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를 이것저것 듣다가(가끔 하는 일이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2월은 언제나 간이역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데(1월과 3월의 광채에 비교해보더라도), 생일이 들어 있지 않다면 2월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졸업과 관련한 기억일 테다. 따로 졸업할 것도 없어 이번 2월도 내겐 봄학기를 준비하는 정도의 의미만 갖는다. 그러니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할 테다. 2-3일 짧은 달이지만 책은 그 2-3일을 더 채우고도 남을 만큼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각오로 골라본다.

 

 

 

1. 문학예술

 

정이현 작가가 고른 책은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민음사, 2013)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현재 한국문학의 낯선 최전방을, 그리고 미래를 탐험하는 일"이라고 평했다. 덧붙이자면 매년 1월에 수상작이 발표되는 이상문학 작품집도 목록에 넣어봄직하다. 올해는 편혜영의 <몬순>이다. 더불어 문학동네의 한국문학전집에도 눈길을 주게 되는데, 김승옥의 <생명연습>(문학동네, 2014)이 첫 권이다. 새 부대에 담기면 포도주맛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시집도 몇 권 고르자면 신경림 시인의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나희덕 시인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그리고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대표 시 선집으로 나온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민음사, 2014) 등이 따끈하다.

 

 

 

예술분야의 책으로 내가 고른 건 김도연의 <북경예술견문록>(생각을담는집, 2014)이다. 소개는 이렇게 적었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과 함께 중국의 미술시장 역시 유례없이 성장했고, 작가들 또한 세계미술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북경예술견문록>은 바로 이런 관심과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황막한 공장지대였던 베이징의 798 구역이 어떻게 예술구로 성장하고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여행의 메카가 되었는지, 대표 미술관과 화랑은 무엇이고 어떤 전시들을 해오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원링, 팡리쥔, 황루이 등 당대를 대표하는 중국 예술가들이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예술적 비전은 무엇인지 저자는 현장 사진과 인터뷰 등을 통해서 안내한다.

중국현대미술에 대해선 이보연의 <이슈, 중국현대미술>(시공아트, 2008)까지 챙겨두었는데, <북경예술견문록>과 함께 김지연의 <중국 현대미술의 얼굴들>(두성북스, 2013)이 '업데이트'용이 된다. <북경예술견문록>에 실린 작가 인터뷰 가운데서는 천원링 편이 인상에 남는다. 이런 작품들을 만든 작가다.

 

 

 

 

2. 인문학

 

김문식 교수가 추천한 책은 주경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서울대출판문화원, 2013)다. 평판이 엇갈리는 문제적 인물 콜럼버스를 다루면서 "이 책은 새로 발견된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위험한 항해에 나섰던 콜럼버스의 심성세계를 추적한다." 콜럼버스에 관한 가장 상세한 읽을 거리일 듯싶다. 덧붙이자면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지식의숲, 2006),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이후, 2007) 등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이진남 교수가 고른 책은 로랑 베그의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부키, 2013)다. "이 책은 인간에게 도덕적 열망이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 그러나 칸트와 같이 도덕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살아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공리주의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도덕적인 것이 옳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인간의 도덕적 심성을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속한 집단과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본능적 노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행위의 동기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중성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도덕적 본성, 내지는 진화심리학적 도덕론에 관한 책도 떠오르는데, 제임스 레이첼스의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나남, 2009),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사이언스북스, 2003)이 그 '초기' 저작들이다.   

 

 

3. 사회과학

 

왕상한 교수가 추천한 책은 장병윤의 <미래를 여는 대안적 실험>(옐로스톤, 2013)이다. "인류의 2대 위기로 거론되는 에너지와 식량. 인류는 이 외에도 현실적으로 심각한 문제 앞에 직면해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 대안을 제시하는 건 쉽지 않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 대안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담았다. 오랫동안 생태와 대안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귀농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저자의 시각과 탐색 결과가 흥미롭다."는 소개다.

