 작가들도 여럿 포함돼 있어서 반가운데, 연대순으로 하면 푸시킨(푸슈킨), 고골,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예프스키), 마야콥스키, 나보코프 등 다섯 명이다. 그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편을 읽어봤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19세기 소설가들 가운데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 중 하나인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원고에 교회 지붕이나 다양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그려 넣거나 캘리그래피를 연습하곤 했다. 하지만 그가 주로 그린 것은 초상화였다. 자화상, 노승과 어린 수도승 들, 표트르 1세 밀랍 조각, 그리고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들이 남아 있다. 그중 <백치>의 주요 등장인물의 스케치는 특기할 만하다.(128쪽)
책에 실려 있는 스케치(캘리그래피)는 주로 <악령>의 필사본에서 가져온 것인데, 교정사항을 적어두자면 본문과 달리 그림 설명에는 작품명이 <악령>이 아니라 <악마>라고 오기돼 있다. <백치>의 주인공도 '미슈킨 공작'이 '미슈킨 왕자'로 오기됐다(영어로는 물론 둘다 'prince'다). 그림의 주된 출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 그림 컬렉션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드로잉>(1998)인데, K. A. 바쉬트(Barshit)의 책이다. '바르쉬트'라고 표기해야 한다. 가령 <악령>의 노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넣은 고딕건축의 세부는 이렇다.

아무튼 바르쉬트의 책에 대해 알게 된 게 가외의 소득이다...
14. 0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