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아감벤의 <예외상태>(새물결, 2009)를 다시 들추고, 특히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 장의 내용을 간추렸다. <예외상태>에서 아감벤은 주로 독일 법학자 칼 슈미트와 대결하는데, 슈미트의 <독재>(1921)와 <정치신학>(1922)이 주된 검토 대상이다. <정치신학>(그린비, 2010)은 번역돼 있지만 <독재>(법원사, 1996)는 절판된 지 오래됐다. 그렇게 없어도 되는 책은 아니라는 걸 요즘 시국은 말해준다.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절판된 <대지의 노모스>(민음사, 1995)도 마찬가지이고, <헌법이론> 같은 책도 번역되길 기대한다. 예외상태(입헌 독재)의 이론적 명분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13. 12. 30) 민주주의 위해 민주주의 희생하자는 논리

 

법과 법의 공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영화 <변호인>을 본 때문인지 책장에 꽂혀 있던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손길이 갔다. 이 이탈리아 철학자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호모 사케르’ 연작 가운데 하나다. 예외상태란 무엇인가. 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법의 공백 상태를 가리킨다. 당장 갖게 되는 의문점. 예외상태는 법 안에 있는가, 법 바깥에 있는가. 법의 공백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아감벤의 문제의식도 멀리 가지 않는다. 예외상태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 예외상태는 공법과 정치적 사실 사이의 불균형점이며 법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하는 모호한 경계선에 자리한다. “예외상태는 법률 차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법률적 조처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예외상태란 개념의 기원은 흔히 ‘긴급 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는 라틴어 격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격언은 “긴급 사태에서는 어떤 법률도 인정될 수 없다”와 “긴급 사태는 그에 고유한 법률을 만들어낸다”는 두가지 상반된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한 이 격언에서 법률이란 말은 무엇보다도 교회법을 가리켰다.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미사를 올릴 바에는 아예 미사곡을 부르거나 듣지 않는 편이 좋다”는 식의 규정 같은 것이다. 규정은 그렇지만 최고도로 긴급한 사태일 경우에는 규정의 위반도 정당화된다는 게 중세의 긴급 사태론이다. 예외상태론에서 주장하듯이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법의 효력 정지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중세와 무관하다. 그것은 근대적 발상이다.

 

헌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계엄 상태’는 프랑스 혁명기에 처음 제도화된다. 곧 예외상태는 절대주의 전통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 전통의 창조물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은 대다수 교전국에 예외상태가 등장하게끔 만들었다. 프랑스에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된 계엄 상태에서 행정부가 실질적인 입법기관이 됐다. 전후 독일에서는 제국의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예외적 권한을 부여했다. “(대통령은) 군대의 힘을 빌려서라도 공공의 안전과 질서 회복에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통령 독재’로의 길을 열었다. ‘민주주의 수호’란 명분이 실상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며 입헌 독재는 전체주의 체제로 가는 한 국면에 불과하다는 걸 나치 독일의 사례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유신체제를 경험한 우리에게도 예외상태는 낯설지 않다.

 

오늘날 군사적 비상사태나 경제적 비상사태는 예외상태의 흔한 명분이 되고 예외상태는 상례가 되고 있다. 통상적인 통치술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의회가 아닌 행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에서라면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은 의미를 잃는다. 아감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러한 헌정 질서의 변환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 전체에서 진행중이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법학자나 정치가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런 상황이 시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민주주의 자체의 일시적 희생 따위야 정말 사소한 것”이라며 예외상태, 곧 입헌독재를 옹호하는 한 헌법학자의 말이 섬뜩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와 함께 있지 않다.

 

13. 12. 29.

 

 

 

P.S. 마지막 문단의 인용은 미국의 헌법학자 로시터의 말로 <입헌 독재>(1948)에서 아감벤이 인용한 것이다. 로시터는 거물급 학자로 보이는데,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보급판의 편자이기도 하다.

 

 

원래 법학도였던 아감벤 덕분에 헌법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 몇 권 더 구입했다. 아직 헌법학이나 헌법이론서에까지는 손길이 가고 있지 않지만, 법제사 관련서와 칼 슈미트, 로널드 드워킨의 책들을 새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법학도가 아닌 일반 시민도 헌법을 공부해야 하는 게 법비(法匪)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법비'란 말의 뜻에 대해서는 한홍구 교수의 칼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 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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