 

전형구 위원이 고른 책은 오형규의 <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한국문학사, 2013). 소개에 따르면, "비전공자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 역사, 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정리한 경제학 입문서 내지는 안내서이다. 또한 유연한 사고의 확장을 위해 학문 간의 융합과 통섭의 지식을 다루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 권 더 덧붙이자면, 노명우 교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출판사, 2013)까지 결들여 읽어봐도 좋겠다.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 노동자 교수로서 스스로가 평범한 세속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누구나 살면서 겪는 세상 경험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채집하고 궁리하며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시도했다"는 소개에 걸맞게 '세속사회학'의 한 견본을 보여준다.

 

 

 

4. 자연과학

 

이한음 위원이 추천한 책은 한겨레신문의 조홍섭 환경전문 기자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김영사, 2013)다. "이 책에는 최근에 연구자들이 밝혀낸 자연의 새로운 모습들이 소개되어 있다. 사막의 쇠똥구리에게는 굴리는 똥 경단이 더위를 쫓는 에어컨 역할도 한다는 이야기나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는 말이 과대광고라는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면서 깨달음을 안겨주는 알찬 내용이 가득하다."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고즈윈, 2005), <한반도 자연사 기행>(한겨레출판, 2011) 등 저자의 전작들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막간에 뇌과학서 몇 권도 챙겨놓을 만하다. 한국과학기술원 김성호 교수의 <생각의 경계>(한권의책, 2014)는 "사람의 생각과 지적인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오랜 시간 연구한 중간 결산으로서, 지식투영, 지식단면, 생각, 질문, 지식결합, 지식공유, 지식의 진화 등 뇌의 기능을 열두 단계의 관점으로 체계화하여 담고 있다."

 

구보타 기소유의 <손과 뇌>(바다출판사, 2014)는 많이 알려진 상식을 확인시켜주는 책. "일본 뇌과학계의 좌장인 구보타 박사는 손은 인간의 두뇌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손을 사용함으로써 두뇌를 자극해 머리가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데이비드 린든 교수의 <고삐풀린 뇌>(작가정신, 2013)는 쾌감원리에 관한 책으로 " 쾌감이 우리의 뇌에 보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신경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간을 쾌감을 느끼도록 이끄는, 그러나 너무나 쉽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그 행동의 원천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다."

 

 

 

5. 실용일반

 

이하경 위원이 추천한 책은 김민형의 <아빠의 수학여행>(은행나무, 2014)이다. 저자는 작년에 <수수 공상>(반니, 2013)이 소개된 세계적인 수학자. '세계적인 수학자 김민형 교수가 아들에게 꼭 일러주고 싶은 세상의 모든 질문들'이 <아빠의 수학여행>의 부제다. "세계적인 수학자의 아주 특별한 교양서"라는 평이다. 수학자 강석진 교수의 <아빠와 함께 수학을>(문학동네, 2011)도 떠올리게 한다.

 

 

김민형 교수는 유학시절 아버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장문의 편지 세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가 두 아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썼다. "그래도 내가 쓴 편지는 아버지가 내게 쓰신 편지만큼 심각하지는 않다"고.  

 

 

 

교육 얘기가 나온 김에 EBS 다큐프라임의 하나로 나온 <언어발달의 수수께끼>(지식너머, 2014)도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필독할 만하다. EBS 다큐프라임의 책으론 화제작 <아이의 사생활>을 비롯해 <10대 성장보고서> 등 여러 권이 나와 있다.

 

0. 조선사

 

 

 

나대로 꼽은 주제는 '조선사'다. '민음 한국사'의 시리즈 첫 두 권으로 15세기와 16세기가 출간된 게 계기인데,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 2014)를 에피타이저 삼아서 내리 읽어나가면 되겠다. 자료가 풍부하고 편집이 화려해서 중고등학생들이 읽기에도 유익할 듯하다.

 

 

14. 02.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고른다. 찾아보니 2010년 7월에도 꼽은 바 있다. 고전이야 다시 읽는 책이고,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므로 이런 선정은 중복이 중복이어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론 강의도 있기에 러시아판 TV영화 버전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2부작, 2008)도 마저 다 보려 한다(유튜브엔 영어 자막 버전도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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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22-08-2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슈,북경현대미술 이제서야 읽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